죽음의 핑퐁게임에 놓인 북한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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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핑퐁게임에 놓인 북한난민
  • 이창영
  • 승인 1997.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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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사지로 내몰고, 언론 입막음 북한식량난민 13명이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했으나 오히려 이들을 베트남정부에 인계하여 사지로 몬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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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사지로 내몰고, 언론 입막음

북한식량난민 13명이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했으나 오히려 이들을 베트남정부에 인계하여 사지로 몬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2일 현재 지뢰밭으로 피신한 난민 가운데 7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지 않고 있는데, 이 북한난민들을 주베트남 한국대사관(한국대사관)으로 주선한 것이 안기부이며, 외무부와 안기부등의 요청으로 국내언론에서는 보도마저 봉쇄된 상황이다.

천주교인권위(위원장 김형태 변호사)와 통일강냉이보내기모임(강냉이모임)은 2일 오전 10시30분 가톨릭센타 7층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주베트남 한국대사관과 주중국대사, 안기부에 의해 사지로 내몰린 북한식량난민 13명에 대한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북한식량난민과 함께 베트남 국경을 넘어 10월 20일 한국대사관으로 인도되기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한 김재오 전도사가 증언했다.

김재오 전도사에 따르면 홍 아무개(35·여, 무산역에서 굶어죽기 직전 인신매매단에 팔려 중국으로 옴)씨 등 13명은 4월 초기 식량난으로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현지에서 생명의 위협과 현지인들의 비인간적 위협에 견디다 못해 한국망명을 결심하게 된다. 이들은 한겨레신문사의 기획보도 '아, 굶주리는 북녘시리즈 캠페인'을 통해 소개된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8명의 가족이 굶어죽자 살아남은 4명이 탈출을 결행한 강 아무개 씨 가족, 두 아이를 모두 잃은 뒤 배속에 있는 셋째라도 살려야겠다는 절박감에 탈출한 임산부 송 아무개씨 등이다.


주중국 한국대사관 망명 거절

이들이 중국연변에서 북한 식량원조활동을 벌이던 강냉이 모임을 만난 것은 4, 5월경이다. 그리고 7월 28일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에 집단망명신청서를 제출하는데, 주중한국대사관 박종호 서기관은 "그들은 동포지 대한국민 국민은 아니다.

중국에 올때 중국법을 잘 지키겠다고 중국정부와 약속을 했고, 그들은 범법자이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들은 대사관 공개난입을 결심하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된 안기부가 신원을 보장한다는 전제아래 베트남을 주선하게 된다.


다시 주베트남 대사관으로

9월 16-26일 북한난민과 강냉이모임 회원등 18명은 베트남 국경폭포를 넘고, 베트남 군대에 체포까지 되면서 목숨을 건 7천Km의 대장정을 하게 된다. 드디어 10월 20일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 들어서게 됐지만 한국대사관측은 "뭐할려고 여기까지 왔냐. 중국이나 여기나 사회주의 나라는 마찬가지인데…"며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 이튿날 김재오 전도사등 강냉이모임 회원들은 한국으로 철수한다. 이들이 한국에 들어온뒤 안기부에서는 3차례나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맡기고 절대로 이들이 베트남에 있다는 말은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으며, 강냉이모임 회원들도 이를 믿었다고 한다.


베트남정부 강제추방

그러나 강냉이모임 회원들은 11월 중순 중월국경지대인 중국남방에서 홍 씨가 구조요청을 해왔다는 기막힌 소식을 듣게 된다. 홍 씨를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한국대사관측이 이들을 베트남 정부측에 인도했고, 다시 베트남 정부는 이들을 인접국으로 강제추방을 한다. 하지만 중국군대 역시 난민들을 다시 베트남쪽으로 내몰았고, 이들 전원은 베트남 군대에 체포되어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다녔다. 베트남 내무성 책임자는 "한국정부가 받지 않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중국공안에 넘겨 북송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다시 중국쪽으로 내몰린 난민들은 체포를 피해 지뢰밭으로 달아난 것이다.

현재 13명중 고 있으며, 구조요청을 해온 홍 아무개 씨는 현재 강냉이모임이 보호하고 있으나, 지뢰밭으로 들어간 나머지 7명의 소재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를 믿었다"

김재오전도사는 "정부에 공개적으로 망명신청을 했더니 황장엽을 데려올 때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다며, 비공개적으로 진행하자고 말해 이 말을 믿었다. 하지만 국경의 지뢰밭을 피해 국경폭포를 지나 죽음을 감수하면서 베트남으로 넘어왔을 때 대사관측이 한말은 '국경으로 다시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안기부 직원은 '이들을 한국에 데려올 것이다. 텔레비전만 봐달라'고 말해 이를 믿었다"고 말했다.

그뒤 홍 씨와 현지조사를 통해 위급한 상황임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도를 미뤄온 것은 안기부측이 이 사실을 공개하면 북한난민 13명을 데려올 수 없다는 협박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결국 이 북한난민의 사건을 알리는 것이 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기자회견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도사는 "이들이 북한으로 송환되는 절차를 밟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한국정부가 이들을 송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요청했다.


천주교인권위 현지조사

또한 천주교인권위는 지난 11월 27일 베트남과 11월29일 중국 현지 조사작업을 마쳤으며, 이 과정에서 외무부등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천주교인권위는 이날 성명발표를 통해 "북한식량난민들이 중국에 머물고 있을 때, 이들은 주중국 한국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한 바 있고, 그 딱한 사정은 김수환 추기경을 통해 김대통령에게도 전달된 바 있다. 정부는 이들의 무사송환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이후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확인되듯이 안기부, 외무부 등 정부당국의 비인간적인 대응은 '살인지령에 의한 죽음의 행렬'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나 또는 겨레의 관점으로 보아도 명확한 범죄행위"이며, "정부는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무한책임을 느끼고, 북한주민들이 굶주림 때문에 낯선 외국을 떠돌지 않도록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기부등 보도자제 요청

안기부를 포함해 정부는 강냉이모임등에 보도자제를 요청한 것외에도 지금까지 언론사측에 보도통제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보도기자는 "외무부와 안기부는 보도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 7명이 중국에 억류되어 있는데 사실이 밝혀지면 북으로 넘기겠다는 압력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권하루소식 1997년 12월 3일 수요일 제10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