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은 지난 4월 17일 대법원의 상고심을 확정하는 판결을 내려, 5년 가까이 지속된 나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을 둘러싼 법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시대정신과 너무나 거리가 먼 <국가보안법>에 의거한 판결이기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국가보안법>이 안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이 시대착오적인 법은 단순한 하나의 법체계를 넘어서서 이미 살아진 냉전의 굴래 속에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구하는 개인과 집단의 생활세계를 여전히 가두어 두고 있는, 총체적인 검열과 억압체계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이곳에서 또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주독 한국대사관의 <국정원>파견 김형수 참사는 베를린에 있는 <코레아 협의회>를 찾아 이 단체가 나와 어떤 관계인지, 또 나와 함께 무슨 행사를 계획하는지 등을 탐문하였고, “송교수는 범죄자”라고 까지 말하면서 근무자들을 겁주고 협박하였다. <코레아 협의회>는 30년 이상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고 독일통일의 경험을 반추하며 한반도통일문제를 꾸준히 연구해 온 한국인과 독일인으로 구성된 단체로서 나의 석방운동도 활발하게 벌렸다. 이 단체는 이 같은 몰상식한 일을 처음 경험하였기 때문에 강력한 항의내용을 담은 편지를 주독한국대사 앞으로 발송하면서 이의 사본을 나에게도 보내왔다. 이 단체는 지난 5월 31일 베를린에서 여러 아시아지역 연구단체, <독일 공화주의 변호사 모임>과 함께 <안보 대(對) 인권? 아시아와 독일의 대테러투쟁에서 국가안보와 인권보호>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가졌다. 나는 이 세미나에서 한국의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강연을 했다. 바로 이 사실을 문제 삼아 <국정원>은 독일 땅에서마저 공안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나는 <국정원>의 이러한 불법적인 행위에 대하여 강력히 규탄하며 동시에 이 사실을 독일의 해당기관과 시민단체에도 알리겠다.
이러한 분위기는 국내의 정치상황의 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왜 평화적인 촛불시위가 두 달 넘게 지속되었는지에 대한 자기반성 대신에 <국정원>, <검찰>등 이른바 <공안세력>과 보수언론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여전히 <친북-반미 좌익세력>이라는 배후세력론을 열심히 펴고 있다. 특히 <조중동>의 한심한 논조를 보면서 2004년 7월 21일 서울구치소를 뒤로하면서 했던 나의 발언을 - “썩은 내 나는 조중동이 있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에 희망은 없다” - 다시한번 떠올리게 된다. 평화적인 촛불집회가 남긴 중요한 성과의 하나가 바로 진실과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여론을 호도하여 민주주의 제도화를 줄곧 방해해온, 이른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본질확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끝으로 <국가보안법>위반을 둘러싼 정말로 지루한 나의 법적 투쟁이 오늘로서 일단 종결되었지만 이 사건은 또 하나의 촛불로서 계속 타올라 앞으로 <국가보안법>의 철폐는 물론,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민족의 화해와 상생의 길을 밝혀줄 것으로 확신한다.
30여년의 긴 나의 투쟁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던 지난 5년, 저와 저의 가족을 따뜻하게 지켜주신 변호인단, <대책위>의 여러분들, 그리고 한 분 한 분 거명할 수 없는 국내외의 수많은 지지자와 성원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베를린, 2008년 7월 24일
송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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