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공성과 인권] 제주도 영리병원 허용, 의료 민영화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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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공성과 인권] 제주도 영리병원 허용, 의료 민영화 신호탄
  • 이현옥(건강세상네트워크 홍보팀장)
  • 승인 2008.07.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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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인터넷을 통해 ‘의료보험민영화’, ‘건강보험민영화’라는 표현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겠다는 입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고, 미국이나 네덜란드와 같이 민간보험의 역할이 큰 나라들의 제도를 검토하겠다고 정부부처에서는 네덜란드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었다. 또한 기획재정부는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를 만들기 위해 2008년 보건의료분야에서 영리법인 병원을 도입하고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해 건강보험의 개인질병정보를 민간보험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가족부 장(차)관도 아닌 기획재정부 차관이 반장인 ‘민간의료보험실무협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할 계획도 덧붙였다. 의료의 공공성을 포기하고 의료를 하나의 성장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본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지난 4월 개봉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는 우리 국민들에게 건강보험이 없고 민간보험이 활성화된 미국식 의료가 얼마나 위험하고 처참한지 보여주었다. 거의 무상의료가 보장되는 선진국에 비해 건강보험 보장성 60%의 한국의 의료현실에서 ‘식코’는 한국정부가 미국식 의료를 따라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를 주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식코’는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6만 관객을 모아 흥행작이 되기도 했다.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현장에도 드러났다. ‘광우병 걸린 소고기 먹고 의료민영화 되어 죽으면 대운하에 뿌려다오’라는 피켓은 압권이었다.

의료 민영화의 3대 요건

인터넷과 촛불집회를 통해 ‘의료민영화’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관심이 증폭되자, 보건복지가족부는 ‘건강보험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입장발표에 시민들은 ‘건강보험 민영화하지 않는다니 이제 괜찮겠지’라고 안심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지 않겠다’는 표현에 불과할 뿐,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서비스산업화·선진화를 중단하겠다는 표현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보험 활성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의료 공공성이 파괴되고 의료가 돈벌이의 수단이 되는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크게 3가지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이며, 두 번째는 ‘영리병원 허용’ 세 번째는 ‘민간보험 활성화’이다.
먼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병원은 ‘건강보험공단’과 의무적으로 계약을 하고, 건강보험환자를 받도록 계약하는 것이다. 때문에 병원에서는 의료서비스가격을 마음대로 받을 수도 없고, 환자를 거부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부 의사와 대기업, 민간보험에서는 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 또는 완화해서 건강보험의 규제를 받지 않는 병원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반발로 일단 ‘당연지정제는 유지하겠다’고 하긴 했으나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한 당연지정제 폐지를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두 번째는 영리병원 도입이다. 현재 영리병원 도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곳은 제주도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직접 나서 제주도 산업발전을 위해 제주도는 영리병원이 필요하다며, 7월중으로 제주도 영리병원도입을 위한 입법예고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도 언론인터뷰를 통해 ‘제한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제주도 영리병원허용은 가능’하며, ‘경제자유특구같은 특별 구역에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검토중’임을 밝히기도 했다.
영리병원은 한마디로 말하면 ‘주식회사형 병원’을 말한다. 현재 병원은 비영리기관으로 영리활동에 제약이 있고 수익을 내더라도 사회나 국가로 환원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자본시장, 즉 주식과 채권 발행을 통해 자본조달이 가능해지고, 대자본의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영리병원이 허용된다면 병원은 점점 더 수익창출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나 예방차원의 공공의료서비스보다는 돈이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최고급의 의료서비스로 치장한 병원이 양산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돈 없고 가난한 환자들은 영리병원에 갈수조차 없을 것이고 영리병원은 돈 많은 부자들이나 가는 병원이 될 것이다. 의료 양극화와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고, 이런 영리병원들이 활성화된다면 비영리병원의 의료비 역시 증가할 것이다.
돈 많이 낸 것만큼 의료서비스 질도 좋으냐?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의료영리화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 영리병원의 의료서비스 질은 그다지 좋지 않다. 미국의 <U.S News and World Report>는 매년 미국 5천여 개 병원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 질 평가를 실시하고 있는데, 2007년 결과는 미국 영리병원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Best Hospital’로 뽑힌 18개 병원 중에 영리병원은 단 하나도 없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민영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 민간보험이다. 민간의료보험 상품은 보험금 지급방식에 따라 정액형과 실손형으로 구분된다. 정액형은 ‘사고시 OO만원, 암진단시 OO만원’으로 광고하는 대부분 생명보험회사에서 출시하는 보험상품이 대부분이고, 실손형은 자동차보험을 연상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부터 생명보험회사들을 중심으로 민간의료보험에서 실손형 상품을 내놓고 있다. 생명보험회사들이 출시한 실손형 보험상품은 가입자가 매달 몇 만원씩 보험료를 내면 계약기간 동안 가입자의 병원 진료비 중 본인부담금의 최고 80%까지 보험회사에서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보험회사에서는 이러한 실손형 민간보험회사가 더욱 시장을 넓혀가기 위해서 건강보험의 개인질병정보가 꼭 필요하다며 이를 공유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민간보험회사에서 가입자의 의료비를 80%까지 부담해준다는데 왜 반대할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회사가 단순히 가입자의 보장을 위해 개인정보를 달라는 것도 의아할 뿐 아니라 민간보험 활성화가 모든 국민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까 의심을 품을 수 있다. 개인질병정보를 통해 민간보험회사는 건강한 가입자를 골라낼 것이고, 건강보험에 비해 비싼 보험료는 고소득계층만 접근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득계층에 따라 건강불평등은 더욱 악화될 것이고, 돈 많은 사람들은 값비싼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돈 없는 사람들은 더욱 열악한 건강상태에 처할 것이다.

더 나아가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에 동시에 가입한 고소득계층은 사회연대성 차원에서 내는 건강보험 가입을 거부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은 당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는 당연한 수순이고, 민간의료보험은 활성화되고 건강보험은 재정적자를 면치 못하고 보장성 수준은 현재보다 더욱 열악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다. ‘식코’가 보여준 미국 의료가 우리에게도 현실화될 것이다.
의료 민영화를 막기 위한 싸움이 제주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주도 영리병원 허용은 단지 제주도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도에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곧 전국의 경제특구에 영리병원이 허용될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다. 의료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막고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