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소금과 효소도 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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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소금과 효소도 끊습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8.08.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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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륭분회장, 응급조치도 거부 "금메달 땄다고 요란 떠는 나라에..."
▲ 기륭전자 사태 해결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이 12일 오전 기륭전자 앞에서 열렸다. ⓒ 민중의소리 김미정 기자

▲ 기륭전자 사태 해결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중 시민사회단체 회원이 피켓을 들고 있다. ⓒ 민중의소리 김미정 기자


지난 11일 오전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이 교섭위원들에게 “마지막 회의가 될 것 같다”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정신력으로 버텨왔던 그가 스스로 ‘위기’를 직감한 듯 던진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날 저녁 3차 교섭 결과를 전해들은 김소연 분회장은 조합원들 몰래 호소문을 작성했다.

호소문은 ‘단식 63일차 소금과 효소를 끊습니다. 강제 병원 후송도 응급조치도 거부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어제 4시 기륭전자측과의 교섭은 교섭이 아니었습니다. 일방적인 기륭전자측의 입장통보와 분회가 요구안을 제출했지만 진지한 검토도 없을뿐더러, 대화가 되는 사람들끼리만 논의하자며 분회교섭위원이 퇴장해 줄 것을 요구하는 기막힌 자리였습니다. 기륭전자는 여전히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의 목숨은 아랑곳 없이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불법파견에 맞서 1080일이 넘도록 투쟁하고 있고, 생사를 오가는 단식 62일차 였던 어제 전 너무도 참담했습니다.

기륭전자분회는 어떻게든 노사간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기륭전자는 어떠한 법적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일관된 입장과 국내생산시설은 하도급을 포함하여 전혀 없다고 주장해 오면서 제 3의 회사 신설 즉 취업알선을 해주겠다는 입장에서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륭전자분회에 의해 기륭전자의 주력생산시설인 위성라디오 라인이 설치되어 있는 공장이 확인 되었습니다. 기륭전자분회원들은 순간만을 모면하려는 사측의 기만적인 모습과 거짓말에 분노했습니다. 이러한 기륭전전자 측의 모습은 1080일을 투쟁해 오면서 우리 조합원들이 보아온 일관된 모습입니다.

많은 동지들이 저희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살아서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기륭전자 사측도 교섭자리에서 당신들이 단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단식을 중단하는 것, 그 길은 기륭전자가 그간의 불법행위를 반성하고 노동조합의 요구안을 수용하는 길입니다. 우리의 요구는 무리하지 않습니다. 기륭전자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단식 62일이 넘어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동지들! 현재 단식하고 있는 제가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기륭전자에게 다시 한 번 항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동지들의 많은 염려 때문에 가능한한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지 않고 최대한 버텨보자고 잘 넘어가지 않는 물도 열심히 마시고, 혈당저하로 쇼크 오는 것을 가능한 막아 보려고 효소도 조금씩 먹으며 유지해 왔습니다. 단식 50일차에 '입관식'까지 하면서 관에 사람이 실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할 것들을 모아 담아서 태워버리자고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지들! 지금의 현실은 우리의 결의대로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현재 기륭전자는 우리의 목숨을 완전히 내놓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설마 너희가 정말 죽겠냐고 하면서 외려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기륭전자의 문제가 부각되고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정부여당과 기륭전자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또 한 번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오늘 이시각부터 저는 효소와 소금을 끊습니다. 물만으로 얼마나 더 버틸지 알 수 없지만, 기륭전자가 결단할 때 까지 가겠습니다. 제가 쓰러져도 강제 병원 후송도 응급조치도 거부합니다. 건강을 염려하는 동지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제 제가 더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비가오고 천둥번개가 치던 어젯밤 밤새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단했습니다.

기륭전자는 그들이 저지른 불법파견에 대하여는 벌금 500만원 내고 죄값을 다 치뤘다고 큰 소리 치면서, 법에서 너희들을 복직시키라고 하지 않았다. 부당해고 소송에서 지지않았냐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시혜를 베풀어서 그나마도 취업알선을 해주는 것이라고 배짱을 부리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비정규 노동자드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법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비정규직은 이렇게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너무도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동지들! 절박한 기륭비정규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동지들의 가슴을 아프게 해서 죄송합니다.

2008년 8월 12일 단식 63일차 김소연 드림


기륭분회 조합원들은 이날 오전 10시경 기륭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정부와 한나라당, 기륭전자를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이 시작되어서야 김소연 분회장의 결단을 알게 됐다. 조합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고 목이 메어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전날 오전 김 분회장으로부터 ‘마지막 회의’라는 말을 전해 들었던 교섭위원들은 억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 기자회견 도중 기륭 비정규조합원이 피켓을 들고 있다. ⓒ 민중의소리 김미정 기자
윤종희 조합원은 “사측이 교섭장에서 기륭분회를 무시하고,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는 모습에 분노한 결과”라며 김 분회장의 심정을 전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정부와 여당, 기륭전자를 향해 "단식 노동자들에게 우려하던 일이 일어난다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이상윤 정책위원은 김 분회장의 결단을 두고 “옥쇄를 결심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물과 최소한의 영양분, 소금이 필요한데 소금과 효소를 거부한 것은 단시간에 효과가 나타난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이 “지난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집단 단식농성에서도 한 차례 기록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농성단은 투쟁 수위를 높이기 위해 효소와 소금을 끊었고 결국 2-3일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했다. 이 위원은 김 분회장이 “하루에서 길게는 2~3일 정도를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의학적 소견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조용선 변호사는 “올림픽 금메달 딴다고 요란 떠는 나라에 기륭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조 변호사는 “64만원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한 양극화의 굴레는 계속되고, 우리의 후손들은 그 굴레를 벗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용의 자유, 계약의 자유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해고를 막을 ‘노동의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 속에서 형성된 노동법의 정신을 존중하지 않는” 기륭전자와 노동부를 규탄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전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참여연대, 보건의료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은 “정부와 국회는 기륭전자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대책을 강구하라”고 촉구한 뒤 “6월 7일 기륭전자와 노사가 합의한 안보다 후퇴한 7월 23일 안으로 중재에 나선 한나라당은 편파적 대응을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기사입력 : 2008-08-12 12:26:47
최종편집 : 2008-08-13 08:30:00ⓒ민중의소리

<민중의소리> 윤보중 기자 bj7804@nate.com
http://www.vop.co.kr/A000002186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