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와 인권] 알려지지 않은 당신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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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와 인권] 알려지지 않은 당신의 가족
  • 로넬 차크마 나니 (재한줌머인연대 활동가)
  • 승인 2008.08.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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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소수민족 줌머(Jumma)인 로넬 차크마 나니(Ronel Chakma Nani)입니다. 저는 한국을 저의 안전한 거주지이자 마지막 목적지로 선택했습니다. 1994년에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저는 제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와 음식 문화, 사회 관습과 자유로운 종교예식은 방글라데시 치타공 산악 지역의 원주민 줌머 인들과 아주 비슷하여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한국을 고향처럼, 한국 사람들을 친척처럼 여겨오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제 자신이 '줌머'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만 말입니다.

방글라데시 줌머 인은 누구?

줌머인들은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지만 주류 방글라데시 사람들과 다르게 코가 납작하고 이마는 평평하고 피부색은 밝은 황색이고 머리카락은 가는 직모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이나 방글라데시 인들에게 외국인 또는 이방인처럼 보입니다. "줌머"는 치타공 산악 지역에 사는 11개 소수 민족을 통칭하는 이름입니다. 그들은 차크마(Chakma), 마르마(Marma), 트리퓨라(Tripura), 탕창갸(Tangchangya), 쿠미(Khumi), 루사이(Lusai), 바움(Bawm), 판쿠아(Pankhua), 착(Chak), 므롱(Murong), 그리고 카잉(Khiang) 입니다. "줌머"라는 말은 "화전농"을 뜻하는 현지 언어 "줌"에서 왔습니다. 줌머 인들의 생활과 생계는 정글과 구릉지대, 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방글라데시의 지배층이며 방글라데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벵갈리인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문화적 생활 방식도 매우 다릅니다. 종교에 대해서도 줌머인들은 불교, 힌두교, 기독교(가톨릭과 개신교) 등 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지만 방글라데시의 국교는 이슬람입니다. 치타공 산악 지역의 줌머 인구는 약 65만~70만 명 정도이며 방글라데시 전체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치타공 산악 지역(Chittagong Hill Tracts, CHT)

▲ 치타공 산악지대의 위치
치타공 산악 지역(이하 CHT)은 방글라데시 동남쪽에 위치해 있고 버마와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CHT에는 3개의 구릉지대 랑가마티(Rangamati), 카그라차리(Kagrachari), 반다르반(Bandarban)이 속해 있습니다. 랑가마티 지역은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인기 있고 아름다운 여행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CHT는 북쪽의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평지인 방글라데시의 다른 지역들과 환경적으로 아주 다릅니다. CHT는 정치와 역사적인 시각으로도 다른 지역과 구별됩니다. 영국 식민정부에 합병되기 전이었던 18세기까지만 해도 CHT는 독립된 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지배자들은 CHT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에게 제한적인 자치를 보장하여 줌머인들의 자유를 일정 정도 보호했습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파키스탄의 영토에 속했고, 그 후 지금까지 방글라데시의 영토에 속해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CHT는 과도하게 군대가 밀집한 지역이며 세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지역들 중 한 곳입니다. 방글라데시의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CHT는 비공식적으로 군대가 통치를 하고 있습니다. CHT는 1997년 줌머와 방글라데시 정부 사이의 평화협정이 맺어지기 전에 통제구역이 되었고 현재 외국인이 CHT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증을 받아야 합니다.

CHT에서 무슨 일이?

방글라데시는 1971년 당시의 서 파키스탄에서 독립하여 국가가 되었습니다. 당시 독립을 하기 위해 벌인 전쟁에서 줌머인을 포함해 방글라데시 측에서 3만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줌머 인들은 방글라데시(동 파키스탄)가 파키스탄(서 파키스탄)에서 독립하자마자 방글라데시의 주류로부터 인종차별을 받았습니다. 1971년 12월 5일에는 벵갈리 인들이 CHT 여러 곳에서 줌머 인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인종차별적인 폭력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줌머인들은 방글라데시 정부가 독립을 하면 CHT의 자치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정부가 줌머 인들을 분리주의자로 몰아붙이면서 줌머인들이 저항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정부는 CHT에 많은 군대를 주둔시키고 외부에서 정착민들을 이주시키는 방법으로 줌머 인들의 저항을 억눌렀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인종청소의 일환으로 실행된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방글라데시 군대와 벵갈리 정착민들이 줌머인들에게 심각한 인권 침해를 저질렀습니다. 지금까지 13번의 학살이 벌어졌고 강제이주와 토지 강탈, 방글라데시 군대의 불법적인 체포와 고문, 줌머 여성에 대한 성폭행 등이 자행되었습니다. 또한 불교 사원과 교회 등이 파괴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1985년부터 1986년 동안 약 7만 명 정도의 줌머인들이 근처 인도로 망명을 해야 했습니다. 비공식적인 보고로는 1997년 평화협정 이전까지 약 20만 명이 방글라데시 정부가 벌인 인권침해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평화협정의 실패 이후 CHT의 인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많은 국가들과 국제 NGO들이 CHT에 의료와 교육, 빈곤완화를 위한 지원을 시작했지만 정치적인 불안정과 평화의 부재로 인해 상황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 2006년 줌머의 새해 명절인 보이사비 축제를 맞아 재한줌머인연대가 종로에서 시청까지 행진을 벌였다.


CHT의 인권 상황

방글라데시 전체의 인권 상황은 열악한 수준입니다. CHT의 원주민들의 인권 상황은 더욱 열악합니다. 줌머 인들은 이동과 표현의 자유, 정치 활동의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안전한 삶과 재산을 가질 자유조차 박탈당한 상황입니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줌머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과 방화, 살인이 수 차례 벌어졌습니다. 2003년 10월 26일에는 CHT 북쪽 지역에서 방글라데시 군대와 벵갈리 정착민들이 12마을의 가옥 400채와 불교 사원에 불을 지르고 2명의 줌머 인을 살해하고 11명의 줌머 여성을 성폭행하는 최악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1월 11일에 방글라데시에 국가 비상상태가 선포되면서 특히 지역의 군대가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군대는 시골 지역의 줌머 인들을 가혹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테러를 근절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는 줌머 마을에서 불시 작전이나 가택 수색을 벌이고 허위로 범죄 혐의를 만들어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체포하고 고문하였습니다. 또한 정착민들이 줌머 인이 소유한 토지를 점령하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올해 4월 20일에 벵갈리 정착민들이 줌머 마을 4곳에서 조직적인 방화를 저질러 가옥 수백 채가 불에 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줌머 인들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게 하여 토지를 가로채기 위한 것입니다.

줌머의 상황을 위한 국제적인 연대운동은 다른 국제 이슈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약한 편입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 호주, 영국,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줌머인 공동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줌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줌머 공동체와 함께 활동하는 국제인권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한줌머인연대가 활동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약 10여년 동안 줌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단체와 개인들이 다양한 연대활동을 함께 해왔습니다. 재한줌머인연대가 벌이고 있는 CHT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과 줌머의 문화와 전통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함께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재한줌머인연대가 직접 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을 지원받았고, 때로는 동지로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활동을 하면서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아직까지 한국 사회가 줌머 문제에 가지는 관심의 정도는 일본이나 미국, 호주,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재한줌머인연대가 더 오래, 더 넓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의 연대와 지지가 지금보다 더 많이 필요하겠지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굳이 강조해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가 하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로넬 차크마 나니 님이 영어로 쓰신 글을 재한줌머인연대와 연대하는 ‘경계를 넘어’의 수진 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