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인권] “사람은 결코 일회용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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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인권] “사람은 결코 일회용품이 아니다”
  • 윤애림(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 법학박사)
  • 승인 2008.10.24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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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성모병원 파견노동자 해고사태를 보는 다른 시각
지금 강남성모병원에서는 9월 30일자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파견노동자들이 병원측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사태가 한 달 넘게 계속되면서 시민사회인권단체들이 나서서 병원 측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대화를 성사시켜보려 애쓰고 있으나, 병원 측의 면담 거절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병원 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대화는 계속 거부하면서도, 「환자와 가족분들께 드리는 글」(2008. 10. 2. 게시 및 배포)을 통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지면 관계상 병원측 입장을 요약하자면, ①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파견업체를 통해 공급받아 병원에서 약 2년가량 근무한 파견노동자들이고, ② 현행 비정규법에 따르면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③ 이에 따라 해당 노동자들은 강남성모병원에서는 계속 일을 할 수 없지만, 타 기관에 새로이 취업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④ 강남성모병원이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법적,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강남성모병원과 비정규노동자간 문제가 대화로서 해결되는데 있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다음에서 병원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고자 한다.

강남성모병원은 파견업체로부터 노동자를 ‘공급’받았을 뿐인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간호보조 업무는 원래 정규직 노동자가 하던 일이었는데, 2002년 이후 병원이 직접 채용한 계약직 노동자들이 그 업무를 담당해왔다. 그런데 2006년 10월부터 병원은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파견업체 소속으로 전환될 것을 강요했다.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강남성모병원은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사흘 안에 파견업체와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쓰든지 아니면 그만둘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현재의 파견노동자들 중에는 2~5년 이상 강남성모병원에서 계속 근무하면서, 고용형태만 계약직→파견직으로 바뀐 사람들이 상당수이다. 노동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몇 년씩 동일한 병원에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소속만 파견업체로 전환되었지만, 실제 업무에 대한 지시․감독은 병원으로부터 받고 있고 파견업체란 그저 몇 달, 혹은 몇 년에 한 번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할 때에나 만나게 되는 제3자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요컨대 파견 노동자들이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쓴 상대는 파견업체이지만, 실제 노동자들을 사용한 사업주는 강남성모병원이 되는 것이다.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사여탈권한을 쥐고, 소속까지도 변경하도록 할 수 있는 사용사업주(병원)가 노동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가 바로 ‘간접고용’인 것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르면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할 수 없는가?

우리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 이래 일관되게 ‘중간착취 금지의 원칙’을 유지해왔고, 직업안정법 역시 1961년 제정 이래 근로자파견을 비롯한 근로자공급사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왔다. 여기에는 파견노동과 같은 ‘간접고용’이 노동자를 실제로 사용하여 이윤을 얻는 사용자가 노동법적으로 져야 할 책임을 쉽게 제3자(파견업체)에게 전가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 1998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은 이처럼 반(反)노동법적인 간접고용을 일부 합법화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간접고용의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파견노동에 대한 규제들을 포함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파견노동을 전문적 지식․기술이 필요한 업무에 한하여 최장 2년까지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만약 2년을 초과하여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경우 사용업체가 직접 고용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이는 파견노동의 상시적 사용을 금지하면서, 장기간 동일한 사용업체에서 근무한 파견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이다. 그런데 많은 기업들이 이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2년마다 파견노동자를 교체하는 탈법을 사용해왔다. 파견법의 전체 구조를 놓고 보면, 이러한 기업의 행태는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으로서, 노동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행위이다.

2007. 7. 1.부터 시행되고 있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역시 똑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기간제 고용이 상시적 업무에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장기간 근속한 계약직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위해, 2년 이상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한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현실은 거꾸로 나타나서 2년이 되기 전에 계약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파견 노동자를 최장 2년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강남성모병원의 주장은, ‘비정규직 보호법’의 허점을 활용할 것일 뿐, 계약직․파견직 노동자를 장기간 사용한 경우 그들의 고용을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노동법의 원리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약 병원의 주장대로 기업은 비정규직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수십년간 계속 사용할 수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2년 이상 한 직장에 근무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법의 취지라면, 거기에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명칭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다른 기관에서 새로 취업을 하면 되는데 왜 굳이 강남성모병원에 남고자 요구하는가?

강남성모병원의 주장대로 이번에 해고된 파견노동자들이 다른 곳에서 취업을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 파견업체 메디엔젤에서는 다른 곳에 일자리가 있는 경우 알선을 해 주겠다는 제의를 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 입장에서 이는, 오늘의 해고 사태를 1~2년마다 계속 겪어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미 이들은 계약직 2년 → 파견직 2년 → 실직이라는 고용불안을 경험하였고, 다른 병원에 다시 파견노동자로 취업하더라도 또 1~2년 후에는 실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일도 익숙해지고 책임감도 가지게 된 현재의 일자리에서 고용불안 없이 계속 일하기를 바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망이 비상식적인 것인가, 아니면 노동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회용품처럼 계속 교체하려는 병원측의 희망이 비상식적인 것인가?

“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의 잿더미 속에서 1919년 창립된 국제노동기구(ILO)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세계의 평화와 조화를 위태롭게 할만한 중대한 사회불안을 야기시키는 부정의, 고난, 궁핍을 포함하여 … 근로조건”의 개선을 국가와 사회의 엄숙한 책무로 선언하면서, 노동자는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870만 명을 넘어서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 버린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비정규노동자는 마치 물건처럼 일회용품처럼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존재 조건 속에서 내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노동에 헌신하기를 기대하기는 무망할 것이다. 지금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병원 측이 고용보장에 대해 직접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이 병원에서 떳떳하고 책임감을 가진 주체적 인간으로 일하고 또 복무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허점투성이인 ‘비정규직 보호법’만 가지고 얘기한다면, 병원 측으로서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법이 허점을 가지고 있지 않냐고, 다른 사적 기업들도 그런 방식으로 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지 않느냐고, 법적으로는 병원의 비정규직 해고가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그러나 과연 “무엇이 상식인가”,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 강남성모병원은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자신의 노동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안정된 삶을 소망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강남성모병원에 그 책임을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