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인권] ‘제2의 대추리’, 오현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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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인권] ‘제2의 대추리’, 오현리를 아시나요?
  • 박석진(무건리훈련장확장저지시민사회단체공동대책위
  • 승인 2008.10.2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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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1일 국방부 앞에서 열린 무건리훈련장 확장 저지를 위한 1차 범국민대회


"헌법 제1조에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도둑놈처럼 남의 땅을 빼앗으려는 국방부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경찰은 국방부는 놔두고 우리를 폭력적으로 연행하고 감금하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폭력 경찰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 우리 오현리 주민들은 지난 30년 동안 무건리 훈련장 때문에 '국가 안보'를 위해서 재산권도 포기하고, 인권도 포기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훈련장을 확장한다며 수십, 수백 년 동안 살아온 고향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다른 거 다 포기할 테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하는데, 국방부는 그마저 짓밟고 있습니다. 농민들에게 고향땅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죽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고향을 잃고 나가서 죽느니 차라리 우리 주민들은 고향에서 국방부와 싸우다 죽기를 선택하였습니다." (지난 10월 11일, 무건리훈련장 확장 저지를 위한 1차 범국민대회에서 주병준 주민대책위원장의 발언 중)


거대한 군사훈련장, 그리고 주민들의 삶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무건리에 550만평 규모의 거대한 군사훈련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당시는 전두환 군사정권이 폭압적 통치를 자행하던 시절로 무건리에 살던 주민들은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하고 정든 고향에서 쫓겨나 지금의 오현리 마을로 이주하여 어렵사리 다시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96년 국방부는 다시 무건리 훈련장을 두 배 가까이 확장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당시 주민들은 즉각 이런 국방부의 훈련장 확장계획에 반대하며 ‘무건리훈련장백지화주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 국방부와 싸우기 시작했다. 평화롭던 이 마을에 훈련장이 들어 선 이래 3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주민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군사훈련지역이라는 이유로 가옥의 증․개축이 불허되는 등 경제적인 고통은 물론 하루가 멀다 하고 마을로 들어오는 전차들이 피워 올리는 먼지와 굉음에 시달려 왔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아들 같기도 하고 동생 같기도 한 군인들에게 고생한다며 라면도 끓여주고 물도 떠주며 살아왔다. 그 대가가 이제는 아예 정든 고향에서 쫓겨나게 된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한국군보다 미군이 더 많이 사용하는 훈련장

무건리 훈련장은 한미공용훈련장으로 미군이 1년 총 훈련일수 180일의 절반이상인 13주(91일)를 사용하는 훈련장이다. 주한미군 뿐 아니라, 오키나와와 괌 그리고 미 본토의 스트라이커 여단까지 사용하는 국제적 성격의 훈련장이다. 미국은 2002년 ‘LPP(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을 한국과 체결하는데 그 내용은 미국이 사용하던 전용훈련장 3949만평을 한국에 돌려주는 대신 6537만평 규모의 37개 훈련장을 한국과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이 이와 같은 협정을 체결한 이유는 한국군이 관리하는 훈련장을 사용하면 전용훈련장 유지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경제적 요인과 전용훈련장 사용 시 빈발하는 민원 및 반미감정의 유발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 그리고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더 많은 훈련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오현리는 제2의 대추리?

1996년 무건리 훈련장의 확장 계획이 발표된 이래 10여년이 넘게 지지부진하던 사업이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것도 눈여겨 볼만한 상황이다. 매년 20~30억 남짓이던 훈련장 확장 소요비용이 작년 275억, 올해 960억으로 특별회계를 편성하면서까지 책정되어 가속도를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추정컨대 미국의 강한 요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새로운 군사전략인 전략적 유연성에 관해 2006년 한국과 합의한 후 평택․오산을 중심으로 하는 전진기지와 대구․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병참기지를 건설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즉 미국의 공격적 신군사전략이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해외주둔기지의 재편과 그에 따른 군사력의 효과적인 운용 그리고 충분한 훈련여건의 확보가 필수적인데 무건리 훈련장의 확장이 미군에게 보다 나은 훈련여건의 제공을 위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무건리 훈련장 확장사업의 시행단위인 1군단 사령부의 교육참모였던 이덕건 대령이 무건리 훈련장의 확장 이유로 “한미간에 체결된 LPP협정 때문”이라고 증언한데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무건리 훈련장 확장 예정지인 오현리가 ‘제2의 대추리’로 비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훈련장이 부족해 국민들의 땅을 빼앗는다?

국방부는 무건리 훈련장의 또 다른 확장이유로 한국군의 훈련장이 부족해서 확충이 불가피하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군은 이미 전국에 1억 3000만평(여의도의 144배, 서울시 전체의 70%)에 달하는 광활한 땅을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 육군 전투병 기준으로 환산하면 1인당 230평 규모의 훈련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국방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훈련장 확장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 첫 번째 방법은 주한미군에게 필요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훈련장의 환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의 경우, 아직도 남아있는 1000만평이 넘는 전용훈련장만 환산하더라도 미 2사단의 전투병 1인당 800평 이상의 훈련장을 확보해 주고 있고, 여기에 6500만평이 넘는 37개소의 한미공용훈련장을 더한다면 1인당 4000평이 넘는 광대한 땅을 훈련장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방부는 제 나라 국민이 평생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미군에게 터무니없이 제공하고 있는 훈련장부터 먼저 환수하여 사용하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이미 충분히 확장했다. 이제 그만 확장을 중단하라!

국방부는 무건리 훈련장의 확장 예정 부지 960만평 중 오현리 이외 지역 720만평을 이미 확보했다. 여기에 협의매수에 무리가 적은 109만평의 국공유 시유지를 포함한다면 실질적으로 829만평을 훈련장 부지로 확보한 것이다. 829만평이면 여의도의 9배가 넘는 광활한 땅이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오현리 마을 118만평을 굳이 빼앗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한 훈련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국방부는 더 이상 주민들을 괴롭히지 말고 훈련장 확장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지난 9월 4일 국방부의 고시가 발표된 이래 주민들은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9월 16일부터 시작된 국방부의 강압적인 감정평가 시도는 주민들이 생업도 포기한 채 이를 막기 위한 투쟁에 나서게 만들었다. 수백 명의 전경과 사복경찰을 앞세우고 주민들의 의사는 무시한 채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감정평가를 강행하는 국방부의 행태를 보며 국방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당위는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지난 8월 1일 주민들의 의지로 첫 번째 촛불이 밝혀진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촛불문화제가 시작되고 있다. 힘들지만 해야 하는 싸움, 고향은 한번 잃으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주민들의 싸움에 함께 하기 위하여 지난 8월 14일 30여개의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무건리훈련장확장저지시민사회단체공동대책위원회’의 결성을 선포하고, 10월 11일 국방부 앞에서 1차 범국민대회를 진행하면서 무건리 훈련장 문제는 이제 범국민적 저항의 문제가 되었다. 주민들의 생존권과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 이제 본격화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