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인권주일을 맞이하며] 교회 안에서의 작은 울림만이 아닌 세상을 향한 큰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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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번째 인권주일을 맞이하며] 교회 안에서의 작은 울림만이 아닌 세상을 향한 큰 외침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8.11.3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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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퇴근길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다가 철로위에서 뭔가를 치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119 구급대원들이 있었고, 경찰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불과 몇 분 전 일어났을 참혹한 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은 색의 핏자국이 있었습니다. 누구였을지는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같은 시간 지하철 선로를 바라보며 비틀비틀 거리는 인생을 부여잡고 있을 사람들, 머뭇거림과 두려움의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한 달에 10만원 하는 쪽방 방세에 돈 몇 장 부족해서 겨우 한 보따리나 될까 말까 하는 짐을 들고 터벅터벅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사람들, 이제 겨우 한국에 오기 위해 낸 빚 다 갚고 돈 좀 모으려고 하니 마치 짐승 사냥하듯 토끼몰이를 하는 인간사냥꾼들에게 잡히고 도망가는 사람들, 자신들이 일하던 일터에서 쫓겨나 환자들 보살피러 종종걸음 치던 그 병원 바닥에 앉아 성모상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 생계가 막막하여 두 아이를 안고 들어오는 지하철에 몸을 맡긴 사람… 이 모두가 비틀거리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고 있는 것/살았던 것은 아닐까요.

2008년 12월, 예수가 지금의 세상에 오셨다면 어떠셨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는 한 분인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너무나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돈 많은 이들의 편에 서서 돈이 세상의 최고 가치라는 듯 돈 없는 사람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전쟁을 일으켜 수십만 명의 목숨을 잃게 하고,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게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외면하는 사람들, 그들이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 그들이 그렇게 죽이는 사람들, 그 모두가 지금 이 땅에 와 계신 예수는 아닐까요. 말똥 냄새 풀풀 나는 곳에서 태어나 한 평생 부자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살았던 예수, 결국 피범벅이 된 몰골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삶을 보낸 예수, 그의 그런 모습은 지금의 수많은 예수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올 해는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창립 15주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소위원회 시절까지 합하면 20년이 되는 해이지요. 그리 짧지 않은 시간, 교회 안팎에서 크고 작은 소리를 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 소리들이 어떠한 울림통으로 세상과 함께 하였는지는 감히 알 수 없으나, 늘 최선을 다해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지 1년, 10년 같은 1년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길 위에 섭니다.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뉴스가 아니라, 컴퓨터의 키보드와 모니터가 아니라 길바닥에 위에 서 있는 예수들입니다. 한 영화감독은 ‘과거’에 대해 “과거는 결코 죽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지나가지 조차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과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현재’가 되었고, ‘그 때 그 시절’이 지금의 시절이 되었습니다. 금을 모으면 다 잘 살 줄 알았더니 다시 언제 잘릴 줄 모르는 두려움에 하루하루가 지옥이 되었습니다. 있는 사람들의 돈은 다시 돌려주고, 없는 사람들의 돈을 거두어 가는 세상, 참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유현석 변호사님께서는 ‘인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권입니다.” 그렇습니다. 쫓겨난 일터에 다시 돌아가 잘릴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것, 생계가 막막하여 두 아이를 안고 철로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방바닥에 모여 끼니 거르지 않고 잘 먹는 것, 돈이 몇 푼 없어 이 한 몸 겨우 눕던 쪽방에서 언제 나가야 할지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상쾌한 아침을 몸 편한 곳에서 맞이할 수 있는 것, 누구나 고르게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인권이고,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요.

더욱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스물일곱 번째 인권주일을 맞이합니다. 더욱이 올 해 12월 10일은,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유엔에서 채택 된지 6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스물일곱 번째 맞이하는 ‘인권주일’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한 인권의 향상을 위해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교회차원에서 공동체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 무엇보다 천주교회와 교우 여러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또한, 단지 세상 안에서 존재하는 교회 안에서의 작은 울림만이 아닌 세상을 향한 큰 외침이 되고자 늘 천주교회와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그리스도의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2008년 12월 7일
스물일곱 번째 맞이하는 ‘인권주일’에 즈음하여
천주교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