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과 인권] 60년 전,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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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인권] 60년 전,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던 날
  • 한지연(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간사)
  • 승인 2008.11.3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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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현격히 구속자 숫자가 줄어든 까닭은 한총련을 탈퇴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처벌받는 학생들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이후 10여년간 국가보안법은 전국적인 규모의 대학생 자치조직을 성공적(!)으로 와해 시켰다.
국가보안법이 제정된지 60년이 되었다.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의 열 번째 법으로 공포되었다.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1948년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이 하루하루가 숨 가쁜 날들이었다. 미군정하에서 남한만의 단독선거(5월 10일)가 치러지고,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제주4․3항쟁, 제주 진압을 거부하는 여수 순천 지역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키는 여순사건(10월 9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국가보안법은 내란 내지 남로당원을 단속하기 위해 ‘내란행위특별조치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제안되었으나 구형법의 내란죄1)와 중복된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바꿔달고 제정되었다. 당시 국회 속기록을 통해 보면 당시 법무부 장관은 “비상시기 비상조치로 인권옹호상 조금 손상이 있더라도…” 건국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하자고 주장하였고, 법사위원장 조차 여순사건이 일어나자 시급히 법안을 기초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또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제출되자 동시에 ‘국가보안법 폐기안’이 함께 제출되어 표결에 부쳐지기도 하였다. 국가보안법은 애초 제정의 취지가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을 잡기위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 요동치는 건국 정국에서 건국에 이바지하기 위해 이승만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좌익세력을 소탕할 목적으로 인권옹호상 손상이 있는 줄 알면서 한시적으로 만든 법이었던 것이다.

▲ 지난 8월 27일 옥인동 대공분실 앞에서 열린 사노련 공안탄압 분쇄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기자회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감옥에 간 사람들만 피해자 일까?

좌익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섯 조항의 국가보안법은 그 이후 점점 비대해졌고 정권이 원할 때 마다 구원투수로 활약하였다. 정치권력의 위기 때 마다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만들어 내서 성난 여론을 잠재우는데 사용되어 졌다.
국가보안법이 환갑의 나이를 맞은 지금, 예전에 비해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갇히는 사람의 숫자는 많이 줄었다.2)



법원의 판결 경향도 변해 시끌벅적 간첩단 사건이라 보도된 사건들도 재판 끝에 ‘간첩단이 아니더라’고 판결이 나고, 건국이래 최대의 간첩이라던 송두율 교수도 따져보니 ‘무죄’더라는 판결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감옥에 가는 이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이 고사 되었다거나 사문화 되었다고 여길 수 있을까? 반대로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가는 사람이 늘어야만 국가보안법이 다시 살아나 기승을 부린다고 볼 수 있을까?
국가보안법은 60년동안 작동되면서 우리 사회에 국가보안법적 발상을 만들어 냈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이분법, 생각과 표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옳고 그른 것으로만 나눠보는 흑백논리, 원하지 않아도 양심을 드러내 보여야 하는 반성(전향)강요, 그리고 위에 나열한 것들을 당당히 남에게 잣대로 들이대는 사람들을 존재하도록 하였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선생은 신문 칼럼을 통해 이런 현상을 가리켜 ‘빨간색 강박증’이라 불렀다. 단순 공포증은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을 피해가면 되지만 강박증 환자들은 공포를 일으키는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을 진행한다는 면에서 다르다고 한다.

여전한 빨갱이 소탕?

최근 익명의 거액 기부자로 밝혀진 배우 문근영을 둘러싼 악의적인 논란을 보면 감옥에 가는 사람만이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국가보안법적 발상, ‘빨간색 강박증’이 여전히 기세등등하며 젊은 여배우의 기부행위를 선행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좌빨’로 매도하고 있는 지금 현실에서 감옥에 가는 사람이 줄어들었으므로 국가보안법이 죽었다고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직도 60년 전 건국에 반대하는 좌익세력을 총 들고 소탕하러 다니던 시절처럼 국가보안법적 발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소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널렸고 그런 소탕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이런 식의 ‘소탕’은 예의도 염치도 없이 ○○○의 외손녀라는 식으로 연좌제를 적용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현재 부산인권센터 공동대표이자 전 부산민가협 대표를 지냈던 이정이씨를 올해 대한민국 인권상 후보로 추천하였다. 국민, 동아등 보수언론은 민가협이 비전향 장기수 송환과 한총련 합법화 등의 활동을 했고 한미FTA범국본과 광우병대책회의 소속단체라는 이유들을 들어서 민가협이 골수반미친북단체라 하였다. 나아가 이런 단체의 대표를 인권상후보로 추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친북성을 지적하며 국가인권위에 빨간색을 덧칠했다. 국가인권위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이들에게 인권상 추천은 계기가 되고 민가협은 도구가 된 것이다.

‘빨간색 강박증’이 없는 세상

다양한 생각과 가치들이 존중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역설적으로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구조와 인물들의 공격적인 표현에 숨쉬기 답답해하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국가보안법 제정 60년이라니 감옥에 국가보안법 적용 구속자가 몇 명이냐고 물어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감옥에 간 이들이 제법 늘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간 사람이 몇 명인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보안법을 기관총 삼아 ‘소탕’이 여전히 가능한 공간들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것으로는 위안도 되지 않을 만큼 숨을 쉴 수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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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형법은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고 5년이 지난 1953년에 제정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미군의 군정법령에 정한 바에 따라 일본 형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2) 최근 몇 년간 현격히 구속자 숫자가 줄어든 까닭은 한총련을 탈퇴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처벌받는 학생들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이후 10여년간 국가보안법은 전국적인 규모의 대학생 자치조직을 성공적(!)으로 와해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