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인사] 말똥냄새 진동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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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인사] 말똥냄새 진동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를 기억합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8.12.3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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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냄새 진동하는 마구간에 피난민의 아들로 나신 예수 / 모양새도 없고 볼품도 없는 목수의 아들로 나셨습니다.

다시 맞는 성탄절 / 거창하게 단장한 수많은 교회당은 / 수많은 바리세인이 호사스런 옷으로 단장하고 / 주님을 맞는 찬송을 드립니다 / 그러나 주님은 그곳에서 안 계십니다 / 아니 쫓겨 나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되어 외로움에 병든 사람들에게 찾아 오십니다 / 그들은 주님을 절실하게 찾고 갈망합니다.
이 땅에 얼룩진 테러와 전쟁 / 갈등과 피의 보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찾아가시어 어둠과 저주의 담을 허무시고 / 생명과 소망과 평화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 감격에 찬 성탄의 찬송이 이 땅에 가득하게 울려 퍼지게 하소서
[성탄절에 오신 예수 / 김선옥]


다시 성탄입니다. 2000년 전 세상에 밝은 빛을 전하러 아기 예수께서 오신 그날입니다. 하지만 성탄의 ‘기쁨’을 글자 그대로 가지는 것이 욕심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그 빛에 모두가 기뻐해야 하겠지만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그 빛은 공평하게 비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위해서 제일 먼저 희생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최저임금도 안되는 월급을 받다가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는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폭력적인 단속에 ‘사냥’ 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사치라면 우리의 성탄은 마냥 기쁠 수 없는 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약자를 보호하고 편들어야 할 국가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2008년 5월부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는 모든 분야에 걸쳐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몰아내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반수를 훨씬 넘는 거대 여당의 탄생으로 이런 독선이 더욱 힘을 받고 있습니다. ‘강부자’와 ‘고소영’으로 대변되는 세력을 등에 업은 권력은 ‘규제철폐’를 통해 재벌과 토건족, 투기꾼의 이윤추구의 자유를 무제한 확장하려 합니다. ‘세금감면’을 통해 이미 산처럼 부풀어 오른 1% 부자들의 금고에 99% 서민의 돈을 몰아주고 있습니다. 교육을 ‘선진화’하겠다는 것은 “돈 많은 순서대로 좋은 대학 가자”는 것이며 사교육업자들의 배를 불려주는 것입니다. 공기업 사유화, 의료 민영화 시도, 한반도대운하, 한미FTA 등 극단적인 사회 양극화, 서민생계의 극한적 파괴, 심각한 환경파괴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저항하는 국민에게는 공안정국 조성이라는 오래된 카드로 억누르고 통제하려나 봅니다. 국정원 강화를 위한 3대 악법이라고 불리우는 국정원법,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악과 테러방지법 제정이 국회 문턱까지 가 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이미 사실상 사전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이버 상 토론과 여론의 생성을 통제하겠다는 발상도 법으로 만들어질 참입니다. 구시대 유물인줄 알았던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탄압은 더욱 거세졌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온갖 정책을 국가가 쏟아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는 자신이 선포한대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선포하신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빚어진 강남성모병원 사태는 세상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살아가야 하는 교회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보여준다는 생각입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비현실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없는 교회를 꿈꾸는 것도 비현실적일까요? “자본가들과 고용주들이 대체로 명심해야 할 원칙은 자신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곤궁한 자들과 불쌍한 자들을 억압하고 이웃의 비참을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법과 실정법이 모두 금한다는 사실”(노동헌장 14항)을 명심하는 교회를 꿈꾸는 것도 비현실적일까요? 세상은 교회가 선포하는 말이 아니라 교회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 교회가 행하는 실천을 보고 주님을 느낄 것이기에 이런 질문은 더욱 절박합니다.

새해가 다가옵니다. 다가오는 2009년은 2008년과는 다른 해가 되길 기도해 봅니다.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다짐을 가지고 높은 곳으로 향하려는 우리의 욕심에 채찍질을 합니다. 오래 전 그분이 “말똥냄새 진동하는 마구간”에서 태어난 이유를, “거창하게 단장한 수많은 교회당”에는 없는 이유를 항상 가슴에 담겠습니다. “참된 변화와 희망의 바람은 우리 자신에게서 불어옵니다”라는 오체투지의 정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낮은 곳에 시선을 맞추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야겠다고 마음을 다져 봅니다.

올 한해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위해 쏟아주신 애정과 냉철한 비판에 감사드립니다. 그러한 애정과 비판 덕분에 지금까지 맥을 이어온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마땅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새해에도 억울하고 슬픈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향해 함께 걸어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즐겁고 복된 성탄 되시고, 새해에도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