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와 인권] 에이즈,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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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와 인권] 에이즈,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
  • 강석주(한국HIV/AIDS감염인연대)
  • 승인 2008.12.30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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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세계 에이즈의 날은 1988년 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보건장관회의에 참가한 148개국이 에이즈 예방을 위한 정보교환, 교육홍보, 인권존중을 강조한 ‘런던선언’을 채택하면서 제정되었다. 한국에서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등이 에이즈의 날을 기념하긴 하지만, 364일 동안 감염인의 인권과 지원을 생각하지 않다가 단 하루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날 정부의 행사는 HIV/AIDS 감염인이 처해있는 현실을 배제한 채 1회성 홍보행사 및 정부 직원 상주기 행사를 세계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로 진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질병 중 하나로 에이즈를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에이즈는 미국에서 질병이 명명된 지 25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1987년에 처음으로 에이즈 환자가 발생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의 에이즈는 ‘공포의 질병’, ‘더러운 질병’, ‘문란한 질병’의 굴레를 벗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듯 에이즈 감염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싸늘하기만 하다. 이런 사회적인 제약과 지원의 미비로 인하여 감염인들은 음지에서 힘들어 하고 있다.

에이즈는 무서운 질병이 아니다. 에이즈는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 감염되는 질병이 아니며, 성행위를 하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감염 될 수 있는 질병인 것이다. 에이즈라는 질병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만해도 에이즈는 공포의 질병이었다. 에이즈에 대한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았고, 원인을 알기도 어려워 ‘제2의 흑사병’이라고 불리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86년 미국에서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인 지도부딘(zidobudone)의 개발로 인하여 에이즈 치료의 희망을 주었다. 이후에 여러 가지 치료제가 개발되었고, 일명 ‘칵테일 요법’이라고 부르는 3제 병용요법(HAART)1)을 통하여 에이즈는 치료 가능한 질병이 되었다.

아직까지 완치제는 개발되지 않았지만, 에이즈는 당뇨와 고혈압처럼 적절한 치료를 통하여 관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불과 27년만에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질병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으며, 현재에도 각 제약회사에서는 더 좋은 치료제와 완치제 개발을 위해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에이즈 치료제 개발로 더 이상 환자들은 ”에이즈로 인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치료를 통하여 일상생활”이 가능해야 함에도 아직까지 환자들은 이러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에이즈 치료제가 전 세계적으로 27개나 개발이 되어있고, 각 제약사들은 에이즈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에이즈 치료제는 환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환자에게 치료제는 그림의 떡이다.

한국에서는 에이즈 치료제 비용 중 80%를 국민건강보험에서 지급하고 있으며, 자부담 치료비 20%는 정부의 지원금과 시/도비 지원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사실상 국내 시판되고 있는 치료제는 환자에게 필요하면, 현재로선 언제든지 지원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좋은 에이즈 치료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제약회사의 이윤 동기에 따라 치료제를 등재하고 유통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된 27개의 치료제 중에 2000년 이후에 허가된 치료제 10개중에 단 2가지의 치료제만 유통되고 있다.

에이즈 치료는 3제 병용요법을 사용해야 하는 특성상 한 가지 치료제라도 내성이 생기면 나머지 2개의 치료제에 내성이 생길 위험이 높아지고, 내성이 생길 경우에 치료제 대부분을 변경해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 치료제를 변경하면 된다고 하지만, 치료제 성분이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에 내성이 생긴 약제와 동일 성분을 사용하는 치료제를 사용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에이즈 치료제 신약의 공급이 환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제약회사들은 이러한 환자들의 약점을 쥐고, 환자들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것이다.

제약사의 횡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들의 미래 시장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에이즈 치료제 시판을 위해서는 제약사가 등재 신청을 하고 보건 복지부가 승인을 해야 하지만, 한국은 HIV/AIDS 감염인이 적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특허만 걸어놓고, 등재신청을 하지 않아 환자들이 약을 사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수입이 된다 하더라도 약값이 비싸게 책정되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며 일방적으로 시판을 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에이즈를 예방하는 중요한 방법은 에이즈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질병의 은유와 편견, 질병에 대한 낙인을 깨고 치료제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공급하는 것이다. 또한 HIV/AIDS감염인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공감이 에이즈 예방에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점에서 HIV/AIDS감염인 의약품 접근권 문제와 차별에 대응하는 방법을 함께 만들어나가고, 사회의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바란다. 현재 환자들의 운동과 의약품 접근권 문제를 소수의 문제로 보지 말고, 사회운동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하여 의약품 접근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알려내고, 다양한 지점의 단체들과 함께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1) '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의 약자로 기존의 한 가지 약물로 치료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3가지 치료제를 환자에게 투여함으로 치료제의 내성을 줄여주고, 에이즈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