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인권] 내가, 그리고 당신이 미네르바다
상태바
[인터넷과 인권] 내가, 그리고 당신이 미네르바다
  • 오병일(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승인 2009.01.23 16: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넷 상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정확한 예측으로 인기를 모았던 사이버 논객 '미네르바'가 구속되었다. 보수 언론들은 그가 '전문대를 나온 백수'이고, 일개 '사기꾼'에 의해 수많은 네티즌들이 휘둘렸다는 식으로 비아냥대고 있다. 그가 '진짜' 미네르바인지 아닌지에 대한 주장도 설왕설래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금융 전문가'인지 아니면 '백수'인지가 아니다. 혹은 '진짜' 미네르바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에 올린 정부 비판 게시글로 인해 네티즌이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 즉 '네.티.즌.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허위사실유포죄?

검찰이 미네르바에게 적용한 혐의는 전기통신사업법 제47조 1항,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조항이다. 검찰은 12월 29일 미네르바가 쓴 '주요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는 긴급공문을 전송했다'는 게시물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긴급공문을 전송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이를 근거로 미네르바를 형사처벌하려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우선, 법적인 측면에서 전기통신사업법 제47조 1항이 '허위사실유포죄'가 맞느냐는 문제가 있다. 전기통신기본법이 만들어진 것은 인터넷이 알려지기도 전인 1983년의 일이다. 당시의 전기통신설비는 주로 '전화'일텐데, 사적인 통신인 전화를 통해 얘기하는 것을 '허위사실유포'로 처벌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법안 문구를 보아도 '허위의 통신'이라고 되어있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통신'이라고 되어 있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허위의 통신'은 통신 자체(발신자나 수신자, 통신주파수 등)를 허위로 하는 통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허위사실 유포와는 관계가 없다.

설사 전기통신사업법 제47조 1항이 '허위사실유포죄'라고 해도, 이는 위헌적인 조항이다. 민주화된 국가에서 단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1990년대 유엔인권위원회는 튀니지, 모리셔스, 아르메니아, 우루과이, 카메룬 등이 가지고 있는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폐지를 권고했다. 2000년 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허위사실유포에 대해 형사처벌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비판하였다. 물론 허위의 사실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다든가, 허위 사실로 다른 사람을 속여서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든가(사기), 상표를 허위로 속여서 판매한다든가 하는 행위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막연히 '허위사실'의 표현을 근거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무엇이 허위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절대적인 판단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허위로 인식되던 것들이 이후에 진실로 밝혀진 사례는 많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허위로 간주되어 많은 사람들이 처벌받기도 했던 '지동설'이 지금은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후에 진실로 밝혀질 수 있는 사실들을 얘기하는 것을 꺼릴 것이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 생활을 들여다보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얘기는 모두 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들인가? 혹은 일일이 다 직접 사실 확인을 한 것들인가? 그렇지 않다. 대부분 미디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어떠한 문제에 대한 사실 관계를 이해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다. 예를 들어,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성을 언론이나 게시판을 통해 듣고 다른 게시판에 올려놓기도 하고,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해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심지어 정부나 언론조차 간혹 잘못된 사실을 얘기하지 않은가? 최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도 언론관계법에 대한 잘못된 사실을 자신의 연설에서 얘기하지 않았던가? 혹은 우린 간혹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만일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어디 무서워서 얘기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면 결국 수사기관이나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을 중심으로 처벌될 것인데, 허위사실유포죄가 주로 독재정권이 정부에 대한 비판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도 이런 이유이다.

미네르바 구속의 목적은 표현의 위축

검찰이 무리하게 미네르바를 구속, 수사하고자 하는 목적은 결국 인터넷 상의 여론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과거에 '검열'이란, 공권력이 사전에 책이나 음반, 영화의 내용을 검사하고 그 발표 여부를 허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매일 수십만, 수백만 건의 내용 등록이 이루어지는 인터넷에 대하여 사전에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국가에서는 위헌 논란을 비껴갈 수 없다. 그래서 인터넷에서의 검열은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노린다. 이용자 스스로 자기 검열하도록 만든다.

인터넷 여론에 대한 이러한 통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해 5월,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보수언론은 '광우병 괴담'이 떠돌고 있다고 호도했으며, 경찰과 검찰은 '광우병 괴담'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사법처리된 것은 '5월 17일 동맹휴업' 문자 메시지를 배포한 한 사람에 대해서만 이루어졌으며, 이마저도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사법처리되는 것과 무관하게 검찰과 경찰의 이러한 대응은 네티즌들의 정부 정책 비판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보았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운동과 함께 벌어진, 조중동 등 보수언론 광고주 불매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검찰이 불매운동을 주도한 카페 운영자에 대해 압수수색, 출국금지, 구속 등의 강력한 대응을 시작하면서, 인터넷 상에서 활발하게 올라오고 있던 '광고주 목록' 게시물(일명 '오늘의 숙제'라고 일컬어지던)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90년대, PC통신 시절에 정부의 검열에 심해지고 게시글로 인해 네티즌들이 구속되는 사례가 늘어나자,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이 아이디는 빌린 아이디입니다.', '이 게시물은 퍼온 것입니다.'라고 덧붙이는 것이 유행처럼 확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소통의 중심이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변화하고, 검열의 법적 근거가 되었던 '전기통신사업법 53조'가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점차 사라졌다. 이제 다시 90년대와 같은 분위기로 퇴행하려는 것일까? 미네르바 구속 이후 많은 인터넷 논객들이 자신의 글을 삭제하고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우리 모두가 미네르바

미네르바 구속에 의해 다른 네티즌의 입까지 재갈이 물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네르바처럼 누구나 인터넷에 올린 글로 인해 구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미네르바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다. 소위 인터넷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한국의 인터넷 환경은 법제도적 측면에서는 최악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이버 모욕죄'가 도입된다면, 수사기관에 의한 자의적인 검열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물론 무제한적인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법적인 게시글은 삭제될 수 있고 이용자들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불법 여부에 대한 엄격한 사법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 권력의 입맛대로 네티즌들의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고 있다는데 있다. 미네르바의 구속은 한국에서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침해되고 있는지 증명해주는 극적인 사례일 뿐이다. 외신들이 이 사건을 '황당 뉴스'에서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