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철거와 인권] “살던 만큼 살게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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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와 인권] “살던 만큼 살게만 하면”
  •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승인 2009.02.1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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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밥장사를 해온 한 할머니가 있다. 식당에 딸린 작은 방에서 생활하면서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들 아침밥부터 챙겨 먹였다. 손맛이 있고 정이 있어 장사가 안됐던 편도 아니지만 식당을 시작할 때 진 빚 5천만 원 중 3천만 원이 여전히 빚으로 남아있다. 2008년 봄, 할머니가 살던 동네엔 꽃이 피는 게 아니라 ‘용역깡패’가 피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더니 여기저기서 그들한테 맞고 협박당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할머니가 장사하는 식당에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밥 먹으러 올 시간이면 우르르 몰려들어와 자리를 잡고서는 마냥 앉아있었다. 한가한 시간이 되면 그냥 나간다. 그런 일이 수차례. 어느 날은 명도 절차(소유/점유권의 이전을 법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시작된다는 통지가 날아왔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명도구나.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나.” 당장 갈 곳도 없고 옮길 돈도 없는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중 그들이 들이닥쳤다. 단체 손님 예약을 받아놓은 어느 날 아침. 법원 집달관이 용역업체 직원 백여 명을 데리고 오더니 나가라고 한다. “이제 곧 오기로 한 손님들만 받게 해주세요.” 하지만 이미 용역업체 직원들은 냉장고와 식탁과 의자들을, 할머니가 생활하던 방의 가구와 옷가지들을 모조리 식당 밖으로 내치고 있었다. 큰 트럭에 싣더니 모두 가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한 달쯤 더 있다가 온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여.”

▲ 1월 22일 뉴타운 지역 가옥주들과 세입자들이 용산 참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뉴타운 사업의 중단을 촉구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용산4구역. 여섯 명의 사람이 불길에 휩싸여 사라진 동네.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쏠쏠하기도 하다가 막막하기도 하다가 한 사람들. 이들에게 날벼락을 내리고 망루로 내몬 것은 개발 그 자체다.

이미 2003년경부터 용산4구역의 몇몇 땅주인들과 삼성은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구역지정, 조합설립, 사업시행계획 인가 등의 절차를 빠른 속도로 밟아나갔다. 하지만 세입자들이 개발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2007년 겨울쯤부터다. 현재의 개발사업 절차는 세입자들에게 정보를 알리거나 의견을 묻는 과정이 전혀 없다. 모든 것을 조합이, 사실상은 시공사가 결정한 후에 ‘최후의 통첩’을 받는 것만이 세입자에게 보장된 권리다.

이런 개발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재정착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다. 현재의 개발사업은 개발이익을 전제로 한다. 낙후한 주거환경을 개선한다거나 생활하기에 좋은 지역을 만든다거나 하는 목표는 개발사업에서 들러리일 뿐이다. 이번 용산4구역의 시공을 맡은 업체 중 하나인 삼성물산은 수익의 80% 가량을 재개발, 재건축에서 얻는다. 땅을 파면 이익이 나온다는 공식, 땅값은 절대로 올라야만 한다는 공식을 유지시켜 온 것이 정부의 정책이고 개발사업 제도다. 시공사든 조합이든 챙겨갈 몫을 계산하는 것이 개발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고 그것을 ‘조합원 총회’라는 형식을 통해 단계별로 펼쳐놓은 것이 개발사업의 절차다.

이들에게 중요한 ‘기술’ 중 하나는 세입자에게 들어가는 돈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개발의 중간 단계쯤에서 재계약을 안해주고 미리 내쫓아 버리거나, 보상과 관련된 온갖 기준들을 가장 불리하게 해석하거나(심지어는 법에 명시된 것조차 거부하고 오히려 소송을 거는 경우가 있다) 거짓말로 세입자들을 단념시킨다. 그리고 ‘관리처분 인가’라는 마지막 단계로 들어서면 다른 기술을 사용한다. 용역업체가 이때 등장한다. 시공사나 조합은 세입자들을 굳이 설득하거나 회유할 필요가 없다. 용역깡패의 등장만으로도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같이 싸우자던 사람들 중에도 하나둘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이 나간 집은 다음날이면 부서져 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명도소송 판결문을 들고 법원 집달관이 찾아든다. 이제 용역깡패들은 사람이 사는 집도 부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침입하는 것만으로도 큰 범죄인데 사람을 살던 집에서 내쫓는 것은, 도대체 범죄라고 인식이나 되고 있는가. 강제로 사람을 퇴거시키는 것이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설령 ‘공익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있다고 밝힌 세계인권선언과 사회권규약 이후로 주거권의 내용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강제퇴거 금지의 원칙도 자리 잡혔고 이에 대한 지침도 있다. 십여 년 전부터 가장 비인간적인 철거를 하는 국가로 지목 당해온 한국 정부만 눈 가리고 귀를 막고 있다.

강제퇴거는 주거권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국가는 스스로 강제퇴거를 자행해서도 안될 뿐더러 강제퇴거의 위협에 놓인 주민들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다. 그것은 집과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가졌는가 여부와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국가는 퇴거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해야 하며 개발을 시작하기에 앞서 인권영향 평가를 해야 한다. 또한 개발 과정에서 모든 잠재적 피영향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기간과 통로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 포괄적인 재정착계획을 세워야 하며 모든 가능한 대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재정착계획의 원칙은 어떤 사람도 개발 이전보다 삶의 조건이 후퇴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러고 나서도 퇴거가 불가피하다면 퇴거조치에 앞서 불가피성과 보편적 인권의 약속에 개발계획이 부합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퇴거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상세한 이유를 담은 고지를 모든 개인에게 서면으로 해야 하며 모든 재정착 조치가 퇴거 전에 완료되어야 한다. 생명과 안전,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태도로 퇴거를 집행해서는 안되는 것은 기본이다. 궂은 날씨, 밤, 휴일, 학교 시험기간이나 직전에 행해져서는 안된다는 것도 너무나 상식적인 지침이다.

▲ 2008년 10월 삼선4구역 주민들과 함께 한 1차 워크숍 '살만한 집을 꿈꾸며 떠나는 숨은보물찾기‘. 동네 경로당에서 열린 이날 워크숍에서는 모둠별로 살만한 집과 살만한 동네를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처] 인권운동사랑방


원칙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틈새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한국의 개발과 강제퇴거는 틈새가 아니라 틀이 다른 것이 문제다. 개발이 주민들의 삶과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적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는 출발점에 서지 못하면 보상을 늘리고 줄이는 대책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의 또다른 단면은, 역설적이게도 개발이 필요한 곳에 개발이 추진되지 않는 현실에서 드러난다. 성북구의 삼선4구역, 주민들 대부분이 삼사십 년을 살아온 이 동네의 집들은 한 쪽은 땅에 얼굴을 푹 파묻은 채로, 다른 한 쪽은 아슬아슬한 축대와 얼기설기 발라놓은 콘크리트에 의지한 채로 주민들의 삶을 위태롭게 받치고 있다. 재개발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지 십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시작되지 않았다. 서울성곽을 보호하고 경관을 유지하기 위한 ‘규제’에 건설사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기 때문이다. 구청도 손 놓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건설사들이 달려들기를, 용역업체가 날파리 끓듯 들러붙기를 바라지 않는다. 도시가스 안 들어오는 게 너무 불편하고 동네에 눅눅하게 내려앉은 빈곤의 그늘도 힘겹지만 지금의 개발 방식이라면 주민들이 아무도 남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조금씩 모여서 대책을 고민하던 주민들이 얼마 전에는 총회를 열어 본격적인 계획을 세워 보려고 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이렇게 시작하는 개발이라면 용산과는 다른 꿈이 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개발은 빈곤을 더욱 확산하고 심화시킨다. 모두의 것이어야 할 땅에 탐욕스러운 자본이 들어앉아 자리를 차지하고 가난에 등 떠밀린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시 구석구석으로 흘러들어간다. 개발이 오히려 빈곤의 해소 전략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까.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빈곤을 철폐하기 위한 전략으로 개발을 다시 모색해야 한다. 지금과는 틀 자체가 다른 개발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틀을 짜기 위한 출발점은 인권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살만한 집에 살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것으로 개발의 틀을 짜야 한다.

용산 참사 이후로 한나라당에서조차 재개발 대책이라며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시작부터 틀렸다. 인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싸움에 ‘제3자 개입’을 들먹이는 인식으로는 새 틀을 짤 수 없다. 보상을 얼마간 늘리겠다는 계획을 들으며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돈을 더 달라는 게 아니야. 살던 만큼 살게만 하는 개발이면 되는 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