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인권] 비정규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없는 비정규‘보호’법은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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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인권] 비정규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없는 비정규‘보호’법은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없애야 한다!
  • 김혜진(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
  • 승인 2009.02.18 2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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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장관은 “올 7월이 되면 100만 명이나 되는 비정규노동자들이 해고되므로 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비정규보호법을 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정부 입법안보다는 한나라당 입법안으로 발의해서 올 2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한나라당에서도 이 법안을 발의할 의원을 찾기 어려워서 난감하다고 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 법 개정안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상하다. 정부는 분명히 이 법이 비정규직‘보호’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법 때문에 고용이 불안정해진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그래놓고 이제 와서 정부와 기업은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법을 바꾸는 것은 오히려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모두가 진실이 아니다.

이 법은 처음부터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이 아니었다.

비정규법은 크게 파견법과 기간제법으로 나뉜다. 파견법은 회사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필요한 인원을 파견업체로부터 파견 받아서 쓰는 것이다. 회사는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자기네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파견노동자를 차별할 수 있다. 너무나 불합리한 제도라고 노동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니까 정부는 26개 업종에 한해서만 파견을 허용하고, 파견이 된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법이 시행되자 모든 회사들은 파견노동자를 2년만 쓰고 해고해버렸다. 그래서 수많은 파견노동자들은 2년마다 떠도는 인생이다. 작년 일본의 경제위기로 파견노동자가 무려 13만 명이나 해고되었다. 일본에서 ‘묻지마 살인’을 저질렀던 사람도 파견노동자였다. 그들만큼 우리나라 파견노동자들도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 법이 과연 비정규 노동자 ‘보호’법일 수 있겠는가?

기간제법도 마찬가지이다. 2년짜리 계약직을 마음대로 채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당연히 2년이 되기 전에 해고되는 것이다.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게 힘든 싸움을 해야 했던 것도 회사에서 이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해고해버렸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에 이 법안은 인정되어서는 안 되다고 투쟁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 노동자들의 ‘보호’가 필요하며 그렇게 대량해고되지 않도록 기업들을 잘 규제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강행처리를 했다.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쓰려는 자신들의 의도를 감추고 비정규직을 걱정하는 척한다.

우리나라는 복지제도라는 것이 거의 없어서 고용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되면서 비정규직들이 가장 먼저 해고된다. 파견직과 계약직 노동자들이다. 기업들의 해고를 잘 규제하겠다고 이야기했던 정부가 노동자들을 기만했다. 먼저 송파구청, 부평구청, 서울대병원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례만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도 비정규직을 해고했고 앞으로도 해고를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무기계약직’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차별도 유지되고 언제라도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비정규직을 밀어 넣었다. 자신들이 만든 비정규법안을 편법적으로 피해가는 것이었다.

그래놓고 이제 100만 명이 해고되니 걱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들은 비정규직이 걱정되어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이렇게 예상되었던 문제를 더욱 부풀려서 자신들의 의도를 달성하려고 하는 것 뿐이다. 그 의도는 단 하나, 기업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기간제나 파견제 노동자들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간제한이나 대상제한이 문제인 것처럼 거짓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정부의 태도가 비정규직들에게는 더욱 가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정부의 비정규법 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에서 내놓은 개정안을 보면 비정규직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자고 한다. 2년간만 비정규직을 사용하라고 한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너무나 극악한 착취이므로 더 이상 늘려서는 안된다는 취지 때문이었다. 그런데 2년으로 기간을 제한하니까 고용이 불안정해지니 이제 4년으로 연장하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4년이라는 뜻은 4년간 고용이 안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4년 이내에는 자유롭게 비정규직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6개월을 쓰다가 짤라도 되고, 3월 11개월을 쓰다가 짤라도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기간제한 4년은 기업들이 자유롭게 노동자들을 해고할 기간을 늘려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4년간 고용이 보장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물론 2년에 한 번 강제로 짤리지는 않겠지만 떠돌이신세를 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원래 기간제한 자체를 없애서 완전히 자유롭게 비정규직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4년제한 안이 통과되면 이후에는 기간제한을 없애는 안을 다시 내놓을 것이다. 또 파견 대상을 26개에서 늘려서 완전히 확대한다고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파견노동자들이 집단적 해고의 1순위가 되고 있는데,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서 파견대상을 확대한다니 이게 얼마나 코미디같은 말인가?

그들은 과감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2년이 지난 후 해고해버리고 고용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고 노동자들을 협박하여 이것을 비정규직을 영구화하고 확대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그렇기에 정부와 기업의 이런 태도는 더욱 뻔뻔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비정규법 개악을 막는 것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는다. 법을 없애야만 길이 열린다.

이 법은 태생적으로 악법이기에 법이 개악되지 않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개악을 막는다 하더라도 비정규직은 2년마다 한번씩 해고되고, 차별받으면서 이상 삶의 전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개악을 막는 것은 절대로 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답이 될 수 없다. 일단 더 심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미 극단의 고통에 있는 이들에게 ‘더 심해지지 않도록 현상을 유지하자’고 하는 것은 말장난이다.

비정규법은 없어져야 한다. 이 법이 없어진다고 해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이 법 이전에도 비정규직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비정규직이 불합리한 고용형태였기 때문에 비정규직들이 권리의식을 갖고 투쟁을 하면 법적으로도 인정받을 가능성도 있고, 교섭을 통해서 처우를 개선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그런데 비정규법이 만들어지면서 비정규직이 공인되고 합법화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법적으로 인정되어 있기에 계약직노동자들은 2년마다 해고되어도 부당해고라고 주장할 수 없고, 파견노동자들은 불법파견이니까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비정규직을 공인하는 법을 없애면 적어도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우리 모두가 비정규직의 권리를 찾는 주체가 될 수 있고 투쟁을 할 수 있다. 물론 만들어진 법을 없애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 법을 인정하지 않고 폐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비정규노동자의 인간다움과 권리를 선언하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