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인권]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금융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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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과 인권]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금융피해자’
  • 이혜경(금융피해자 연대 해오름)
  • 승인 2009.02.18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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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초 보수언론과 금융사들은 2006년 파산신청자가 12만명이 넘었다며 한국의 도덕적 해이를 운운했다. 하지만 1962년 제정되어 35년간 잠자고 있던 파산법이 1997년 첫 파산신청자로 눈뜨게 된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1997년 IMF외환위기를 기억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아닐 수밖에 없다.

IMF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금융자본들은 노동력 유연화정책과 내수시장 활성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가속화한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며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도산하게 된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수많은 선물더미를 쌓아놓고 호객행위를 하던 카드사들의 모습 또한 기억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혹은 생계가 어려운 민중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했을까? 도덕적 해이 운운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1997년 사실상 신용카드 발급기준은 사라지고, 1998년 IMF권고로 25%로 상한선을 제한해오던 이자제한법은 폐지되고, 1999년 70만원의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로 카드 돌려막기를 유도하고, 2002년 돌연 현금서비스 한도를 축소하는 과정은 2004년 신용불량자 400만 시대의 서막을 여는데 충분한 시나리오를 제공했다.

IMF 구제금융은 곧 초민족적 자본들에게 한국시장의 전면 개방과 같다. 실제 1998년 이자제한법 폐지로 10년 전과 지금 한국의 대부업 시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확대되었다. 3~4천개에 달하던 대부업체수는 4~5만개 수준에 이르렀으며, 4~5조원에 해당하던 대부업 시장은 20~500조원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지난해 연예인의 죽음으로 대부시장의 야만성이 드러나며 반짝 단속을 하고 있지만 지자체에 담당자 1인이 2~3천개의 대부업체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금융사들이 만들어놓은 신용등급이 낮아서 제1,2금융권을 이용할 수 없는 금융채무자들이 현재 780만명에 이른다. 이명박 정권은 대선 당시 이들을 위한 신용회복 4대 특별정책 운운하며 500만원 이하의 생계형 채무자들의 채무탕감과 신용불량자들의 신용대사면 등을 이야기했지만 당선되자마자 휴지조각이 되었다. 그리고 작년 9월 신용회복기금을 만들어 780만명의 금융채무자들을 구원하러 온 것인 양 선전을 해댔다. 하지만 그 이면은 대부업들만큼 야만적이다. 채권사들로부터 한국자산관리공사가 10%로 채권을 사들여 채무자들에게는 100%를 8년에 나누어 갚으라고 하는 채권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라고 하지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진행 중이다. 한국의 경우 가계부채와 파산신청자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미국을 비롯한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초민족적 자본에 의한 금융세계화는 빈곤과 금융위기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IMF 조기졸업을 자축하며 일찍이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10년 동안 민중들의 삶은 빈곤과 금융채무의 악순환이었다. 이를 폭로하며 사회단체들은 2007년 11월 21일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을 선포하였다. 10년 동안 금융채무자들의 삶은 빈곤과 채무와 추심으로 인해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도덕적 해이자라는 사회적 낙인이었다. 10년 동안 사회적 누명을 쓰고 살아온 금융채무(자)는 자본과 정부가 짊어졌어야 할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전가하여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당당히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요구하며 빈곤과 금융채무에 대한 사회적 책임들을 요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 날의 의의이다.

현재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등에서 매주 파산학교를 하며 금융채무자들을 만나고 파산제도를 통해 금융채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1997년부터 지금까지 파산신청자들은 50만명 수준이고 훨씬 많은 금융채무자들이 지금도 채무와 추심으로 인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또한 파산면책을 통해 채무를 탕감 받더라도 면책자라는 또 다른 올가미로 사회적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려는 데에도, 주거 공간을 마련하려는 데에도, 현대인들의 필수품이 휴대폰을 마련하려는 데에도 ‘1201’이라는 면책자 코드는 이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 파산법에 차별금지조항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법은 항상 권력과 돈 앞에 충성하고 있다.

때문에 좀더 적극적인 채무탕감정책이 필요하다. 사실 진짜 ‘도덕적 해이자’는 IMF 외환위기 발생의 장본인들인 금융자본들이다. 이들은 한국에 엄청난 재앙을 만들고 거기다 167조원이라는 공적자금까지 해먹고도 또 그 기로에 서있다. 그러나 780만명이라는 다수의 파산위기에 몰린 민중들에게는 1원의 공적자금도 투여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채무를 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설령 살아가다가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서민들이 부담 없이 낮은 금리로 빌려 쓰고 갚을 수 있는 금융기관이 필요하다.

신용불량자도, 도덕적 해이자도 아닌 ‘금융피해자’라는 외침은 금융채무를 금융세계화로 인한 빈곤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빚진 죄인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정치를 실현해 나가겠다는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