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흉악범'의 얼굴공개, 해야만 하는가?
상태바
[칼럼] '흉악범'의 얼굴공개, 해야만 하는가?
  • 주영달(인권위원, 변호사)
  • 승인 2009.03.28 13: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 친한 친구들의 모임에 나갔다. 고소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즐거운 담소가 오가던 중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소주를 따르면서 한 말이 모든 친구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야, 그런데 너 이제 보니 강○○ 닮았다." 다른 친구들도 덩달아 "정말 그러네" 하고 맞장구쳤고, 강○○을 닮았다는 친구는 내가 그렇게 잘생겼다는 말이냐며 웃으며 넘어갔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 공개되었던 강○○의 얼굴은 이러한 장면을 연출해냈고, 이런 일은 비단 내 친구들의 모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친구들의 모임에서는 강○○을 닮았다는 친구가 실은 강○○과는 전혀 무관하고, 정말 착한 친구라는 것을 알기에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지만 혹시나 해당 친구가 실제로 행실이 좋지 않았다거나 강○○과 가족관계 등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소위 흉악범의 얼굴공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형제보다도 더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 듯하다. 대체로 일반시민의 경우는 80%, 언론인은 65%가 얼굴 공개에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언론매체들도 의견이 나뉘어 일부 언론은 공익을 이유로 얼굴을 공개하였으나 다른 일부 언론은 인격권 등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은 피의자의 얼굴 공개에 대한 근거법률이 마련되지 않는 한 공개할 수 없다고 하나, 연쇄살인범과 유아 성폭행범에 대한 얼굴을 공개할 수 있도록 입법을 위한 준비를 하겠다고 한다. 2004년경 밀양 여중생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의 보호와 함께 피의자의 보호도 강조되었고,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에 피의자 호송 업무를 개선할 것을 권고하여, 이를 계기로 경찰청은 ‘05년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마련하여 시행해오고 있다.

한편 ‘신문윤리강령 및 신문윤리실천요강’은 종래 ‘당사자의 동의 없이 형사사건의 피의자를 촬영하거나 사진이나 영상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제7조 제5항)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체포되고 그에 대한 얼굴 공개여부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일부 언론사들이 위 규정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공개한 가운데 최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위 조항을 개정하여 ‘형사사건의 피의자, 참고인 및 증인을 촬영하거나 사진 또는 영상을 보도할 때는 최대한 공익과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언론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피의자 등의 사진을 촬영하거나 보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흉악범의 얼굴공개여부와 관련하여 얼굴공개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찬성의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은 대략 피해자와 시민들의 알 권리, 향후의 범죄의 예방, 범죄수사에 도움 등이고, 반면에 얼굴공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반대이유는 가해자의 인격권, 가해자 가족들의 인권보호,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이 문제는 얼굴공개 찬성론자가 주장하는 근거와 반대론자가 주장하는 근거 중 어느 것이 더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알권리란 일반적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리로 이때의 정보란 양심, 사상, 의견, 지식 등의 형성과 관련된 일체의 자료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흉악범의 얼굴을 알고자 하는 것은 단지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것일 뿐 알권리에서 말하는 권리로 인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고 설사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보호가치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향후의 범죄예방의 목적은 범죄자를 엄중히 처벌하는 것으로 달성할 일이지 형이 확정되지도 않은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수단의 적정성을 결여한 것이고 그 효과도 의문이다. 또한 체포되지 않은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하여 행하는 지명수배와 이미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달리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범죄수사에 도움이 되므로 얼굴을 공개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

반면에 피의자의 얼굴이 공개됨으로써 범죄와 무관한 가해자 가족들이 당하게 될 고통은 치명적인 것으로 피의자의 얼굴공개는 그 가족에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사회적 사형이라는 극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인정되어야 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도 피의자의 얼굴이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단순한 호기심의 만족이나 효과도 보장되지 않는 범죄예방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희생되기에는 가해자 가족들의 침해되는 인격권의 정도가 너무나 크고, 보호되어야 할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헌법상의 원칙의 가치가 너무나 크기에 흉악범이라고 하더라도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