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수형자도 선거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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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형자도 선거권을 가져야 한다
  • 이호중(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 승인 2009.04.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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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금고나 징역형의 선고를 받고 교도소에 복역하는 수형자는 형집행이 종료할 때까지는 선거권이 없다. 형법 제43조와 공직선거법 제18조 1항에서 징역․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에 대해 형집행기간 동안 선거권이 자동적으로 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 규정이 위헌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수형자가 지난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에서 선거권이 제한된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청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이다.

사실 이미 2004년에 헌법재판소는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규정에 대하여 헌법상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그 합헌의 논거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수형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고 도무지 인권에 대한 고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헌재의 말은 대개 이러하다. 첫째, 수형자는 ‘반사회적 성향’으로 공동체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반 시민과 똑같은 권리를 부여할 수는 없다고 한다. 둘째, 그러한 ‘반사회적 성향’ 때문에 수형자는 처벌받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어 정치적 의사를 정당하게 형성할 수 없으며, 근소한 표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에 수형자들이 당락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은 납득할 수 없다고 한다. 셋째, 구금시설의 수형자들은 행형법상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선거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획득할 수 없어 공정한 선거권 행사가 어렵단다. 넷째, 수형자는 구금시설에 근무하는 교정공무원에 비해 열세적 지위에 있기 때문에 교도관이 특정 후보에 대한 투표를 강요하는 경우에 수형자는 이를 거부하기 어려워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게 될 우려가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헌재의 논거를 보면, 정말 헌법재판소가 말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영미법계의 전통에서는 ‘civil death’라는 개념이 있었다. 수형자를 ‘몸은 살아 있으되, 시민법상 사망한 존재’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교도소에 구금된 사람은 동료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중죄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선거권․피선거권뿐만 아니라 소송능력이나 친권, 연금수혜권 등을 광범위하게 박탈하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수형자는 반사회성이 있어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배제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짙게 배어 있었다. 수형자도 기본권의 주체로 인정하는 오늘날에는 이러한 전근대적인 사상은 거의 폐기된 상태에 있다. ‘수형자는 반사회적 성향으로 사회공동체에 해악을 끼친 존재로 시민으로서 공동체의 구성․운용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헌법재판소의 논증에는 아직도 위와 같은 전근대적․반인권적 관념이 남아 있는 듯하여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외국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면, 미국의 대부분의 주 그리고 일본에서는 우리와 유사하게 수형자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선거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유럽연합 소속국가들을 보면, 수형자에게 제한없이 선거권을 인정하는 국가는 18개국(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등)이며, 13개국(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에서는 선고된 형기에 따라 혹은 일정한 범죄유형에 따라 수형자의 선거권제한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12개 국가(영국, 러시아, 불가리아 등)에서는 수형자의 선거권이 일률적으로 제한되고 있다고 한다. 2005년에는 유럽인권재판소가 자유형의 선고를 받은 수형자에게 자동적으로 선거권을 박탈하는 영국 국민대표법 규정에 대하여 유럽인권협약 위반이라고 결정하기도 하였다(영국은 아직까지도 이 결정에 따르지는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처럼 수형자의 선거권을 자동적으로 박탈하는 제도를 유지하는 국가는 비교적 소수에 불과하고 그것도 점차 감소해 가는 추세에 있다.

헌법상 선거권은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기 때문에 과잉금지원칙에 합치하는 한 선거권제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실현에서 선거권이 지니는 중요성에 비추어 보면 선거권에 대한 제한은 매우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헌법재판소는 2007년에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수형자에 대한 잘못된 시선 탓인지, 헌법재판소가 2004년 합헌결정에서 동원한 논거들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보아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해괴한 논리들로 가득 차 있다.

수형자들이 선거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해 선거의 공정성이 우려된다는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신문이나 책을 자유롭게 구독하는 구금시설의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더구나 선거의 공정성 확보는 일차적으로 국가의 책무이기 때문에, 정보획득의 취약성이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할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반대로 국가는 수형자들이 합리적으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선거에 관한 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헌재는 ‘거꾸로 논증’을 했다.

헌재가 교정공무원에 의한 투표강요의 위험을 언급한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군대에서 부재자투표를 할 때 특정 후보에 대한 투표강요가 문제되곤 했던 경험이 있다. 이는 국가가 선거의 공정성 보장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문제이지, 그렇다고 군인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수형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수형자가 선거에 참여하면 그들이 결정권(소위 캐스팅보트)을 행사할 수 있어 선거의 공정성 침해가 우려된다니! 선거권의 행사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좀 더 진솔하게 헌법적 논증을 시도해 보자. 수형자는 비록 범죄를 저질러 구금시설에 수용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기본권이 자동적으로 제한되어야 할 필연성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의 공정성 확보가 수형자의 선거권제한의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수형자들이 선거에 참여한다고 해서 선거의 공정성이 침해될 우려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교도소에서 선거를 실시하면 교도소의 질서유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결수용자는 구금시설 안에서 부재자투표의 방식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구치소에서는 되고 교도소에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한가지 더,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소위 재사회화라는 행형목적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재사회화처우의 출발점은 수형자들이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형자에게 기본적 인권을 충실히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깥세상에서 시민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동안 수형자들은 그저 남의 일처럼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은 수형자의 책임감을 고양시키는데 기여하기는커녕 수형자로 하여금 사회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누구나 선거를 하러 갈 때에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신중해지게 마련이다. 수형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아일랜드는 2006년에 수형자에 대한 선거권제한을 폐지하고 수형자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획기적인 결정을 하였다. 당시 아일랜드의 선거관련 주무부서의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 “범죄로 구금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가 시민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수형자들에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며, 그것을 교육과정의 일부로 하여 그들의 책임감을 고양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2007년에 난생 처음 선거에 참여한 아일랜드의 한 수형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단다 : “투표한다는 것은 뭔가의 프라이드를 주지요.... 그것은 바깥세상 사람들과 내가 평등하게 대우받는다는 의미가 있어요. 수형자들은 멸시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투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