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인과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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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인과 법
  • 좌세준(인권위원, 변호사)
  • 승인 2009.05.27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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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행복하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 / 시인은 그래도 행복하다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필요 없다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

시인 김남주의 <시인>이라는 시입니다.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지던 시절, “네 벽에 가득 찬 것은 모두 어둠뿐인” 광주교도소에서 종이와 연필이 주어지지 않아 빈 우유곽에 못으로 시를 쓰면서도 시인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요즘 세상을 볼라치면 세상이 다시 몽둥이로 다스려지는 듯합니다. ‘법’은 또 어떤가요. ‘법’ 축에도 못 드는 ‘고시’라는 놈이 법 중의 법 ‘헌법'에 나와 있는 국민의 건강권을 유린하더니, ‘마스크를 쓰고 집회하면 처벌한다’는 법을 만든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은 업무방해요,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이니 구속이랍니다. 설을 일주일 앞둔 서울 한복판 재개발 철거현장에는 ‘법치질서의 확립을 위해’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습니다. 100여일이 지났음에도 희생된 가족들을 땅에 묻지 못한 유족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5년입니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시인이 다시 살아온다면 유족들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한마디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법이지요 / 목에 걸면 그것은 / 부자들에게는 목걸이가 되고 / 가난뱅이들에게는 밧줄이 되지요”

요즘은 시집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지던 시절에는 그래도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것 같은데요. 시인들이 다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법 없이도 다스려지는 세상이 된 것도 아니요, 시인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온 것 같지도 않은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해방 공간의 전위시인 유진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시인이 되기는 바쁘지 않다. 먼저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겠다. 시는 그 다음에 써도 충분하다. 시인은 누구보다도 먼저 진정한 민중의 소리를 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가 참 민주주의 세상이요, 그런 세상을 먼저 만들어 놓고 나서 시를 써도 늦지 않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이상을 파괴하는 억압이 존재하는 한 시인은 언제나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전령(傳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와 민주주의의 통일 선언입니다. 그러하니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에도 시인들은 민주주의를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한’ 것입니다. 법이 아니라 총검과 몽둥이가 세상을 다스리던 시절, 김남주 시인은 자신의 시가 억눌린 자와 민중들의 손에 건네져 읽혀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나는 바란다 총검의 그늘에 가위 눌린 / 한낮의 태양 아래서 나의 시가 / 탄압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기를 /......./ 그들이 나의 시구를 소리내어 읽을 때마다 / 뜨거운 어떤 것이 그들의 목젖까지 차올라 / 각성의 눈물로 흐르기도 하고 / 누르지 못할 노여움이 그들의 가슴에서 터져 / 싸움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하기를”

김남주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법 없이도 다스려지는 ‘더 좋은 세상’이 온다면 ‘민중의 소리를 전하는’ 시인은 아예 필요 없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판, 검사나 변호사는 다 실업자가 되겠지만, 모든 이들이 ‘행복한’ 세상일 것이니 그런 세상도 한 번 꿈꾸어 볼만하지 않습니까. 그런 세상보다는 덜하지만 우선은 법보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도 아니면 법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 그대로 ‘물처럼 흐르는’ 법. 결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거슬러 흐르지 않으며, 때론 굽은 모래톱을 곧게 펴기도 하고 “오뉴월 더운 날에는 농부의 시름 덜고 /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는” 고마운 물과 같은 법으로 다스려지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시인이나 우리들 모두 ‘그래도 행복한’ 그런 세상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