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1세기 대한민국판 분서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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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1세기 대한민국판 분서갱유
  • 남승한(인권위원, 변호사)
  • 승인 2009.06.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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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행위를 보고 진 시황제의 분서갱유가 떠올랐다. 전국을 통일하고 싸움 없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하는 중국인들의 열망을 등에 업고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는 중국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보다는 불로초를 얻기 위한 부질없는 노력이나 분서갱유와 같은 법가적인 철권통치, 과도한 중앙집권 등과 같은 강성위주의 정책으로 대중에게는 폭군 같은 이미지가 강한 사람이다. 시황제가 분서하고 갱유를 할 무렵 그의 명분은 국론 통일, 혹세무민 방지 등일 터이나 이러한 행위가 후세에서는 시황제의 대표적인 실정으로 비판받는 실정이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행위도 시황제가 분서갱유하면서 내세운 논리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불온서적 지정행위가 시황제의 분서갱유와 같은 조롱거리가 되고 역행하는 우리 인권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매우 걱정이다.

진보적인 내용이 담긴 서적을 읽는다고 하여 전투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사고방식의 문제점이나 전투를 하는 병사들은 모두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고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의 문제점, 다양성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사고방식에 터잡은 위헌적인 불온서적 지정행위에 대해 우리 헌법재판소가 훌륭한 판단을 통해 후세의 조롱거리가 될 일을 방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불온서적 지정행위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차치하고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행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나와 같은 부류의 일을 하는 군 법무관들의 용기와 국방부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가 23종 28권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자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들은 바로 군법무관들이다. 국방부는 군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행위가 국방부의 명령체계를 위반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결국 파면과 감봉 등 중징계조치를 하고 말았다. 군법무관들의 용기와 위계질서라는 허울 좋은 미명 뒤에 숨은 국방부의 태도가 대조적이다.

나는 늘 책상물림에 불과하고 앞서 나서서 싸우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특히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된 뒤에는 오히려 더 변호사라는 직업을 이유로 적극적인 의사표현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기만 하고 물러서면서도 변호사는 법리를 가지고 싸우는 사람일 뿐이라고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그리하는 때가 많다. 사건을 정식으로 의뢰 받아 진행하면서 변호사라는 내 직업이 의뢰인들의 이익을 위해 일했다는 이유로 위험에 처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거의 없고 그럴 일도 거의 없었다(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헌법소원심판을 신청할 경우 국방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국방부의 태도가 그들이 천직으로 생각했을 직업을 상실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경험에 기초해 명백하게 알고 있었을 군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심판을 낸 행위가 솔직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불온서적 지정행위가 부당하고 위헌적이라고 하더라도 군법무관 본인들이 불편할 것이야 없을 것이고 제대할 때까지만 기다리면 아무 문제없이 좋은 직업 가지고 잘 살 수 있을 터인데다가 또 사실 군대 내에서야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합리화 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일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군법무관들이 불온서적 지정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이고, 따라서 그들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들을 보신주의자라고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그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군법무관들을 티끌 하나만큼이라도 도덕적으로라도 비난할 수 없는 노릇이므로(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러한 모든 생각을 뛰어 넘은 군법무관들의 헌법소원 심판 청구의 용기는 더욱 빛나는 것이고 항상 모든 사람들을 나와 같은 비상하지 않은 사고의 틀에 가두어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그저 비겁한 내 자신을 부끄러워할 따름이다.

이러한 군법무관들의 용기에 대조되는 것은 국방부의 부당함이다. 군법무관들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자 국방부는 군법무관들을 파면하거나 감봉 조치를 취해 치졸한 보복조치를 감행했다. 보복의 방법인 징계의 사유로 내세우는 것들이 '군의 위신을 실추'시켰다거나 '장교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거나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군의 위신을 실추시킨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분서를 한 국방부일 뿐이고 특별권력관계가 지배하는 군대 내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올바르지 않은 것을 지적할 용기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사회에 알린 군법무관들이야 말로 군의 위신을 고양시킨 사람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국방부의 징계조치는 잘못이다. 군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심판과 같이 당연한 권리로 인정되는 행위를 한 것이 어떤 면에서 장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다. 품위가 손상된 장교는 중징계로 답변한 국방부의 다른 장교들 아닌가. 국민의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행사한 것이 명령불복종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혹 징계를 당한 뒤 그 징계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도 명령불복종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부끄러운 분서조치를 하고 분서조치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비겁한 갱유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니 국방부가 지금이라도 스스로 즉시 군 법무관들에 대한 징계조치를 철회했으면 하는 바람이나 이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으니 -왜 징계 철회와 같은 정당하고 당연한 행위는 기대할 수 없고, 불온서적 지정행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에 대해 중징계로 보복하는 부당한 행위는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인지 개탄할 노릇이다- 부디 우리 헌법재판소는 분서조치를 분쇄하고, 행정법원은 군법무관들에 대한 중징계를 취소하는 판결을 함으로써 갱유조치를 묻어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