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일배 막히고 재판은 파행…"가슴이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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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 막히고 재판은 파행…"가슴이 터질 것 같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9.09.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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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용산 참사 유가족 전재숙 씨의 하루
용산 참사 희생자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68) 씨. 지난 1일 오후, 그는 서울 덕수궁 돌담길 옆 인도에 주저앉았다. 뒤편에는 경찰이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용산 참사 유가족과 진보신당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청와대까지 진행하려던 삼보일배는 그렇게 50미터도 가지 못하고 경찰에 막혔다.

전재숙 씨의 입에서는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 OO같은 놈들아, 왜 길을 막는 거야. 왜 평화로운 삼보일배를 막아." 거친 단어들을 쏟아냈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도리어 잠시 후 경찰은 앉아 있던 이들을 하나 둘씩 연행하기 시작했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을 위반했다는 것.

결국 정종권 진보신당 부대표 2명,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 8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전재숙 씨는 "대체 왜 잡아가냐"며 연행되는 사람들을 부둥켜 안고 경찰에게 욕설을 퍼부었지만 뿌리치는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는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밤낮으로 용산 참사 현장을 지키며 경찰, 용역업체 직원들과 맞서 왔던 전 씨였지만, 이날 그는 유독 힘이 없어보였다. 이날 오전, 넉 달 가까이 중단됐던 용산 참사 재판이 또다시 파행으로 연기됐기 때문이다. 

▲ 경찰에 가로막힌 삼보일배. 전재숙 씨(맨 왼쪽)가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다. ⓒ프레시안


자리 박차고 나간 전재숙 씨 "재판을 어떻게 변호인 없이 할 수 있나?"

1일 재개된 용산 참사 재판에 전 씨는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등 혐의로 기소돼 수감 중인 아들 이충연 씨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 된지 20분도 되지 않아 전재숙 씨는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피고인 변호인단은 검찰 수사 기록 3000쪽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재판에 참석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이날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한양석 부장판사)는 "변호인단이 변론을 거부하고 퇴장한 것은 방어권 남용이자 변론권 포기로 간주하겠다"며 국선 변호사를 통해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피고인 이충연 씨는 "가족과 상의를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중이니 그때까지 재판 기일을 연장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재판정은 '불가' 입장을 밝혔다. 재판정은 "오늘(1일) 진행될 서증조사는 국선 변호사로도 충분하다"며 "공판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용산 참사 재판은 10월 29일까지 심리를 마쳐야 한다.

이에 대해 이충연 씨와 피고인들은 "이런 재판은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방청석 쪽으로 몸을 돌렸고 그 상태로 재판이 진행됐다. 방청석에서도 변호인 없이 재판이 진행되는 것에 항의하는 침묵시위가 벌어졌다. 네 명의 여성 방청객은 'X'표를 붙인 마스크를 쓰고 방청석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재판정으로부터 유치장 5일 감치 명령을 받았다.

그러자 이번엔 대다수의 방청객이 나서서 "이런 재판은 인정할 수 없다"며 퇴장했다. 그 속에는 전재숙 씨도 포함돼 있었다. 전 씨는 "답답하고 분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재판이 열리는 9월 8일에는 수사기록 3000쪽이 공개돼 아들이 공정한 수사를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말이 이뤄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였다.

▲ 경찰에게 '평화적인 삼보일배를 왜 막고 있는가'라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는 전재숙 씨. ⓒ프레시안


▲ 삼보일배를 하기 전 전재숙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용산 참사 해결을 위해 더욱 악착같이 뛰어다닐 것"이라고 밝혔다. ⓒ프레시안


"덕수궁만 오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이날 저녁, 대한문 앞에서는 용산 참사 기독교 대책회의 주최로 추모예배가 열렸다. 고 이상림 씨의 영정을 들고 예배에 참석한 전재숙 씨는 시종 바닥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앞서 기자회견에서 그는 "경찰이 이러면 이럴수록 더욱 악착같이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죽은 남편에게 사죄하고 아들의 누명을 벗겨줄 때까지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고 윤용헌 씨의 부인 유영숙 씨는 "덕수궁만 오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며 "가족과 즐겁게 지내던 곳이 이곳인데 이젠 여기 서 있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늘도 경찰은 삼보일배를 막았고 법원은 재판을 또다시 연기했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 뿐이지만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묵묵히 유 씨의 말을 듣고 있던 전 씨는 이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225일째가 되는 가을밤이었다.

▲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추모예배. 이날 예배에는 약 5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선명수 기자
기사입력 2009-09-02 오전 10:47:23
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02094814&section=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