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진압 협조 거부한 경찰…소방관 "결국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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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진압 협조 거부한 경찰…소방관 "결국 철수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9.10.0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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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용산 참사 증언 "경찰의 '모르쇠'가 참사 불렀다"
경찰의 도가 지나친 '수수방관'이 용산 참사를 불러왔다는 증언이 줄을 이었다. 6일 용산 참사 재판에 출석한 증인들은 "용산 현장에서 용역의 불법적인 행위를 제재하지 않았던 경찰이 근본 문제"였다고 입을 모았다.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제27부(부장판사 한양석) 주재로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명선 <칼라TV> 리포터는 "19일 남일당 건물 주변에는 건물로 진입하려는 용역들이 대기하고 있었다"며 "만약 경찰이 이들을 해산시켰다면 농성자들은 화염병을 던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태를 악화시킨 건 용역을 제재하지 못한 경찰 책임"

이는 경찰특공대 투입이 "농성자가 던지는 화염병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이었다는 경찰의 주장과 반대되는 증언이다. 화염병 투척은 건물 내로 진입하는 용역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행동이었다는 주장이다.

이명선 리포터는 "경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현장은 화염병이라든가 돌 같은 것을 던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곳이 아니었다. 정말 조용했다"며 경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19일 당시 그는 지방에 있다가 급히 연락을 받고 저녁 8시경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다만 용역의 건물 내 진입 시도, 경찰 버스 및 물포의 현장 배치 등이 농성자에게 화염병을 던지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육안으로 확인한 화염병은 2~3개였다.

그는 "현장에서 화염병이 나타난 첫 번째 이유는 용역이 끊임없이 농성자를 자극했기 때문이고 그 다음으로 농성 철거민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용역을 제재하지 못한 경찰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시종 로봇처럼 용역이 불을 피우든 철거민과 마찰을 빚든 '모르쇠'로 일관했다"며 경찰의 당시 태도를 지적했다.

실제 경찰은 남일당 건물 2층에서 용역이 불을 피웠지만 그것을 막지 않고 수수방관했다. 불이 난 사실을 안 시민이 화재 신고를 했지만 소방관 역시 이를 묵살하고 현장을 떠났다. 검찰은 이들 용역을 여론에 떠밀려 기소했고 이들은 벌금형을 받았다.

현장 소방관 "불 끄려 경찰 협조 요청했으나 거부"

경찰이 용역의 행동을 놓고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주장은 용산 참사 진압 당시 현장에 있던 소방관의 입에서도 나왔다. 용산소방서 대응팀장 A씨는 "19일 저녁께 남일당 건물 2층에서 누군가 불을 냈다는 신고를 받고 동료 소방관이 출동했다"며 "하지만 화재를 진압하지 못하고 철수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그 이유를 놓고 "당시 소방관은 불을 끄려 했으나 불을 지핀 사람들이 소방관을 협박해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경찰에 보호를 요청해서라도 불을 끄려했으나 정작 경찰은 이를 거부했다"고 불을 끄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20일 출동 당시 경찰이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전해주지 않은 것도 지적했다. 그는 "출동할 때 들은 이야기라곤 시너가 있다는 말 밖에 없었다"며 "상황이 어떤지, 시너 양은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A씨는 "20리터 시너통이 60개나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경찰 병력을 투입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유증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스파크만 일어도 화재가 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했고 원인 모를 화재로 6명이 사망했다.

A씨는 "당시 현장에는 유류화재를 진압하는데 쓰이는 소방차 7대가 배치돼 있었다"며 "그 중 3대는 근접해서 망루 밖에서 화재 진압을 위해 일명 '수성막포'를 쏘았고 나머지는 떨어져 있어 사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망루 안에 있었던 시너 양을 생각해보건대 7대 모두 동원해 망루 안에서 진압 작전을 펼쳤어도 불은 꺼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당시 화재 규모를 말했다.

세입자 "용역 폭력에도 경찰은 시종 모르쇠"

재판에서는 용산 참사 전부터 어떻게 용역이 철거민을 괴롭혔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경찰이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증언도 이어졌다. 증인으로 나선 용산4구역 철거민 B씨는 "2008년 5월 관리처분인가가 난 이후 용역과 깡패들이 세입자를 괴롭히는 수준이 극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용역들은 중국집을 운영하는 세입자 점포에 들어가 오함마로 벽을 부수며 위협을 가하는 등 그 도를 지나쳤다. 용역이 벽을 부수는 걸 본 손님들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고 이후 세입자의 점포를 찾지 않았다.

골목에는 썩은 생선, 은행 열매, 죽은 동물 시체 등을 놓아 악취를 진동하게 만들기도 했다. 벽에 식칼을 그리고 가게 유리창을 부수기도 했다. B씨는 "용역이 검은 옷을 입고 일렬로 용산4구역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며 "하지만 경찰은 이를 수수방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용역의 행태를 경찰에 신고해봤자 이미 용역이 사라진 뒤에 오거나 아예 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며 경찰의 행동을 비난했다. B씨는 "상황이 이런데도 조합은 법대로 하라고만 했다"며 "이러한 상황은 결국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하는 이들을 망루에 떠밀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들이 전국철거민연합에 손을 내밀었겠나"라며 "동네에 용역과 깡패만 없었으면 그들도 전철연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왜 목소리를 높이겠나"라며 "안 들어주니 자신이 잘 보이는 곳에 올라서 목소리를 높이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