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원장 아닌 행안부 장관이 했으면 딱 맞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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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원장 아닌 행안부 장관이 했으면 딱 맞는 말"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9.10.12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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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원들, 공식 회의 통해 현병철 위원장 비판... 현 위원장 "독립성에 이의 없다"
▲ 12일 오후 1시, 인권단체활동가 30여명이 국가인권위 건물 13층 로비에서 현병철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박효원


"그날 하신 회의록을 보면 '국가인권위원장 현병철'이 아니라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법무부 장관'이 (회의록에) 들어가면 딱 맞는 말이다."(윤기원 비상임인권위원)

"그동안 제가 인권위원이라고 드러내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는데 이제는 쑥스럽다. 인권위원회가 왜 이렇게 됐나."(정재근 비상임인권위원)

12일 오후 3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비판하는 사상 초유의 전원위원회가 열렸다.

단초가 된 것은 지난달 18일 현병철 위원장이 국회에서 했던 "위원회는 행정안전부 소속이다", "조직축소는 이유있다" 등의 발언. 이날 오후 5시께 인권위원들은 이에 대한 해명 요구를 회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날 현병철 위원장은 "질의한 (신지호) 의원도 독립성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봤다"면서 "(인권위 운영은) 예산·조직·인사 등 행안부 규정과 떨어질 수 없고, 이런 규제들을 현실대로 드러내고 고쳐가자고 한 뜻"이라고 해명했다.

2시간 가까이 시작된 안건 논의 끝에 인권위원들은 위원회 차원에서 행안부의 조직축소를 규탄하는 결의문을 다시 발표하기로 했다. 현 위원장 역시 이른 시일 내에 위원장 명의의 입장을 통해 "위원회 독립성에 이의가 없다"는 뜻을 밝히기로 했다.

현병철 "규제를 현실대로 드러내고 고쳐가자는 뜻"

이날 전원위원들의 태도는 강경했다. 작심한 듯 센 발언을 이어갔다.

윤기원 상임위원은 "위원장 선발 당시 상당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사건"이라면서 문제의 근원을 현 위원장의 취임에서 찾았다. 현 사태를 "위원장이 독립성을 몸소 실천하지 못하고 위원회 존립과 위상이 흔들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윤 위원은 "위원회는 독임제가 아니라 협의체 기구다, 국회에서 기존 결의를 뒤집는 발언을 한 것은 위원장으로 해선 안될 처신"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현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내부에서 했던 해명도 진정성이 안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재근 인권위원 역시 "어차피 위원장으로 오셨으면 위원회의 주인으로 서야 한다, 국회의원들 앞에서 왜 당당하고 명확하게 '위원회는 독립기구'라고 말을 못하냐"고 꾸짖었다. 그는 "위원장이 오시고 나서 흘러가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다, 한두 가지가 아니다"면서 "아쉽다, 허탈하다"는 심경을 내비쳤다.

발언 당시 함께 국회에 출석한 문경란·최경숙 상임 인권위원들도 함께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현 위원장 발언에 참담했다는 두 인권위원들은 "당시 발언은 답하기 어려워서 나왔다거나 (독립성을) 완곡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국 위원은 "그날 국회에서 질의한 신지호 의원은 그 전부터 인권위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앞장서서 인권위를 공격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빠른 시일 내 해명하지 않으면 인권위의 국제등급이 하향조정돼 국제적 망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인권위원들은 "속기록을 보면 위원장이 독립성을 부정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현 위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최윤희 위원은 가장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최 위원은 "현 위원장의 발언이 독립성을 부인한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좀 의아했다"면서 "신지호 의원에 대한 배경을 알고 보니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훈 위원 역시 "인권위가 어디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라는 것은 '당위'지만, 현실적으로는 대통령령으로 위원회 조직을 정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독립성 부정' 발언이 언론에 알려져 공식화됐다고 하지만, 오늘 아침 신문을 볼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 인권단체인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옥힌 변호사의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내정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리더십도 도마 위에... "반인권·비민주적 단계 들어가지 않나 우려"

문제는 국회 발언만이 아니었다. 인권위원들은 현병철 위원장의 소통 부재도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문경란 위원은 "이번 일도 대화와 소통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전원위원회 안건으로) 안됐다"면서 "위원장이 리더십을 바꾸지 않는 한 이 문제뿐 아니라 여러 의제들이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최경숙 위원도 "(현 위원장의 태도는) 함께하고 따를 만한 위원장으로 신뢰가 들지 않는다, 납득할 수 있도록 답변을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인권위가 반인권·비민주적 의사결정 단계에 들어가지 않나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윤희 위원은 "위원장이 바뀌어서 문제가 생겼다는 공격적 발언으로 들릴 수 있다, 공개적 자리에서는 (발언하기) 곤란한 문제"라면서 다시 현 위원장을 지원하고 나섰다.

이같은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현 위원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위원들 의견을 모아달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회의를 마치면서 그는 "위원회는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는 기구지만, 현실적으로 운영은 행안부 규제에 걸려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앞서 현 위원장은 이날 안건을 상정하면서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에 관계되는 사안이라서 위원회 운영규칙상 비공개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남영 인권위원은 "위원장이 사석에서 친구와 말한 게 아니고 국회 공식석상에서 하신 말씀이라서 사생활이 아니다"고 맞섰다.

원래 인권위원들은 이달 초 이같은 내용의 안건을 급히 논의하기 위해 임시 전원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으나 현 위원장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6일 위원들은 다시 한번 이를 전원위 안건으로 올렸고, 7일 공식적으로 회의에 상정됐다.

한편, 이날 인권위에서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10여명도 이날 전원위원회를 방청했다.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소속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전원위 개최 무산을 우려해 회의실이 있는 건물 13층 로비에 앉아 하루 농성을 벌이고, 오후 1시 현병철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과 반대 입장에 선 보수단체 활동가들도 인권위를 찾았다. 탈북자 출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국가인권위는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북한 인권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해명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청을 신청했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기자
09.10.12 21:26 ㅣ최종 업데이트 09.10.12 21:47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35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