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규, 사형집행 불안 때문에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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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규, 사형집행 불안 때문에 자살"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9.11.2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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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구름 같은 것" 낙서...또다시 사형제도 찬반 논란
13명의 부녀자를 연쇄 살인한 혐의로 복역 중이던 연쇄살인범 정남규(40)씨가 사형확정 31개월10일만에 자신이 머물던 서울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1일 오전 6시 35분경 정씨가 수감 중이던 서울구치소에서 자살을 기도했고 구치소 근무자가 이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22일 새벽 2시 35분경 숨졌다.

연쇄살인범 정남규, 쓰레기 수거용 비닐봉투 꼬아서 목매

▲ 처형대 앞에 놓인 '사형제'. 서울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법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정씨는 자신의 독거실(독방)에서 105cm 높이의 TV 받침대에 구치소가 지급한 쓰레기 수거용 비닐봉투를 꼬아서 맨 100cm 정도 길이의 끈을 달아 스스로 목을 맸다.

현재 법무부는 정씨가 저산소증(뇌손상)과 심장쇼크로 사망했다는 의료진의 1차 소견을 토대로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형수가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지난 2007년 2월 천안구치지소에서 살인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은 김모씨 사건 이후 2년9개월만이다.

정씨의 사망 뒤 언론에서는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알리는 유서가 있는지 확인에 나섰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유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그는 개인노트에 "현재 사형을 폐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요즘 사형제도 문제가 다시…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등의 낙서를 해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무부는 정씨의 자살 원인에 대해 최근 유아 성폭행범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다는 보도 등을 접한 뒤 사형 집행에 따른 불안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5년간 자살 재소자 67명..."불안 끝에 자살했을 듯"

연쇄살인범 정씨가 자살함에 따라 교정시설에서 자살한 재소자들의 통계가 주목받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교정시설에서 자살한 재소자는 모두 6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 통계결과 2005년부터 정씨 자살 직전인 올 3월까지 전국의 교정시설에서 사망한 재소자는 모두 133명으로 이 중 67명이 자살했다. 연도별로는 2005년 16명, 2006년 17명, 2007년 16명, 2008년 16명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9월 19일 전북 전주교도소에서 재소자 김모(34)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2월에는 20대 미결수가 자신의 방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 숨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또한 같은 해 5월 30일에는 전북 군산교도소에서 재소자 김모씨가 자살했다. 김씨의 경우에는 독거실 벽 못에 모포 테두리 끈을 걸고 목을 맨 채 의식을 잃고 있는 것을 순찰 중이던 교도관이 발견했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노컷뉴스>와 인터뷰한 한 교도관은 "재소자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지만 자살의 경우 워낙 순식간에 벌이지는 일이라 손을 쓸 틈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언론, 재소자 관리부실에 초점 맞추지 말아야"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인데도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무부 장관을 향해 사형집행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거나 공문을 보냈다는 보도를 접한 사형수들의 마음이 불안했을 것"이라며 "주로 연말에 사형이 집행된다는 점 때문에 극심한 불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중죄를 짓고 복역 중인 사형수들에게는 사형과 관련된 보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정부여당의 입장이 사형집행을 촉구하는 입장인 만큼 그에 따른 심리적 부담을 상당히 받았을 것이라는 게다.

실제 지난 2월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경한 법무장관을 향해 "법질서를 강조하면서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범죄자의 인권을 얘기하면서 피해자와 가족의 참혹한 현실에 눈을 감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베짱이'의 노래로, 장관의 용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국장은 또 언론이 이번 정씨 자살 문제를 다루면서 '재소자 관리부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관리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교정시설 내부는 물론 방 안까지 모두 CCTV를 설치해 감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제2의 인권침해 논란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교도관들이 24시간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방마다 CCTV를 설치하고 관리하게 되면 개인의 용변처리까지 모두 낱낱이 공개돼 또 다른 사생활 침해 논란을 낳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관리부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경계했다.

사형제도 찬반논란 다시 도마 위에

사형수 정남규의 자살 사건이 터지자 네티즌 사이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논란이 후끈 달아올랐다.

네티즌 '사람이 하늘이다'는 22일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을 통해 "정남규는 다시 한 번 정답이 없는 아주 익숙하고 오래 된 숙제를 우리에게 남기고 떠나갔다"며 "개인적으로 그의 범죄 행각을 보면 ' 마땅히 사형이 집행돼야 함은 두말 할 이유가 없을 것'이지만, 이쯤에서는 늘 그렇듯 반대 논리로 '인권' 그리고 응보형주의 대 특별예방주의 아주 첨예한 논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경아줌마'는 "아동성범죄자는 필히 사형 시켜야 한다"며 "사형이 싫다면 어디 섬에 가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spider'는 "사형제도는 참 어려운 문제"라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인간의 오판의 가능성과 더 중요한 것은 독재자나 전체주의자 집단들이(매카시즘을 이용하듯) 사익을 위해 잘못된 공권력으로 사형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티즌 권진우는 "사형제도는 무의미하다"며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이 사형제도가 무서워 범죄를 안 저지르겠느냐, 아무리 많이 사형을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범죄예방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2년여간 미성년자 2명을 성추행한 뒤 살해하고 길 가던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등 총 25건의 강도상해 및 살인 행각을 벌였고, 이 가운데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2007년 4월 사형이 확정된 바 있다.


<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09.11.22 19:25 ㅣ최종 업데이트 09.11.22 21:2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66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