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겨울’ 당신들이 빛과 소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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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겨울’ 당신들이 빛과 소금입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9.12.1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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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위해 노숙농성 장애인, 반도체 백혈병 진상규명 앞장 정애정씨
경찰폭력 맞선 쌍용차노동자, 일제고사 불복종 운동 청소년단체 등 수상
김동림(43)씨를 비롯한 8명의 장애인들은 지난 6월4일 짐을 꾸렸다. 20년 넘게 함께 살던 경기 김포시의 한 요양원을 떠나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으로 향했다. ‘시설장애인’이 시설이 아니라 ‘주거지’에서 살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노숙농성은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 등으로 이어졌다.
지체장애 1급인 김씨에게 요양원 생활은 담장 안에 철저히 유폐된 삶이었다. 장애인들은 사람이 아니라 시설 안의 ‘가구’와 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요양원을 운영하는 석암재단은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결국 서울시에서 “자립생활을 원하는 장애인을 위해 내년까지 자립생활가정 20가구를 시범 운영한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김씨와 그의 동료들은 10일, 특별한 인권상을 받았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등 100여 인권단체의 모임이 이날 세계인권선언 61돌을 맞아,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 앞에서 ‘인권의 맛을 돋운 소금들’이라는 이름의 인권상을 준 것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 스스로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요구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김씨는 시상식장에서 휠체어를 천천히 밀며 앞으로 나와 더듬더듬 말했다. “모든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닌 ‘집’에서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살게 될 날이 올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삼성반도체에 다니던 남편을 백혈병으로 여읜 정애정(32)씨도 이날 ‘인권 소금상’을 받았다. 그는 ‘삼성반도체 집단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에서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뛰었고, 이 노력은 남편의 죽음을 넘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 대한 것으로 옮아갔다. 정씨는 이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을 만들어, 반도체 공장·엘이디(LED) 공장 등의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유기용제 사용의 실태를 밝혀내고 피해자들을 돕는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이날 인권소금상은 이 밖에 △일제고사 불복종운동, 이명박 정부 아래 학생인권 실태조사 등을 벌여온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 △연극을 통해 인권운동을 하는 인권단체 ‘맥놀이’ △용산참사 문제를 라디오로 알리고 있는 ‘언론재개발’ △77일간 회사와 경찰의 폭력에 맞선 쌍용차 노동자들 △지난해 5월부터 1년 넘게 촛불을 들고 있는 ‘수원촛불’ 등 모두 18개 단체 또는 개인들에게 돌아갔다.

배여진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인권이 얼어붙고 있는 와중에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 인권의 맛을 끌어올리는 소금 같은 행동을 하고 있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은 이날 인권을 추락시킨 대표적 인물로 이명박 대통령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선정해 ‘인권추락상’도 시상했다. 이들은 선정 이유로 “이 대통령은 복지예산 삭감, 반인권적인 정책 밀어붙이기 등 일방주의적 행정으로 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또 현 위원장은 인권위 독립성 저해 등을 주도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겨레> 박수진 기자
기사등록 : 2009-12-10 오후 07:30:31 기사수정 : 2009-12-10 오후 10:22:52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3926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