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령관 무릎 꿇고 사과하는 성의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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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령관 무릎 꿇고 사과하는 성의 보여라"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9.12.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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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안사 인권침해' 인정 받은 재일동포 김병진씨

<보안사>의 저자 재일교포 김병진씨가 20여년 전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조금이나마 떨쳐 버릴 수 있을까?

보안사가 5공시절인 지난 83년 김씨를 간첩혐의로 체포한 뒤 장기간 불법구금, 구타 등 가혹행위, 허위사실 발표 등으로 그의 인권을 침해했으며 심지어 84년부터 86년까지 2년간 보안사 강제근무를 강요했다는 사실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공식 인정했다.

김씨는 지난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에 보안사의 인권침해 사실을 조사해 달라고 신청했고,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 그의 신청을 받아들여 조사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일 보안사의 인권침해를 인정하는 조사결과가 일본에 살고 있는 그에게 통보됐다.

진실화해위, 보안사 '인권침해' 결정... "기무사, 진정으로 사과해야"

▲ <보안사>의 저자 재일교포 김병진씨. ⓒ 오마이뉴스 구영식
진실화해위는 '재일동포 김병진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통지서에서 "보안사는 신청인을 83년 7월 9일 서울 신림동 주거지 앞에서 연행해 장기간 불법구금하고 구타 등 가혹행위를 가하여 진술을 강요했고, 공판 청구 이전에 허위내용이 포함된 수사결과를 언론에 발표함으로써 피의사실을 공표했고, 공소보류 처분 후 보안사 근무를 강요하는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화해위는 "검찰은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가 안기부의 명의를 빌어 위법하게 수사하였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익의 대표로서 수사기관에 대한 지휘 감독을 다하지 못했다"고 검찰의 책임도 인정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는 신청인 및 관련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과 관련, 김씨는 5일 <오마이뉴스>와 한 국제통화에서 "26년 동안 고통스럽게 살아왔는데 정부 위원회가 그렇게 결정을 내려준 것은 고맙다"면서도 "하지만 아직도 실감이 안난다, 앞으로 기무사의 대응이 있어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가배상의 문제가 남아 있긴 한지만 그보다 기무사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며 "기무사령관은 나와 내 가족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고 보안사의 후신인 기무사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최근 입국했다가 6일 출국하는 김씨의 부인 강영미씨도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 가족이 겪은 심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다"며 "진실화해위의 결정은 그러한 고통을 정부가 인정해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씨는 "남편이 보안사에 끌려갈 때 아들은 태어난 지 1개월밖에 안된 상태였다"며 "그런 아들이 알게 모르게 아픔을 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김씨가 보안사에 끌려갔을 때 생후 1개월이었던 아들 겨레씨는 최근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84년부터 86년까지 보안사 강제근무... 88년 <보안사> 펴내 실체 폭로

김병진씨는 재일교포 신분으로 한국에서 유학중이던 지난 83년 7월 간첩혐의를 받고 보안사에 체포됐다. 그런데 보안사는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본어와 일본 교포사회 사정에 정통한 그를 특별채용했다. 이후 그는 84년 1월부터 86년 1월까지 2년간 보안사에서 강제근무했다. 간첩혐의를 뒤집어 씌운 것도 모자라 보안사 강제근무까지 강요한 것. 이는 그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김씨는 지난 2004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당시 저는 구속시켜 달라고 했지만 처자식을 인질로 삼은 보안사의 요구를 거역할 수 없어 보안사에 강제로 근무하게 되었다"며 "사람 죽이는 것을 파리 목숨으로 생각하는 보안사가 실세인 시대에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정보분석과 통역 등의 역할을 맡았던 김씨는 그곳에서 간첩사건을 조작하기 위한 고문 장면 등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보안사 강제근무를 마친 그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 88년 <보안사>(소나무)를 펴냈다. 2년여 보안사 근무가 바탕이 된 <보안사>는 80년대 초중반 당시 무소불위의 기관으로 군림했던 보안사의 추악한 실체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는 2000년 5월까지 고국의 땅을 밟지 못했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 '국내 입국 금지'의 이유였다.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09.12.06 11:48 ㅣ최종 업데이트 09.12.06 11:4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75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