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회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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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회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01.0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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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84일 간의 추모 미사 종결…사제단 "용산 문제, 진행 중"
"이제 다섯 분을 하느님께 보내드리고자 한다. 사제들이 이곳에서 다섯 분의 뜻을 새기고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 나눈지 284일째다. 추모 미사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다섯 분이 하느님 품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기도하자. 또 유가족과 철거민이 하루 빨리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전종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의 입에서는 연신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미사가 진행된 6일은 1월 기온으로는 20년 만에 두 번째로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동안 진행된 어떠한 미사 때보다도 많은 인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떠나지 않았다. 이날을 끝으로 천주교 사제단은 더 이상 용산에서 추모 미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사제단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용산 참사 현장에서 미사를 진행한 지도 벌써 284일이 됐다. 천막기도회를 진행한 지는 205일이 됐다.

▲ ⓒ프레시안


"오늘 미사는 마감하지만 아직 미사는 끝나지 않았다"

"용산 참사 안 끝났다. 진실 규명 처음부터."

김인국 신부가 큰 소리로 선창하자 미사에 참석한 500여 명의 시민들도 일제히 따라 외쳤다. 김인국 신부는 "그동안 추워도 더워도, 철거민들이 유죄를 선고 받아도 행복 했었다"며 "우린 떳떳했기 때문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인국 신부는 "오늘로 천막 기도회를 마무리하지만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며 "그동안 함께 해줘서 고맙고 대단히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강서 서울 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우리가 이루게 된 게 반쪽의 승리라고 해도 여기까지 걸어온 세월은 우리가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며 "모진 세월을 견딘 유가족과 미사에 참여한 시민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강서 신부는 "오늘 미사는 마감하지만 아직 미사는 끝나지 않았다"며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수사 기록 3000쪽을 공개할 때까지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용산 참사 단식 도중 심장마비로 의식불명 상태까지 이르렀던 문규현 신부도 이날 미사에 참여했다. 문규현 신부는 "이제라도 망자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이제 겨우 숨쉬고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결과는 고통 속에서 존엄과 희망을 놓지 않았던 유가족과 신부, 수녀 덕분"이라며 공을 이들에게 넘겼다.

이어 문규현 신부는 "고인을 1년 가까이 괴롭고 힘든 시기를 보내게 해서 한 없이 죄송스럽다"며 "이제 가시는 길에는 부디 다 내려놓고 평안과 안식이 깃들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 ⓒ프레시안


"진상 밝혀지지 않으면 참사는 반드시 되풀이 된다"

고인의 장례식을 치루기는 하지만 여전히 용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사제단의 생각이었다. 이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용산 참사의 치유와 화해는 이제 겨우 시작됐다"면서도 "진실 규명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사제단은 "정부가 말하는 타결이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장례와 보상에 관한 합의에 지나지 않는다"며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한 참사는 반드시 되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감춘 것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라며 "검찰은 하루 빨리 수사 기록 3000쪽을 공개하고 법원은 이를 토대로 시비를 가려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제단은 용산을 방관한 시민들에게도 쓴 소리를 던졌다. 이들은 "용산 참사 문제는 국민의 마음에도 들어 있다"며 "국가 권력이 살려달라는 생존권 호소를 잔혹한 방식으로 제압했을 때, 그리고 이에 대한 항변을 갖은 궤변과 억지로 무참히 단죄하고 모욕을 주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침묵하고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사제단은 "결과적으로 국민을 섬겨야 할 정부가 주인의 목숨을 빼앗고 삶터를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범죄를 자발적으로 승인해버린 꼴이 되었다"며 "뉴타운 사업, 세종시, 4대강 등 모두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지을 중차대한 사안들에 대해 정부가 용산 참사와 같은 오만과 불손을 되풀이 하지 못하도록 다 같이 눈을 부릅떠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제단은 앞으로도 춥고 어두운 구석에서 눈물 흘리는 이들을 보듬을 것을 약속했다. 이들은 "참사 현장의 천막 기도와 매일미사를 통해 우리는 교회의 정체와 복음 선포에 대해 새롭게 깨달았다"며 "교회가 있어야 할 곳은 고난의 현장이며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와 희망을 나누는 실천만이 진정한 복음 선포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고 이상림 씨 둘째 아들인 이충연 씨가 이날 오후 7시 구속 집행 정지 처분을 받고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했다. 이충연 씨는 장례식이 치러지는 9일 자정에 다시 구치소로 돌아갈 예정이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기사입력 2010-01-07 오전 9:36:47
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07030052&section=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