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의 마지막 인사...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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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의 마지막 인사...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당신"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01.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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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7신] 355일 지나는 동안 마르지 않은 눈물... 마석 모란공원에 영원히 잠들다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결이 9일 오후 서울 한강로 남일당 참사현장에서 노제를 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유성호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참사 발생 355일 만에 거행된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가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7신 - 최종 : 9일 밤 11시 5분]

지난해 1월 20일에도 이렇게 추웠다... "이 바보야,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

9일 용산 철거민 다섯명의 장례는 유가족들의 눈물로 시작되어 다시 눈물로 끝났다. 이날 오전 9시 발인식에서 상여를 잡고 오열하던 가족들은 저녁 9시 늦게 마석 모란공원에서 언 땅에 관을 내리면서 또 한 번 통곡했다.

부인들은 차가운 땅에 주저앉아 바닥을 내리치다가 넋을 잃었고 그러다가 다시 울부짖었다. "상흔이 아빠(고 이성수씨)!" "종원이 아빠(고 양회성씨)!" "현구 아빠(고 윤용헌씨)!" 등 남편을 부르면서 "억울하고 분해서 어떻게 가" "나는 이제 어떻게 하라고"라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가 안타깝게 울려퍼졌다.

이들의 오열에서는 평생 가난하게 살다 허망하게 떠나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읽을 수 있었다.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는 "그러니까 내 말을 듣지, 이 바보야, 왜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우리 애들밖에 없다더니 날 두고 어떻게 가? 상필이(미숙아로 태어나 시력이 안좋은 작은아들) 어떻게 두고 가, 어떻게 할 거야"라고 외쳤다.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도 "그렇게 욕심없이 살더니, 아빠 보고싶어서 어떻게 살라고"라고 한탄했다.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는 관 위에 흙을 부으며 "냉동고에 그렇게 오래 있었으니까 따뜻한 데 가서 잘 살어"라고 명복을 빌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듣는 이들을 울렸다. 그는 남편의 묘소 앞에 앉아 "우리 종원이, 종민이 좀 잘 지켜줘, 당신처럼 살지 않게 해줘"라고 당부했다.

다른 가족들의 바람도 비슷했다. 고 이상림씨 딸 현선씨는 아버지의 관이 들어가는 땅바닥을 쓰다듬으며 "안녕히 가세요, 편안히 가세요, 우리 엄마 좀 잘 지켜주세요"라고 고인의 영혼을 불렀다.

이날 장례는 밤 10시께 흙이 덮인 묘소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모두 끝났다. 이 날은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커피와 녹차, 컵라면을 준비하고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워야 하는 날씨였다. 지난해 1월 20일에도 이렇게 추웠다. 그러나 사계절이 바뀌고 355일이 지나는 동안 유가족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참사 발생 355일 만에 거행된 9일 오후 서울 한강로 남일당 참사현장 앞 재개발 공가에서 노재를 하기 위해 도착한 운구행렬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6신 : 9일 저녁 7시 50분]

1년만에 '열사'가 되어 돌아온 남일당... 노제는 '눈물 바다'

1년만이다. 고 양회성, 윤용헌, 이상림, 이성수, 한대성씨가 1년만에 용산 남일당에 돌아왔다.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살아보겠다'고 망루에 올라갔지만, 죽어서 내려왔다. 그 뒤로 355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이제 '열사'라는 이름으로 차가운 시신이 되어 자신들이 올라갔던 망루 앞에 섰다.

냉동고에서 남일당으로 다시 돌아오는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서울역광장에서 영결식을 끝내고 오는 길도 몹시 험난했다. 당초 이날 오후 3시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용산참사 현장 앞 노제는 2시간이나 늦어져, 오후 5시 15분경 시작됐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남일당 분향소를 다녀갔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남일당 분향소와 유가족을 지켰다. 노래를 하는 사람은 노래로, 글을 쓰는 사람은 시와 소설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그렇게 고인들의 한을 풀며 '투쟁'을 전개했다. 고인들이 1년만에 돌아왔듯, 그동안 남일당을 지켰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듯 했다.

노제에 참석한 4000여 명의 시민들은 남일당 앞 도로 3차선은 물론 인도까지 가득 메웠다. 노제 사회를 맡은 김소현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은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는 광화문 광장 전체를 내주면서, 용산참사 노제를 위한 공간은 가로 막아서는 이명박 정권이 정말 인두겁을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렵게 노제를 열게 되어서 인지, 흰눈이 펑펑 내려서 인지, 유족들의 흐느낌을 들어서 인지, 아니면 용산참사 현장이어서 인지, 참석한 시민들의 구호는 서울역광장 영결식보다 더욱 우렁찼다.

"열사의 염원으로 살인재벌 박살내자!"
"살인정권, 폭력정권, 이명박 정권 박살내자!"

그러나 대열 가장 앞에 앉아 있던 유족들은 노제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들의 머리 위로 흰눈만 속절없이 소복소복 쌓여갔다. 민중가수 최도은씨의 절절한 조가도, 송경동 시인의 분노어린 조시도 유족들의 고개를 들게 하지 못했다. 다만 조가를 부른 가수와 조시를 낭독한 시인과 참석한 시민들만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

지난 284일동안 '남일당 성당'과 유가족을 지켜온 문정현 신부가 무대에 올라오자, 그제서야 유족 중 일부가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문정현 신부는 "용산학살은 세입자들에 대한 도전이었고, 철거민, 일반 민중에 대한 도전이었다"며 "그 도전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지만, 우리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족들도 무대에 올랐다. 이제 정말로 고인들을 보내야 하는 부인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가장 마지막에 마이크를 잡은 고 이성수 열사 부인 권명숙씨는 인사를 하면서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동안 하도 많이 울어서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있을까 했는데, 이것이 마지막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니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왔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지만, 냉동고에 계실 때는 시신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진과 기억으로밖에 볼 수 없는 당신...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당신...

...다행히도 지난 일 년 동안 아이들이 훌쩍 자랐습니다. 아버지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입대했던 큰 아들이 조문객을 받는 모습을 보니, 정말 이제는 어른이 다 됐구나 하는 생각에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렇게 예쁘게 컸는데, 아빠가 그 모습을 못 보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권명숙씨는 "지난 1년간 이 나라 정부가 버린 저희들을, 집도 절도 갈 곳 없는 저희들을, 따뜻이 보살펴주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며 "저희 유가족도 여러분 믿고 끝까지 싸워서 그 고마움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권씨는 무대에서 내려와 자리에 돌아가서도 아들의 손을 꼭 부여잡고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유가족도, 시민들도, 남일당도 고인들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노제가 끝난 뒤 유족들과 관계자들, 시민들 일부는 버스에 각각 나눠타고,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눈이 많이 내렸지만 남아있던 시민들은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남일당 분향소에 들러 분향을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결이 9일 오후 서울 한강로 남일당 참사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결이 9일 오후 서울 한강로 남일당 참사현장을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5신 보강: 9일 오후 6시 20분]

"용산 남일당은 열사들이 경찰특공대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된 곳이다. 경찰의 헬멧이 보이는 것 자체가 장례의식을 방해하는 것이고 유가족들을 흥분시키는 것이다. 열사들을 편히 보내지 못하게 하는 짓이다. 경찰 헬멧들은 빨리 시야에서 사라져라."

홍석만 용산참사 희생자 장례위원회 의전팀장의 말이다. 9일 오후 3시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결식을 마치고 서울역광장을 출발한 장례행렬은 오후 5시가 돼서야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부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운구가 시작되자마자 서울 하늘에는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듯 눈이 내렸다. 그러나 그 길은 그렇게 평화롭지 않았다.

영결식장도 행진도로도 좁아터져...

이날 경찰은 운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대형 '부활도'를 들고 행진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갈등을 벌였다. 화가 이윤엽씨가 지난 월요일부터 그린 '부활도'는 다섯명의 철거민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나타낸 작품이다.

실랑이 끝에 장례위원회는 '부활도'를 들고 행진을 할 수 있었지만, 경찰이 추모 행진에 대해서도 차도 2차선만 내주었다. 3000여 명이 좁은 도로를 행진하려니 자연스럽게 체증이 길어졌다.

차도에는 행렬이 300m 정도 늘어졌고, 시민들은 도로 행진을 포기하고 인도를 통해 용산 현장으로 이동했다. 차선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치는 경찰들과 이를 막으려는 시민들 사이에 산발적으로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례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교통경찰의 도로통제에 분통을 터뜨리며 짜증스런 표정이었다. 시민들은 "경찰버스 빼라" "너희들이 오히려 길을 막고 있다" "(고인들의) 마지막 길인데 왜 막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노제 무대를 100m 가까이 남겨놓고 행렬은 다시 멈췄다. 노제 장소를 몇 차선까지 사용할 지를 놓고 경찰과 장례위는 다시 갈등을 벌였다.

많은 참가자가 예상되는 행진이었는데도, 길을 만들어주는 교통경찰 배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도 큰 문제였다.

경찰은 전날인 8일 용산참사 장례행사를 위해 경력 4700명을 배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사의 원활한 진행과 흐름을 위한 교통경찰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집회나 시위에 대비한 무장경찰들만 가득했다.

전투장비를 갖춘 경찰들은 장례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이 불법 시위대로 변모할 것에 대비해 이에 대해서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장례위원회 등 용산참사 희생자 추모를 위한 범대위는 행사의 원활한 진행에만 몰두했다. 불법집회나 시위를 벌일 계획조차 없는데 경찰만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러니 거리는 굉장히 혼잡하고 교통정체는 극심해졌다. 이를 정리한 교통경찰의 활동은 미미한 상황이다. 범대위측은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원하는데, 경찰은 장례행사를 시위 다루듯 하니 상황은 매우 역설적인 셈이다.

결국 이날 노제는 계획보다 2시간이나 더 걸린 2시간 30분 만에 시작됐다. 오후 6시 현재 눈발은 점점 굵어지면서 양도 많아지고 있다. 눈이 내리면서 체감온도도 많이 떨어지고 있으며 거리의 추위는 점차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해가 진 뒤 눈마저 내려 시민들은 언발과 언손을 호호 불며 남일당에서 노제를 준비 중이다.

한편, 행진 전에도 장소 문제는 장례에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였다.

예상했던 대로 영결식 장소인 서울역광장은 4000여 명의 시민들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무대 및 음향 장치를 설치하기에도 좁았다. 주최 측은 여러 차례 참가자들과 취재진에게 "통로에서 비켜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광장 안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서울역 계단이나 버스 정류장에 서서 영결식을 지켜보는 시민들도 많았다.

이날 바짝 얼은 길을 오랫동안 걷는 유가족들은 간간히 물과 사탕 등을 먹으면서 기력을 보충했다. 핫팩을 쥐고 장갑을 두겹으로 끼우고 목도리를 다시 두르면서 추위를 견뎠다. 행진이 이어지는 동안 길가던 시민들도 걸음을 멈추고 유가족들을 관심 깊게 지켜보며 용산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부동산 사장님도 "사람있는 재개발을 해야지"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결이 9일 오후 서울 한강로 남일당 참사현장에서 노제를 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유성호


영결식장인 서울역 광장에서 노제 장소인 용산 남일당 앞까지, 행렬 도중 만난 시민들은 하나같이 용산참사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특히 가게 주인들은 재개발 사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고인들도 철거 전까지 영세 자영업자였으니 서로 처지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서울역 앞에서 여관을 하는 황아무개(76세) 할머니는 운구 행렬을 지켜보다가 "용산 참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있나, 다 안다"면서 "여기 상가 사람들도 다 한 마음일 거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나도 의경 손주가 있지만 내 손주도 이 사태를 안쓰럽다고 생각한다"면서 "어쩔 수 없이 고생하는 손주도 용산 사람들도 다 안타까운 거 아니겠나"고 말했다.

숙대입구역 앞 한 금은방의 한아무개(48)씨는 "나도 같은 상인들이라서 안쓰럽고 안타깝다, 최근에 이 근처 상점들 역시 똑같이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개발 사업으로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늘어서있는 신용산역 부근, 한 부동산업체 사장은 "여기 (재개발 확정되기 전까지) 원래 이 동네 부동산 다 합쳐도 3~4개밖에 안 됐다. 갑자기 셀 수도 없이 생겼다"면서도 다음과 같이 재개발을 비판했다.

"우리한테 이득 될 게 어딨나. 그냥 중개비만 받는 거다. 돈이 없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은 돈으로 집을 샀다가 강제 철거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돈 없는 사람들만 힘들어지는 게 재개발 사업이다. 사람 얼굴이 있는 재개발을 해야지. 저렇게 사람이 타서 죽게 내버려두고."

특히 이날 길에서 만난 시민들 중 가장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거대한 행렬과 수많은 경찰들을 지켜본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알제리에서 왔다는 한 남성은 "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정부가 있는 이유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지켜주라고 있는 건데 무척 놀랍군요" 라고 말했다. / 엄민, 권지은 기자

[4신: 9일 오후 4시]

서울역 영결식 마쳐... 장례행렬, 남일당으로

▲ 용산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고인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 남소연

▲ 용산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각계인사들의 조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1년여 만에 차가운 냉동고에서 밖으로 나온 고인들이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고 춥기만 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영결식이 끝난 서울역 광장에는 오후 3시 현재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고인들을 앞세운 장례 행렬은 다시 눈물과 한을 눈발에 흩날리며 참사 현장이 있는 남일당으로 향하고 있다.

영결식 시작 전만 해도 2000여명이었던 장례 인파는 어느새 4000여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2000여명)으로 늘었다. 광장이 좁아 버스 정류장은 물론 역사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시민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혹한의 날씨는 풀렸지만,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살을 에인다. 머리에 끈을 질끈 동여맨 노동자들부터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나온 일반 시민들까지, 참석자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모두 무겁고 어두웠다. 1년여만에 치러지는 장례식이지만, 전혀 기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강실·조희주 상임장례위원장은 개식사를 통해 "님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희망을 만들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을 보셨느냐"며 "님들이 벼랑 끝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을 때,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으로 고통 속에 산화해갈 때,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한 사람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들은 이어 "또 다시 용산의 아픔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망루를 세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조사에 나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지난 밤 가슴이 떨리고 주먹이 떨려 잠을 못 잤다"며 말문을 열었다.

"신문·방송에서는 용산참사라고 하는데, 사실은 용산학살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자리에 나와서 '정말로 무릎꿇고 사죄합니다'라며 큰 절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고 부하들이나 보낸 것은 용산에서 목숨 빼앗긴 사람들을 또 한번 죽이는 것이다.... 오늘은 열사들을 땅에 묻는 날이다. 그러나 삽질을 못하겠다. 삽질을 해서 묻어야 할 것은 이명박 정권이고, 그 우두머리인 미국놈들이다."

목이 매여 말을 이어갈 수 없던 백기완 소장이 "정말 원통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무대를 내려왔고, 김정환 시인이 '산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라는 제목의 조시를 낭독했다.

무대 바로 아래 왼쪽에는 고인들이 남기고 가야 할 부인과 자식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특히 고 한대성씨 부인인 신숙자씨는 정신을 놓은 듯, 시선을 바닥에 떨군 채 멍하니 생각에 잠겨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다시는 저 망루에 오르는 일 없기를"

▲ 용산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민중가수 박준씨의 조가가 이어졌고 곳곳에서 신음 같은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만, 유족들은 발인식 때와는 달리 담담한 표정이다. 그러나 박준씨가 "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자, 유족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진혼무'에 이어 4대 야당 대표들의 조사가 계속됐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마지막 가시는 날까지 억울한 진실의 진상을 세상에 알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살고 싶다는 것이 죽음의 이유가 되어야 했던 당신들의 투쟁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삶의 터전을 잃고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보다 높은 곳으로 오른 님들을 이명박 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해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서민을 학살한 이 정권을 누가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이어 "천인공노할 만행을 제대로 밝히지도 못하고 심판하지도 목하고 열사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야당, 민노당을 용서하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유가족들이 무대에 올랐다.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유가족 대표로 인사말을 낭독했다.

전재숙씨는 "오랫만에 다섯 가족이 모두 모였다. 우리 막내도 감방에서 돌아와 술을 올렸고, 군대와 학교에 갔던 아이들도 돌아와서 텅빈 영안실과 뻥 뚫렸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채워지는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막상 돌아가신 분들을 땅에 묻으려고 하니 또 다시 찬바람이 횡하니 지나간다"고 소회를 밝혔다. 담담한 표정으로 인사말을 낭독하던 전재숙씨는 고인들이 '테러범, 살인범'으로 몰렸던 일을 회상하며 결국 목이 메이고 말았다.

"지난 1년간 냉동고에 계셨던 분들에 대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애써 본 척, 들은 척하지 않았지만, 지난 1년 전 고인들을 '도시 테러리스트'라고 몰아붙인 기억들이 되살아나 마음이 참으로 편치 않다. '테러범,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쓰고 땅에 묻힐 고인들의 명예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겠느냐.

돌아가신 분들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진실을 밝혀서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차가운 감방에 갇힌 내 아들, 우리의 동료들이 하루빨리 풀려날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 철거민들이 저 위태로운 하늘 끝 망루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이 잘못된 재개발 정책을 바로 잡아 달라."

"사람된 도리로 마지막 가는 길 함께 했다"

▲ 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희생자 영결식에 참석한 문정현 신부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왼쪽은 한명숙 전 총리. ⓒ 남소연

▲ 9일 오후 용산참사 희생자 영결식이 열린 서울역광장에 고인들의 시신 다섯 구가 운구되고 있다. ⓒ 남소연


영결식을 지켜보던 김세환(28)씨는 "용산참사 소식을 알고 있으면서 영결식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동안 용산참사 현장에 있는 분향소를 가끔 갔는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보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최경주(24)씨도 "이렇게라도 해결 돼 좋은데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며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용산 유가족이 떼를 쓴다는 보도를 했는데, 용산 재개발, 4대강 등을 보면 건설 자본의 논리가 힘이 세다는 것을 느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워싱턴DC에서 온 교환학생 칼씨(29)는 "미국에는 이런 일이 별로 없어서 굉장히 놀랐다"며 "최근 용산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온 노안(21)씨도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이 비슷해서 관심이 많다"며 "프랑스에서도 용산참사 같은 일이 발생해 무척 공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결식 인근에서 진행된 보수단체의 기습시위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보수단체 시위에 항의하다 옷이 찢어진 박오성(62)씨는 "같은 국민으로서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안 된 마음에 참여했다"며 "장례식은 원수라도 방해하는 게 아닌데, 보수 단체가 와서 이렇게 하는 것은 완전 개차반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신관석(52)씨도 보수 단체 시위에 대해 "영혼이 파괴됐다, 원수도 죽었다고 하면 조문을 하는 법인데, 이럴 수 있느냐"고 분개했다. 지영관(42)씨는 "내 딸 표현을 빌리자면 안드로메다에 개념을 놓고 온 사람들 아니냐"고 허탈하게 웃었다.

▲ 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용산참사 희생자 영결식에 철거민 5명의 얼굴을 담은 대형 '부활도'가 놓여 있다. ⓒ 남소연


[3신: 9일 낮 1시]

영결식 방해나선 '반핵반김' 등 극우단체... 시민들 비난

용산참사 희생자 영결식이 예정된 서울역광장에 느닷없이 보수단체 회원들이 나타나 반인륜적으로 영결식을 방해해 오가는 시민들로부터 거센 항의와 비판을 받았다. 유교 전통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남의 영결식을 훼방놓는 것은 반인륜적 패륜행위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일부 시민들은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극우단체들이 영결식을 방해해 욕을 얻어먹은 것이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극우단체 회원 50여명은 9일 낮 12시 28분께 서울역 역사 2층 앞 입구에서 기자회견 형태의 집회를 열며 영결식을 방해했다.

전부 노인들로 구성된 이들은 "용산참사를 정치선동으로 악용하지 말라"며 "민간인의 희생을 범국민장으로 치르는 것은 민간인의 희생을 정치선동 기회로 악용하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서석구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지부 준비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적절한 이주와 보상, 재개발 사업의 제도적 개선, 철거민의 생존권 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변질케 하는 좌파공작을 근절해야 한다"며 "폭력난동이 아닌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시위문화, 열악한 경찰인력 강화와 폭력진압 장비개선 등을 용산참사의 교훈으로 삼자"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보수국민연합, 대한어버이연합 등 단체의 회원들은 "용산참사 민중열사 국민장 웬말이냐 즉각 중단하라" "신나 70통 쌓아놓고 화염병 투척, 용산참사 일으킨 불순세력 해체하라" "불법폭력 선동하는 민주당 민노당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혼잡한 서울역 역사로 통하는 출입구 앞에서 난데없는 기자회견 성격의 집회를 벌이자 시민들은 이들을 향해 성토하기 시작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영결식에 참석하러 서울역광장에 온 시민들은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 "해도해도 너무한다" "민주주의의 자유를 악용하는 사람들"이라며 혀를 찼다.

이들의 반인도적 행태에 분노한 한 시민은 육두문자를 섞어 이들을 향해 거센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들이 목청높여 애국가를 부르면 영결식 참석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맞불을 놓기도 했다.

경찰은 극우단체 회원들과 영결식 참석 시민간에 불필요한 언쟁이 생기지 않도록 경계선을 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화가 난 일부 시민들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


한편, 이들의 집회와 관계없이 이날 낮 12시 10분께 운구행렬은 영결식장인 서울역광장에 도착했으며 12시 28분께부터 영결식은 시작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 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시민단체,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 일반 시민들 모두 2천여명이 넘게 참석했다.

서울역광장이 비좁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촛불과 노무현, 김대중 전직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이다. 영결식에 참석한 많은 시민들은 비통에 잠긴 채 참혹한 심경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전날에 비해 날씨는 한껏 기온이 올라 영상이 됐지만 얼어붙은 유가족들의 마음은 불어오는 찬바람만큼 차갑다. 곳곳에 폭설과 한파의 흔적은 채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고, 서울역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은 모두 두툼한 옷차림으로 서 있다.

▲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사거리에서 고인들의 영정을 앞세운 운구차들이 서울역광장 영결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2신: 9일 오전 11시 25분]

용산참사 희생자, 발인식 거행... 운구 행렬 이동

"아이고, 안 돼. 가지마. 나는 어찌하라고."

부인들은 관을 놓지 못했다. 용산참사로 고인이 된 시신 다섯 구를 붙들고 절규했다.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을 섞고 살아온 아내들은 남편의 마지막 길에 통곡으로 배웅했다.

9일 오전 10시께 용산참사 철거민 시신 다섯 구가 냉동고를 떠났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고 이상림씨, 고 양회성씨, 고 한대성씨, 고 이성수씨, 고 윤용헌씨의 운구가 차례로 진행되는 동안 순천향병원 영안식장 앞은 서러움이 복받치는 눈물바다가 됐다.

부인들은 하나 같이 관을 놓지 못한 채 "어떻게 해, 아이고" "안 돼, 안돼" "가지 마, 나는 어떻게 하라고 그래"라는 말만 반복하며 목놓아 울었다. 가족과 친지들의 부축을 받아 힘들게 걸어가던 부인들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여러 차례 땅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는 자식들과 부둥켜안고 오열했고, 분노를 삭이지 못한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는 근처에 있던 교통경찰을 향해 달려들기도 했다. 고 한대성씨 부인 신숙자씨는 "이렇게 예뻐하는 아들을 두고 어떻게 가"라고 외쳤다. 법원의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장례식에 참석한 고 이상림씨 아들 이충연씨는 "아빠, 아빠"라고만 울부짖었다.

▲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가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가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고 윤용현씨 부인 유영숙씨가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고 한대성씨 부인 신숙자씨가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가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운구에 나선 용산참사 유가족 및 친지, 지인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 사회단체 활동가, 기자들도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삼삼오오 모여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다시 이렇게 추운 날 떠나보내게 되다니... 여기까지 오는 게 너무 길었다" "(협상이) 더 잘 돼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운구에 이어 진행된 발인식 역시 침통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폭이 7~8m도 안 되는 좁은 장례식장 앞마당을 가득 메운 500여명의 추모객들은 발인식을 지켜보면서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숙인 모습이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정치인들도 조용히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평범한 자영업자로 살았던 그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가 느닷없이 '도심 테러리스트'로까지 몰려 생을 마감하게 된 고인들의 마지막 길엔 근사한 리무진 차량이 동행했다. TV 속 화면으로만 만났던 정치인들과 여러 시민들의 배웅도 이어졌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려보는 호사였다.

많은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 속에,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영결식 장소인 서울역 광장으로 출발했다.


[1신: 9일 오전 9시 25분]

용산참사 희생자, 장례식 오늘 열려 

▲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참석해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 유성호

▲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살풀이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용산참사로 희생된 철거민 5명에 대한 장례식이 9일 오전 9시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시작됐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355일 만에 고인들은 영원한 안식에 들게 됐다. 그러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개발 관련 제도 개선 등의 과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장례식'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장례식은 8556명의 장례위원들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범국민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에는 노동계 1944명,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정치권 863명, 종교계 189명, 시민·사회단체 186명 등이 참여했다.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 장례위원회'(이하 장례위)는 이날 발인식과 영결식, 노제, 하관식 등 순서로 장례식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발인식이 끝난 뒤, 오전 11시경 순천향병원을 출발한 장례 행렬은 국립극장과 퇴계로 등을 거쳐 영결식장인 서울역 광장에 도착한다. 낮 12시부터 영결식을 진행한 뒤, 오후 3시 '용산참사' 현장에서 노제가 열리고, 장지인 경기 마석 모란공원으로 떠나 오후 6시에 하관식이 이뤄질 예정이다.

경찰 "불법집회 변질되면 검거" 엄포... 장례위 "아직도 죄를 뉘우치지 않고"

▲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참사 발생 355일 만에 거행된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유가족들이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며 절하고 있다. ⓒ 유성호


이날 발인식은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500여명이 참석해, 엄숙하고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유족들은 영구차에 오르는 관을 붙들고 통곡했다.

사회를 맡은 이성호 장례위 문예위원장은 "이제 더 이상 추위도, 불의 뜨거움도, 폭력도, 철거도 없는 곳으로 가소서"라고 기원하면서 발인식의 포문을 열었다. "아직은 가진 자들의 세상이지만 오늘 우리도 인간임을 선포하는 날"이라고도 덧붙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고인들의 장남들이 제상에 술을 올리자 "늦게 배워도 될 일인데, 너무 어린 나이에 제를 올리는 것을 배운 것 같다"고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특히 이 위원장은 "학살자들이 오늘 행사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범법을 저지르면 다 잡아가겠다고 엄포를 놨다"며 "저들은 아직도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8일 경찰은 이번 장례식을 순수한 장례행사로 관리하겠지만, 운구 행렬이 이동로를 이탈하거나 참가자들이 도로를 점거하는 것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이날 장례식이 '불법집회'로 변질되면 해산을 시도한 뒤 불응할 경우 현장에서 검거키로 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행사장 주변에 전·의경 67개 중대 4700여 명을 배치해 차량 통행 방해 등 불법행위에 대비할 계획이다.

앞서 유족 측은 8일 오전 정운찬 총리 방문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용산참사 관련 수배자 등이 영결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정 총리는 "총리라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노력해 보겠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경찰은 "명동성당에 은신 중인 용산참사 관련 수배자들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외부로 나오면 즉시 검거하겠다"는 입장이다.

착잡한 표정으로 발인식을 지켜본 문정현 신부는 "없는 시민과 세입자들을 외면하는 이 사회가 원망스럽다"며 "없는 사람 몰아내는 뉴타운 정책에 대해서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발인식에 참석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오늘 언 땅에 고인들 시신을 묻게 됐다"며 "장례는 치르지만, 진상규명이 안 됐고, 재발방지 대책도 없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오전 8시 25분경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앞에서는 한 시민과 경찰 간에 격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시민 박성수(37)씨가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정보과 형사를 발견하고 거세가 항의한 것. 박씨는 "일반 시민 입장 볼 때 경찰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보 수집도 밖에서 조용히 하면 되지, 왜 장례식장 앞에까지 와서 하는지 모르겠다, 경찰행세를 하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또 "이번 장례식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안된 상황에서 치러지는 고인에 대한 예의를 다 하지 못한 '반쪽짜리 장례식'"이라며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유가족이 워낙 고생하셨으니, 고인들을 이제 편안한 곳으로 보내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검찰의 미공개 수사기록(3천쪽) 가운데 2천여 쪽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취재 : 최경준 권박효원 기자, 엄민 권지은 허진무 인턴기자
사진 : 남소연 유성호 기자
10.01.09 10:47 ㅣ최종 업데이트 10.01.11 10:1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98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