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이 일상화된 현장에서 그 누가 단결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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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이 일상화된 현장에서 그 누가 단결하겠나"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01.2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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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진중 영도조선소 앞에서 보름째 단식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
“매일 아침 출근 조합원들을 향해 출근선전을 했다. 오늘 새벽엔 못 일어나겠더라. 결국 못나가고 계속 누워있다. 목도 메스껍고 어지럽고 숨쉬는 것도 쉽지가 않다.”

보름 가까이 곡기를 끊은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51)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말이다. 마르다 못해 갈라진 입술. 앙상하게 달라붙은 뱃가죽. 따뜻한 남쪽지방 부산까지 겨울 한파가 몰아닥쳤건만 이런 몸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사람조차 눕기 버거운 텐트 하나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29년전 남자들만 우글우글한 조선소에 우리나라 최초의 처녀용접공으로 입사해 속된 말로 ‘깡’으로 살아온 그에게도 한겨울 노상 단식이 쉬울 수만은 없다. 14일째가 되던 26일, 결국 의료진이 텐트로 긴급 출동해야 했다. 하지만 혈압과 혈당이 떨어져 당장 링거액을 맞아야한다는 의료진의 권유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이처럼 독하게 만드는 걸까? <민중의소리>가 26일 영도조선소 앞 단식농성 텐트에서 그를 만났다.

자필로 쓴 단식 결의문 한장.. "이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어 죄송합니다"

▲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앞에서 15일째 단식 중인 김진숙(51)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그는 한진중공업 해고자의 신분이기도 하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13일 영도조선소에서 열린 ‘불법정리해고 규탄 금속노조 부양지부 확대간부 결의대회’를 통해 한 장짜리 단식 결의문을 돌렸다.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죄송하다”던 김 지도위원은 “2003년 당했던 일을 똑같이 당할 수 없다”고 했다.

1986년 노조 대의원시절, 어용노조를 규탄하는 유인물을 뿌린 이후 찍혀 해고된 뒤 24년동안 ‘복직투쟁’을 벌여왔던 그는 지난해 11월 민주화운동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명예회복과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냈다. 하지만 같은 달 30일 그는 ‘출근’이 아닌 ‘출근시위’부터 벌여야했다. 사측이 그의 복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다.

이런 그가 12월 마주한 한진중공업 현장의 풍경은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조선부문 30% 구조조정, 희망퇴직 실시. 1000명 가까운 직원들을 잘라야한다는 사측의 주장을 그는 믿지 않았다. 2003년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최대흑자를 누렸던 당시도 무리한 구조조정을 했었다. 그때도 600명 명퇴명단이 발표되고 산자와 죽은자로 나뉘었다. 결국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동안 크레인에 올라 끝내 주검으로 내려왔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사태해결이 안됐다. 곽재규 동지가 다시 목숨을 끊고나서야 회사가 백기투항을 한거지. 그걸 만회하려는 것 같다.”

김 지도위원은 “2003년 두 노동자의 죽음 이후 사측이 ‘노사평화’라는 가면을 쓴채로 기회를 노려왔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바뀌고 세계경제위기가 닥치면서 회사 입장에서 볼때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그는 “마산공장은 이미 폐쇄됐고 이어 울산, 다대포, 율포공장까지 이제 영도조선소도 축소 내지 폐쇄돼 수빅으로 가져가지 않겠냐”며 “건설경영진들이 조선을 장악한 것부터, 최저입찰제를 도입한 것, 집행부가 바뀌자마자 1주일만에 구조조정을 통보한 것” 등 이 모두를 하나의 ‘시나리오’로 표현했다. 이 때문에 “수주를 받을 수 있는 회사가 수주를 받지 않았던 것”도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내기위한 일련의 시나리오가 관철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하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내가 노동력을 10만원에 팔아야하는데 사람은 많아지고 일거리는 없어져 5만원짜리 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냥 돌아갈 사람이 있을까? 그 일이라도 해서 쌀을 사고, 애들 학용품이라도 사줘야 하는거 아니냐.”

그는 “사측이 수지타산이 안맞는다며 5만원짜리 일 수주는 거부해왔다”고 꼬집었다. 적자라면 몰라도 이른바 본전치기 수주도 하지 않았다면 뭔가 구린 것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김 지도위원은 이 같은 배경에 “노조 무력화 목적이 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조합원 신분이면서도 그는 사측의 통제로 현장과 노조 사무실 출입조차 쉽지 않았다. 매일 출근하는 직원들을 향해 피켓을 드는 것밖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2003년을 연상케 하는 구조조정 사태를 바라보며 그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동원’할 조직도, ‘힘’도 없던 김 지도위원의 마지막 선택은 ‘단식’이었다.

원청과 하청 노동자 모두에게 던지는 51살 처녀용접공의 메시지

▲ 보름가까이 곡기를 끊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26일 상태 악화로 영도조선소 앞에 쳐진 텐트안에 누워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지난 18일 민주노총 부산본부에 올라온 그의 ‘콩국 한 그릇’이란 글 중 ‘사라지는 아저씨들’에 대해 물었다.

이미 '하청노동자 천여명이 짤리고', '식당이 헐빈하고', '통근버스가 텅텅비었다는 소문이 괴담처럼 떠돈다'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그는 “출근시위를 하는 동안 매일 매일 확연히 눈에 띌만큼 숫자가 줄어든게 보였다”며 무엇보다 “그걸 확인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답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350여명의 노동자가 희망퇴직서를 직접 쓰고 회사를 나갔고, 부산 중앙동 한진중공업 R&A센터의 경우도 구조조정 명단 공개로 해고 칼바람이 불었다.

하청노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Y산업은 70여명의 하청직원들 중 절반 가까이가 해고를 당했고, D업체∙H업체∙K업체 등도 줄 해고가 이어졌다. 더욱이 문제는 이 모두 소문일 뿐, 정말 어느정도 잘렸는지 통계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김 지도위원은 “비정규직 철폐를 이야기하면서 10년을 지내온 수준이 이 정도”라며 “제 자신부터 우리 사업장의 비정규직 해고숫자조차 모른채 비정규직 운동을 말하고 다녔다는게 너무 참담하고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한진 구조조정은 일상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조가 무력화 되는 것은 뻔한 사실 아니겠나.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사업장에서 누가 단결할 것인가.”

그의 말이 원청과 하청노동자 모두에게 비수로 꽂힌다.

김주익, 곽재규, 박종태. 이 세명도 김진숙 지도위원이 14일동안 단식을 하면서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 이름들이다. 그는 “수만 대의 차가 골을 흔들 정도의 소음을 일으키는 왕복 6차선 도로 옆 텐트 속에 누워서 51년의 인생을 돌아보며 그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이러고 있어보니 이제야 그들의 심경이 느껴진다는 김 지도위원. 그는 “몸이 힘든게 아니라 마음이 제일 힘들다”며 “무엇보다 고립감이 제일 크다”고 말했다. 자신이 텐트를 치고 단식농성에 들어가면 민주노총 지역 차원의 천막이라도 이어질 줄 알았다던 그는 “2주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지난해 쌍용차 사태도 그랬고, 이랜드 사태도 그랬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못하면서 투쟁은 패배해왔고, 그때마다 우리는 평가했고,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해았다”던 그는 이제야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런 이유일까? 그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하게 말을 꺼낸다. “김주익 지회장과 곽재규 동지는 우리가, 자신이 죽인게 아니겠냐“고.

▲ 27일로 15일째 단식 중인 김진숙(51)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 쳐진 농성텐트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화장실을 가려해도 부축을 받아야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한 상황이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내가 죽어도 '마찬가지 일'이 되풀이 될 지 모른다"

‘그만한 진국’을 못봤다던 박종태 열사도 지난해 5월 초 대한통운 대전지사 야산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지도위원은 “1차적 책임이 자본임은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체포영장이 떨어진채로 싸우며 집회라고 해봐야 73명 조합원 빼고 아무도 안오는 현장을 지켜보며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능히 짐작된다고 말했다. 관성화된 운동이 진정성 있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게 아닌지 그는 걱정스럽다.

“죽으면 노동자 장으로 치를 것인지 이거 의논해서 장례 치르고 나면 1주일도 안되서 다 잊어버린다. 어디선가 또 되풀이 되고 또.. 그걸 20년을 반복해왔다. 제가 죽어도 마찬가지 일이 되풀이 될 것이다. 이제야 절박하게 느껴진다.”

12월 한달 동안 구조조정을 급박하게 추진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측에 대해, 그는 “ 일정정도의 반발과 이미지 실추는 감수해서라도 몇 달 지나면 다 만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 싸움에서 교섭은 숫자놀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또한 “쌍용차 사태가 치열하게 투쟁하고도 결과가 그에 미치지 못한 것”도 “시기를 놓친채 이미 패배주의가 만연한 이후 투쟁한게 제일 컸다”고 지적했다.

그의 눈에 비친 조합원들은 2003년을 열사정국을 거치며 구조조정에 움추려 있는게 아니라, “부산과 울산에서 오라면 오고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는” 노동자들이다. 2003년 영도조선소 앞마당에100명조차 모이기 힘들던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김 지도위원은 “노조가 이런 조합원들의 힘을 믿고 좀 더 강하게 투쟁하고, 밀어붙이면 26일 해고발표 연기에 이어 철회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대책위 등에도 “형식만 대책위가 아니라 진짜 이긴다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고 뼈있는 말을 던졌다.

배고픈 건 절대 참지 못한다던 그는 진정한 ‘연대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단식 보름을 넘기고 있는 오늘도 치료조차 거부한채 여전히 굶고 있다. 한진중공업이라는 거대한 '골리앗'에 맞선 작디 작은 '다윗' 텐트에는 여전히 '영도 바람'이 세차게 분다.

▲ 지난해 12월 대형조선업계 최초로 대규모 구조조정 방침을 통보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민중의소리> 김보성 기자
기사입력 : 2010-01-27 12:24:49 ·최종업데이트 : 2010-01-27 16:41:21
http://www.vop.co.kr/2010/01/27/A000002802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