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사형제 합헌 판결은 시대착오적인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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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사형제 합헌 판결은 시대착오적인 발상"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02.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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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합헌 결정 직후 종교, 인권, 시민단체 기자회견 열어
▲ 헌재 나서는 종교 단체 회원들 헌재가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리자 종교 단체 회원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대심판정을 나서고 있다 ⓒ 오대양


"시기상조라더니, 대체 언제쯤 가능하단 말인가."

박진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전략사업팀장은 대심판정을 나서며 분통을 터뜨렸다.

25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있었던 '형법 제41조 등위헌제청(사건번호 2008헌가23)'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합헌 선고가 내려지자 종교, 인권, 시민단체들은 선고가 있었던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 판결에 항의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사형폐지범종교연합, 인권단체연석회의,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등 6개 단체에서 나온 종교, 인권, 시민단체 주요인사 2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헌재의 선고를 방청한 이들은 사형제에 대한 합헌 결정이 내려지자 허탈한 표정으로 대심판정을 나섰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박진옥 팀장은 "14년동안 38개국에서 사형제를 폐지했지만 우리는 아직 사형존치국가로 남게 되었다"고 안타까움을 전하며 참석한 단체들의 인사들을 차례로 소개했다.

▲ 종교, 인권,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종교, 인권, 시민단체는 25일 헌재의 사형제 합헌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사형제 폐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오대양


"14년 전 논리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선고"

먼저 발언에 나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형제도페지소위원회 운영위원장인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 헌재 결정의 요지는 사형제도가 헌법의 본질적인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14년 전의 논리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고 이날 판결에 대해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96년의 판결문에서 헌재가 '필요악인 사형제는 문화적 수준이 올라가면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던 것을 지적하며 "이번 위헌제청에서 광주고등법원은 14년동안 변화한 한국의 문화적 위상과 사형제 폐지의 국제적 추세를 근거로 들었는데 헌재는 오늘 결정에서 이 부분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의 법적인 평가 뒤에는 각 종교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상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생명은 이념이나 법의 잣대로 침범할 수 없는 것"이라며 "5 대 4로 결정이 난 것은 위헌을 선언한 것과 다를바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대한불교 조계종 사형제도폐지위원회 위원장인 진관 스님도 "태어나지도 말았어야할 사형제도가 유지되는 것은 개탄할 일"이라며 "사형제 폐지 문제에 종교인 모두가 반성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종교계의 참여를 강조했다.

국제사회의 우려도 전해졌다. 고은태 국제 앰네스티 국제집행위원은 "국제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헌재의 합헌 결정에 국제사회는 깊은 실망감을 느낀다"며 "UN사무처장을 배출한 한국이 아시아의 인권을 선도하는 국가로 나설 수 있도록 사형제 폐지가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 대표로 참석한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헌재의 결정이 사형제도의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대단히 시대착오적이고 편협한 결정을 내린 헌재에 깊은 유감을 나타내며 사형제 폐지를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발언에 나선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공동회장 허태일 교수는 "세상의 웃음거리를 초래한 결정"이라며 헌재의 판결을 꼬집고 "따지고 들어가보면 사형제를 폐지하지 않은 국가는 중국, 일본, 일부 회교도 국가와 독재 국가 뿐인데 오늘의 결정은 그들과 궤를 같이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종교, 인권,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기자회견에 참석한 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책임회피를 규탄하고 국회의 사형폐지특별법안 통과를 요구했다. ⓒ 오대양


국회에 사형폐지특별법안 통과 요구

종교, 인권, 시민단체의 입장 발표가 끝나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기산 주교의 낭독으로 공동성명서가 선언되었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책임회피를 규탄하고 국회에 사형폐지특별법안 통과를 요구했다.

지난해 유럽평의회와 맺은 범죄인인도조약에서 한국정부가 사형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수락한 바 있는데 국내의 범죄인에 대해선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정부의 처사가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또 이미 발의되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2개의 사형폐지특별법안에 대해 언급하며 사형 폐지 입법을 통해 국회가 법의 이름 하에 자행되는 살인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후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김형태 변호사는 "오늘의 판결은 96년의 판결보다 퇴보한 것이었다"고 평가하며 "광주고등법원에서 정교한 법 논리를 준비한 데 비해 헌재 판결에는 법적인 배경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마이뉴스> 오대양 기자
10.02.25 17:30 ㅣ최종 업데이트 10.02.25 17:39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31042&CMPT_CD=P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