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국가, 1900여 명 모여 한목소리로 "사형제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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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국가, 1900여 명 모여 한목소리로 "사형제 폐지"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02.2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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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기] 제4차 사형제도 반대 세계총회를 마치며
▲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제네바 유엔본부 앞에 위치한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제4회 사형제도 반대 세계총회. ⓒ 김덕진


프랑스 사형폐지운동연합이 주최하고 사형제도폐지세계연합이 함께한 제4회 사형제도 반대 세계총회가 스위스의 후원과 칼미 레이 스위스 연방외무장관의 초청으로 지난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제네바 유엔본부 앞에 위치한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었다.

2001년 스트라스부르, 2004년 몬트리올, 2007년 파리에 이어 4번째로 개최된 이번 총회에는 전 세계 100여 개 국가, 190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함께했다. 한국에서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김희진 사무국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노건우 신부,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실의 김선영 보좌관 등이 필자와 함께 참가했다.

공식 행사 전날인 23일에 열린 아시아태평양사형폐지네트워크(ADPAN) 회의에서는 지난 2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된 사형폐지 활동을 공유했다. 14개 회원국 참가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나눔과 동시에 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연대가 중요한지, 사형폐지운동의 국제연대를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토론했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많은 사형이 집행되고 있으므로 아시아의 사형폐지운동이 전 세계의 사형폐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임을 확인했다.

아시아의 사형폐지운동 연대를 위해 풀어가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가 '언어 소통'이라는 데 모두 동의했다. 영어를 통해서 소통할 수밖에 없는데 통역이나 번역물이 준비되지 않은 회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제로 각국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국제연대의 장에 나올 수 없고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며 이를 위해 ADPAN이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각국은 25일 오후 2시(한국시각)로 예정돼 있던 한국 헌법재판소의 사형제도 위헌성 여부 선고에 많은 관심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국이 아시아의 사형폐지 운동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ADPAN은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이 있은 직후 가장 먼저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해 총회 참가자들이 공유하기도 했다.

유엔 본부에서 열린 공식 개회식에서 유럽연합(EU)의 순회 의장국인 스페인 총리 호세 루이스 자파테로는 2015년을 전 세계 사형집행이 중단되는 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며 유럽연합이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개회식에는 프랑스의 사형폐지에 큰 기여를 한 전 법무부장관이자 현 상원의원인 로베르 바댕테르를 비롯해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의 외교부 장관, 노르웨이 외교부 차관, 프랑스 인권대사, 벨기에 보건복지부 차관, 스위스 연방 외무장관 등 주로 유럽의 고위 관료들이 참석해 전 세계의 사형폐지를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전 세계 사형폐지라는 UN 목표에 눈에 띄게 가까워져

▲ 제4회 사형제도 반대 세계총회 참석자들. ⓒ 김덕진


첫째 날 오후에 열린 첫 번째 본회의에서는 사형폐지를 위해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들과 정부기구, 비정부기구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했다. 클라우디오 코든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마이리 쉐 유엔 마약범죄 담당관, 탈레브 알 사카프 아랍연맹 인권전문가위원회 보고관 등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25일 오후 두 번째 본회의에서는 전 세계적 사형폐지 운동의 과제와 기회라는 주제로 미국과 일본, 중국, 이란 등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사형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들에서 정부와 대중을 상대로 사형폐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해 사형을 폐지한 미 뉴멕시코주의 게일 체시 대변인,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쉬린 이바디, 옥스퍼드대 범죄학 교수 로저 후드 등이 발제자로 참여하였다.

필자는 '아시아의 사형집행중단 선언과 사형폐지를 위한 법적 노력'이라는 세미나에서 한국의 사형폐지 운동과 사형폐지를 위한 법률적 노력에 대해 발표하며 당일 오전 발표된 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소개했다. 5 대 4로 비록 합헌결정이 나기는 했지만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 중에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회에서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재판관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했다.

더불어 헌재의 결정이 사형제도가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며, 한국이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라는 사실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재의 합헌 결정은 오히려 한국에서 사형제도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본격적인 활동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고 한국 참가자들을 위로했던 다른 국가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폐회식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사형폐지 운동단체 대표들의 발언이 있었고 특별히 나바네템 필레이 유엔인권고등판무관,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란의 시린 에바디 변호사, 로베르 바댕테르 프랑스 상원의원, 헬렌 프리진 수녀 등이 폐회사를 했고 유엔 광장에 모든 참가자들이 모여 사형폐지를 외치는 집회를 여는 것으로 공식일정은 마무리되었다.

총회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결의문에 한국의 헌법재판소 결정에 관한 내용이 언급될 예정이었으나 이미 공식적으로 총회 참가자들에게 공유했고 사형이 즉각 집행되거나 하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 부정적인 내용을 결의문에 담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 등을 이유로 최종 결의문 내용에서는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발표자들과 참가자들이 한국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에 안타까워하며 유감을 표명한 것은 한국의 정부와 국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지난 4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한 국가의 비율이 20%에서 70%로 증가함으로써, 전 세계의 사형폐지라는 UN의 목표에 눈에 띄게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 정치인들과 시민단체 활동가의 지속적이고 결집된 노력에 힘입어 대규모 국제 사형제도 폐지 연대운동이 시작되고 발전해나가면서 사형제 폐지 추세에 추진력이 붙었다. 2001년 사형반대연합이 창설한 사형제도 반대 세계총회는 전 세계 사형제 폐지론자들의 중요한 모임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전 세계에서 사형이 완전히 폐지되는 날이 올 것

▲ 제4회 사형제도 반대 세계총회 참석자들. ⓒ 김덕진


이번 총회의 결론을 정리해 본다면 전 세계적으로 사형선고 및 처형 건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 세계 국가의 1/3이 사형제도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에서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2008년 12월 기준으로 58개국이 아직도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형집행은 미국과 일부 카리브 연안 국가를 제외하고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아랍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에 집행된 전 세계 사형집행 건수의 90%를 차지하는 5개국의 사형집행 현황을 보면 중국이 1700건(국제앰네스티 조사), 이란은 346명, 사우디아라비아가 102명, 미국이 37건, 파키스탄이 최소 36건의 사형을 집행했다. 중국의 인권단체인 두이화 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2008년 사형집행 건수는 5,0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102명 중 39명이 외국인이었다. 미국은 1994년 이후 가장 적은 건수의 사형집행이 있었던 것이며 절반에 육박하는 18건이 텍사스 주에서 이루어졌다.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정부들은 사형제도를 전적으로 국내법의 소관사항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사형제도의 활용은 국제 규범 및 법률의 근본적인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불공정한 재판 끝에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차별적인 판결이 내려지는가 하면, 비폭력적인 범죄에 대해 지나친 판결을 내리는 경우 또는 범행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고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경우들도 있다.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국가들에서 사형폐지 운동을 벌이는 이들은 심각한 정치적, 법률적, 종교적 장벽에 맞닥뜨리고 있는데 이들은 늘 소수이고 부족한 정보와 역량을 가지고 사형제도가 범죄를 억지한다고 믿는 일반 대중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안다. 그래서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000명에 가까운 각국의 활동가들이 모여 앞으로 지역, 국가, 국제적 차원에서 활용할 사형제도 폐지 전략을 개발하고 나누었으며 사형제도 폐지가 세계의 진보와 정의를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서는 대중의 인식 변화와 함께 법제화도 필요하며 국제 규약에 가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민정치적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차 선택 의정서의 비준을 통해 사형제를 궁극적으로 폐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모든 세션에 다 참석하지도 않았고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중요한 부분을 놓쳤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평가를 내리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화려하고 멋지게 준비된 외연에 비해 총회 내용의 수준이 높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사형이 집행되고 있는 국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은 좋았지만 여전히 유럽의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의 말과 눈빛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측은한 시선을 느꼈다면 과민반응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회를 통해 언젠가 전 세계에서 사형이 완전히 폐지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은 분명 생겼다. 이 힘으로 사형제도가 합헌이라고 결정한 헌법재판소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다시 사형폐지를 위한 기약 없는 길을 기꺼이 출발할 것이다. 난 대한민국 국민을 믿는다. 절대 사람을 죽이라는 결정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덧붙이는 글 | 김덕진 기자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오마이뉴스> 김덕진
10.02.27 17:24 ㅣ최종 업데이트 10.02.27 18:2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32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