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근처에서 전화 통화하면 잠재적 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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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근처에서 전화 통화하면 잠재적 범죄자"?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04.0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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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 등 "경찰, 통지도 하지 않고 '투망식' 기지국 수사했다"
경찰이 '기지국 수사'라는 명목으로 특정 시간에 한 기지국에서 잡히는 휴대전화번호를 모두 압수하거나 통신사실확인자료로 제공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대상자를 특정하지 않고 '투망식'으로 기지국 수사, 즉 특정 시간대, 특정 장소에 있던 모든 시민에 대해 수사를 해 왔다는 것.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7개 단체는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정 시간에 특정 휴대전화 기지국을 거친 전화번호를 모두 받아서 조사하는 '기지국 수사'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2009년 하반기에만 1257건의 '기지국 수사' 이뤄져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하반기에 전화번호와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제공하는 통신자료 제공 건수가 2008년에 비해 33.4퍼센트 증가했다. 수치상으로는 600만 건을 돌파했다(687만9744건). 이명박 정부 들어 통신자료의 제공이 2008년 500만 건을 돌파한 데 이어 2009년 사상최대기록을 갱신했다는 이야기다.

▲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 '기지국 수사'가 이뤄지면, 집회에 참가하지도 않았으면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전화통화를 했다는 정황 증거만으로도 연행될 가능성이 있다. ⓒ프레시안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경찰이 특정 시간에 기지국에서 잡히는 휴대전화번호를 모두 압수하거나 제공받아왔다는 사실이다. 방통위 자료에 따르면 통화 내역 등이 담겨 있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건수가 2009년 하반기 1577만8887건으로, 이는 2008년 동기 대비 67배(23만6782건)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방통위는 그간 방통위 통계에 잡히지 않았던 기지국 압수수색이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방식으로 대체된 데 따른 수치라고 밝혔다. 시민단체에서는 이를 두고 "그간 경찰이 기지국 단위로 전화번호를 제공받아 온 실태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2009년 하반기에만 1257건의 '기지국 수사'가 이뤄졌으며 한 수사 당 통상 1만2000여 개의 전화번호 수가 제공된다고 밝혔다. 기관별로 살펴보면 경찰에 제공된 전화번호 등이 1456만6747건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91.9퍼센트).

"전화통화 했다는 정황 증거만으로 연행될 세상"

인권운동사랑방 등 시민단체는 "경찰이 특정 시간에 기지국에서 잡히는 휴대전화번호를 모두 압수하거나 제공받아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며 "최소한의 대상자를 특정하지 않은 '투망식' 기지국 수사를 해온 것은 수사편의주의이자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러한 방식으로는 범죄가 일어난 주변 지역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통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대상이 되거나, 특정지역 집회 참석자들을 표적으로 삼아 휴대전화번호 및 위치정보를 입수해 왔다는 추정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무엇보다 그간 '기지국 수사'의 실태가 당사자를 비롯한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은 점은 큰 문제"라며 "경찰은 은밀히 이뤄져 온 '기지국 수사'의 실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통신비밀보호법에서 규정한 대로 기지국 수사 대상자에게는 수사 사실을 통지해야 한다"며 "하지만 경찰은 그 수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통지를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여경 활동가는 "하지만 이것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어떤 대책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장여경 활동가는 "'기지국 수사'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점은 집회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전화통화를 했다는 정황 증거만으로도 연행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수사 편의주의인 '기지국 수사'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기사입력 2010-04-05 오후 4:01:21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405145117&Section=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