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밟기, 날개꺾기... 경찰이 피의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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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밟기, 날개꺾기... 경찰이 피의자 고문"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06.1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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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고문경찰관' 5명 검찰 고발 및 수사의뢰 '파문'

 

▲ 16일, 정상영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 '고문'이 일어난 사무실의 CCTV 화면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CCTV의 각도가 벽쪽을 향하고 있다.


(사례) "2009년 12월 17일, 절도미수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된 B씨는 서울소재 A경찰서 강력팀 사무실로 연행되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강력계 팀장은 "XXX야 내가 옷을 벗는 한이 있어도 오늘 네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줄게"라며 소파에 있던 매트리스 4장을 사무실 벽 쪽에 깔았다. 그리고는 뒤쪽으로 수갑을 채워 B씨를 매트리스 위에 강제로 엎드리게 만들었다. 다른 경찰관 2명이 B씨의 팔을 잡고 또 다른 경찰관 2명이 B씨의 발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아주자, 팀장은 B의 팔을 꺾어 올렸다. 일명 '날개꺾기'다.
 
B씨는 너무 아파서 "사람 살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팀장은 "이 XX 소리 질러봐 XXX야 너 질러봐"라며 B씨의 입을 강제로 벌린 후 두루마리 휴지를 말아 넣었다. B씨가 이를 뱉어내자 팀장은 휴지를 다시 말아서 넣고, 20여 분간 '날개꺾기'를 계속했다. B씨는 결국 울면서 범행을 했다고 자백했다. 그러자 팀장은 B씨를 일으켜 세워 무릎을 꿇게 한 후, 자신은 의자에 앉아 "(연행과정에) 차에서 네가 대들어서 화가 나서 그런다"며 B씨의 허벅지를 구둣발로 밟고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다.
 
고문 후유증으로 B씨의 손목과 손가락은 퉁퉁 부어올랐다. 왼쪽 어깨가 저려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정신적 충격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어깨가 결릴 때면 지금도 그 때 생각이 나서 화도 나고 심장도 떨리고 억울한 생각이 난다."
 
"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경찰이 피의자로부터 범행사실을 자백받기 위해 구타, 머리밟기, 날개꺾기 등의 고문을 가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인권위의 조사 결과가 발표돼 파문이 예상된다. 과거 군사 독재시설에나 있었던 경찰의 고문과 가혹행위가 현재에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과 함께 사회적인 충격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인권위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 소재 A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구치소 등으로 이송된 32명을 대면 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22명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고문행위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검찰총장에게 해당 경찰관 5명을 고발조치 및 수사의뢰하고 경찰청장에게는 A경찰서에 대한 전면적인 직무감찰을 실시할 것을 권고 할 예정이다.
 
인권위 "피해자 22명으로부터 '고문' 진술 확보" 
 
올해 5월 이아무개(45)씨는 인권위에 "2010년 3월 A경찰서에서 범행을 자백하라며 입에 재갈을 물리고 스카치테이프로 얼굴을 감은 후 폭행당했다"며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이와 유사한 진정 3건을 토대로 기초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이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지목하는 고문 장소와 고문 방식이 동일한 것을 근거로 A경찰서에서 고문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2009년 8월 초에서 2010년 3월말까지 7개월간 A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구치소 등으로 이송된 32명을 상대로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들 피의자 가운데 22명이 A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강력팀 경찰관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입에 두루마리 휴지나 수건 등으로 재갈을 물린 채 머리를 밟히고, 수갑을 뒤로 채운 채 팔을 꺾어 올리는 행위인 일명 날개꺾기 등의 고문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A경찰서의 해당 강력팀은 지난해 4월에 결성되어 현재도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월 26일 절도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는 "(강력)팀장이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내 목을 끼우고는 수갑을 찬 손을 위로 당기면서 꺾었다"며 "오른팔 관절이 부러지는 소리가 나자 잠시 멈추고 살펴보더니 '부러지지 않았다'며 계속했다"고 증언했다.
 
앞서 3월 9일 체포된 피의자도 "꺾인 팔과 숨 쉴 수 없는 고통으로 그만하라는 신호를 손으로 보내도 팀장이 '아직 멀었다'고 하면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야 풀어주고는 자백을 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인권위는 피의자들의 진술 이외에도, 고문으로 팔꿈치뼈가 골절되었다는 피해자의 병원진료기록과 고문과정에서 보철해 넣은 치아가 깨진 사진 등도 확보했다. 같은 시기에 A경찰서 유치장에 함께 수용되었던 유치인들로터도 진술을 받았다.  
 
해당 경찰서, "고문행위 없었다"
 
인권위는 또한 이러한 고문행위가 CCTV 사각지대에서 이뤄졌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해당 경찰관들이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조사실 내 CCTV 사각지대나 차량 안에서 고문을 자행했다는 피의자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 사실로 밝혀질 경우 피의자 인권보호 차원에서 도입한 장비나 제도가 정작 현장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인권위측은 지난 5월 11일 촬영된 CCTV 화면을 공개하면서 "CCTV가 통상적으로는 사무실 전체가 다 보이도록 찍혀야 하는데, 고문이 일어난 사무실에서는 CCTV 각도가 천장을 향하도록 조정되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또 "이외에 다른 사무실의 CCTV는 정상적으로 되어있었다"며 "고문이 일어난 사무실의 CCTV 역시 직권조사가 진행된 5월 20일 이후인 24일 각도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문의혹을 받고 있는 A경찰서 강력팀은 "조사 중 구타나 가혹행위를 한 사실은 없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다만 "경찰봉으로 엉덩이를 1회 때리거나, 조사 과정에서 여죄를 추궁하면서 '거짓말 하지 마라'고 소리치거나, (피의자가) 수갑을 채울 때 저항하여 팔을 강제로 꺾어 수갑을 채운 사실은 있다"고 인정했다.

<오마이뉴스> 홍현진 기자
10.06.16 14:27 ㅣ최종 업데이트 10.06.16 14:2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0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