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이 해방구가 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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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이 해방구가 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06.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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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 피해자 가족 한국 방문…"증오심은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
"외동딸의 살인을 경험하면서 1년 동안 복수심에 사로잡혀 살았다. 살인자들이 사형을 받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것은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 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됐다. 사형이 해방구가 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1995년 미국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 사건으로 외동딸 줄리 매리(julie Marie)를 잃은 버드 웰시(Bud Welch) '인권을 위한 살인 피해자 가족 모임(Murder Victim's Family for Human Rights, MVFHR) 이사장은 이 부분을 힘주어 강조했다.

강호순 연쇄 살인사건, 조두순 살인 사건 등 최근 참혹한 범죄들이 한국에서 연이어 발생하면서 또 다시 한국 내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이하 MVFHR) 회원들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한국 천주교주교회의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초청으로 6월19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20일 서울 성북구 천주교 교정사목센터 '빛의 사람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살인으로 빚어지는 비극을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사랑했던 아이들, 형제, 부모님을 빼앗기고 상실로 인해 망연자실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하지만 각자의 방법과 시간 속에서 사형집행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우리의 이름으로 사형제를 존속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MVFHR은 2004년 세계인권의 날에 창립됐으며 살인 피해자 가족들과 사형수 가족들이 모여 사형제도의 폐지와 범죄피해자의 인권옹호를 위해 전 세계를 돌려 활동하고 있다. 미국 내 26개 주 의회와 유럽 의회, 러시아 의회 등에서 증언 활동을 하는 등 사형제도 폐지와 피해자 권리 옹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 곧 사형 폐지국 되리라 믿는다"

이번 한국 방문에는 버드 웰시(Bud Welch) MVFHR 이사장과 토시 카자마(Toshi Kazama) 이사, 로버트 컬리(Robert Curley) 회원 등 3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살해라는 범죄로 자신의 가족을 떠나보냈거나 자신이 죽음 직전까지 갔던 사람들이다.

버드 웰시 이사장은 한국에서 사형제 존폐 논란이 이는 것을 두고 "14년 동안 사형을 하지 않은 일은 무척 고무된 일"이라며 "우리는 곧 사형제가 폐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간 사형제가 진행되지 않았기에 입법자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쉬울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버드 웰시 이사장은 "물론 실망스럽게도 다시 사형제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하지만 사람들에게 사형제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려줄 수 있다면 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버드 웰시 이시장은 미국 뉴멕시코주를 예로 들며 "이 곳은 12년 전부터 사형제 폐지 움직임이 있었고 11년이 지나서야 결국 이뤄졌다"며 "NGO에서는 더 시간을 두고 시민들과 입법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 뉴멕시코주의 민주당 주지사는 2009년 3월 18일에 사형제 폐지를 승인했고, 뉴멕시코 주는 사형제를 폐지한 미국의 15번째 주가 되었다.

"내 딸 잃고, 나도 사형제 지지자, 하지만 사형은 안식을 주지 않았다"

물론 피해자 유가족 입장에서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버시 웰시 이사장은 "나 역시 내 딸을 잃고 난 뒤, 사형제를 지지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설명했다.

버시 웰시 이사장은 "오클라오마주 연방청사 폭발로 죽은 가족에게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난 후에 설문조사를 한 결과 85%가 사형제를 지지했다"며 "하지만 사형 집행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유가족들 중 절반이 사형제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버시 웰시 이사장은 "유가족들은 사형을 통해 자신이 안식을 받기를 원했지만 스스로도 사형 집행이 자신의 안식을 돕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며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사형이 나를 돕지 않았다'였다"고 말했다.

버시 웰시 이사장은 "나 역시도 딸이 죽은 지 5년이 넘도록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게 어려웠다"며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용서는 범죄를 저지른 자를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버시 웰시 이사장은 "가해자를 용서할 때만 내가 해방될 수 있다는 걸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깨닫게 됐다"며 "희생자 유가족들에겐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 사형이 필요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 이번 한국 방문에는 버드 웰시(Bud Welch) MVFHR 이사장과 토시 카자마(Toshi Kazama) 이사, 로버트 컬리(Robert Curley) 회원 등 3명이 함께했다. ⓒ프레시안(허환주)


"그들이 내 정신마저 죽이게 할 순 없었다"

1997년 메사추세츠에서 살해된 제프리 컬리(Jeffrey Curley)의 아버지 로버트 컬리 MVFHR 회원도 동의했다. 로버트 컬리는 아들 제프리를 10살 때 살인 사건으로 잃었다. 당시 두 남성이 제프리의 자전거를 훔친 뒤 자신들의 차에 타면 새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거짓말로 제프리를 꾀어내 살해했다.

제프리 컬리는 "아들이 그 같은 일을 겪기 전에는 사실 사형제에 대해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그런 환경에 마주하게 되니 분노, 슬픔으로 인해 내가 사형제를 지지해야만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제프리 컬리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감정과 이성을 떨어뜨려 놓고 생각을 했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모든 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상실감으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도 사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나 역시 사형제도 자체에 대해 한걸음 물러나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프리 컬리는 "결국 가해자들이 아들을 죽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쁜 일이 발생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그렇기에 그 사람들이 내 정신과 내 생각까지도 죽이게 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고 사형제 폐지 활동 배경을 설명했다.

제프리 컬리는 "아들의 죽음을 명예롭게 하는 방법은 우리 가족, 아내가 더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며 "이제는 가해자들에게 '나는 괜찮다'라고 말하고 싶다. 삶에서 고통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겠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사형수를 앞에 두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가 묻고 싶다"

토시 카자마 MVFHR 이사는 사형제로 인해 고통 받는 또 다른 '가해자'를 언급했다. 그는 사형 집행관들을 언급하며 "사형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건 사형수를 앞에 두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그가 직접 눈으로 목격한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동 사형수, 피해자 가족, 사형 집행장 등의 사진을 찍어왔다.

토시 카자마는 "교수형의 경우 5~7명이 동시에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돼 있고, 전기의자의 경우 최소 2개를 동시에 돌려야 실시될 수 있다"며 "총살형의 경우 여러 명이 사형수 한 사람을 겨냥해 쏜다"고 설명했다.

토시 카자마는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형 집행관들이 자신 혼자 죽였다는 단독 책임을 지기 싫어하기 때문"이라며 "내가 봐온 수많은 사형 집행관들은 내게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라고 가슴으로 말했다"고 밝혔다.

토시 카자마는 "사형을 집행하는 수많은 이들이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었다"며 "사형제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결국 우릴 대신해 누군가 죽여야 하는 이가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버드 웰시 이사장은 "어떤 국가도 자국의 시민을 죽일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것이 사형제도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사형수 중 130여 명이 무죄로 석방됐었다"며 "사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죄를 뒤집어 쓰고 사형을 당했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버드 웰시 이사장은 "사형은 집행되면 다시 바로 잡을 기회조차 사라지게 된다"며 "결국 사형제는 살해 유가족들의 복수 행위에 불과하고, 정치인들이 자신을 위해 사용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 ⓒ프레시안(허환주)


21일 '우리의 이름으로 죽이지 말라' 강연회

버드 웰시 이사장은 "우리가 한국에 온 이유는 사형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좀 더 알리기 위해서"라며 "만약 사람들이 사형제에 대해 안다면 이를 옹호하지 않으리라 믿는다"고 주장했다.

19일 한국을 방문한 이들은 20일 강호순 사건 피해 가족 등 한국살인피해자가족모임 '해밀'과 간담회를 가졌다. 21일에는 법무부를 방문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국가인권위원장을 면담할 예정이다.

또한 이날 저녁 7시에는 조계사 내 전통예술공연장에서 영화배우 오지혜 씨 사회로 '우리의 이름으로 죽이지 말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열 예정이다. 또한 작가 공지영 씨가 참여하는 대담회도 진행된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기사입력 2010-06-21 오전 7:02:06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620185118&Section=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