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몇몇 사람들의 리그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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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몇몇 사람들의 리그로 전락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10.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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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년 임기 마치고 떠나는 최경숙 상임위원
▲ 최경숙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 유성호


반듯하게 빗어넘긴 짧은 커트 머리에, 날카로운 듯 부드러워 보이는 최경숙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과의 인터뷰는 막힘이 없었다. 인권위의 문제점에 대해 거르지 않고 거침없이 말했다. 위원직을 수행하면서 보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최 위원이 3년의 임기를 마치고 인권위를 떠난다.

1일 인권위 13층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시원은 한데 섭섭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지난해 7월 현병철 위원장이 임명되면서 '식물인권위'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인권위에서 겪은 고초가 느껴지는 답이었다.

현병철 위원장이 접수한 '인권위'에서의 1년

지난 1년 동안 현 위원장과의 갈등도 참 많았다. 지난해 12월 용산참사에 대해 인권위가 의견을 낼지 여부를 결정하려 했던 전원위원회에서 현 위원장은 "독재라도 할 수 없습니다"라며 일방적으로 폐회를 선언했다.

위원장을 포함한 11명의 위원들이 합의해서 안건을 결정하는 전원위원회에서 발생한 일방적 폐회는 그 자신의 말마따나 '독재'와 다름없었다. 최 위원은 "설마 이럴 수 있을까 싶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 위원장의 독단은 인권위 조직을 관리하는 데에서도 드러났다. 현재 인권위의 고위직이 현 위원장의 라인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 최 위원은 "없던 조항을 만들어서 정책교육국장을 임명하고, 외부인사 영입이 일반적이었던 사무총장직을 내부 승진으로 채우는 등 위원장이 인사권을 통해 조직을 장악했다"며 "인권이 중요시 되어야 하는 인권기구로서 후퇴해도 보통 후퇴한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인권위 내부 분위기도 경직되어 갔다.

"위원장과 관련된 기사나 인권위에 호의적이지 않은 기사가 났는데 거기에 인권위 직원의 워딩이 있으면 현 위원장이 '이 말 한 사람 누구냐, 감사해라'고 했다. 알아보라는 용어를 쓰는 것과 감사하라는 것은 굉장히 어감이 다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인권위 내부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위축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인사권도, 발언도 제한... 총체적 난국에 빠진 인권위

자질을 검증받지 못한 인권위원들의 '뻘' 소리로 전원위원회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최 위원은 "안건을 논의할 때 쟁점이 되는 사안들이 있는데 위원들이 쟁점 되는 사안과 전혀 별개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하도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하니 외부에서는 전원위원회가 '봉숭아 학당'으로 불린다던데 '봉숭아 학당'은 재미라도 있지 않나"고 말했다.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최 위원은 "인권위는 현재 예쁜 짓도 안 하지만 그렇다고 미운 짓도 안 한다, 존재 자체가 희미해져 버렸다"며 "현 위원장 취임 이후 몇몇 사람들의 리그로 인권위가 전락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인권위 자체를 포기해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을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인권위 내부에서도 활발히 움직여야 하고 시민사회도 꾸준한 모니터링으로 인권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최경숙 위원과의 일문일답 전문이다.

인권위를 떠나며... "시원한데 섭섭하진 않다"

- 다음 주면 3년의 임기를 마치게 된다. 소감이 어떤가.

"시원은 한데 섭섭하진 않다.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현 위원장 취임 이후) 몇 번이나 떠나고 싶었다. 이 자리를 지키고 임기를 채우는 것에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 자리는 국민이 준 자리라는 생각에 임기를 채웠다."

- 임기 동안 이루려 했던 것, 그 중 이룬 것 혹은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장애인 교육 문제, 장애인들의 탈시설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서 본래 약속했던 인원 충원이 무산됨에 따라 정책적인 측면 보다는 진정 사건 처리 부분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통과되고 난 후 차별 진정은 폭주하는데, 일 처리할 인원은 늘지 않아 업무 과부하에 걸렸다. 그 점이 아쉽다."

- 2010년, 대한민국의 인권현실은 어떻다고 보나.

"공권력 행사자들에 대한 불처벌의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있었던 인사청문회를 봐도 주민등록법을 위반해도 관직에 다 진출한다. 일반 국민들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 문제임에도 권력 있고 힘 있고 돈 있는 이들은 처벌 받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는 법치사회, 후반엔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는데 이 둘이 뭐가 다른가. 공정의 잣대가 결국 법이 되는 것 아니겠나. 일부에게만 유리한 법이다. 민간인 사찰 같은 경우도 결국 수사는 해도 결과는 아무것도 안 나온 거 아니냐. 70~80년대 독재와 군사정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 최근 인권위의 권고들을 정부부처에서 이행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현 정권 들어서 인권위가 각 부처에 권고한 건수는 늘었는데 권고를 수용하는 수용률이 낮아졌다. 이는 대통령의 의지와 관련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위에 대한 이해가 이 대통령보다는 높았고 인권위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가에 대한 인식도 있었다. 집권자가 의지를 가지면 아래 사람들이 알아서 하는 게 있으니까 영향을 받는 거다.

이 정권은 성장과 속도와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 속에서 인권은 거추장스러운 것밖에 안 된다. 성장도 중요하고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생각하면 인간으로서 존엄을 잊고 살기 쉽기 때문에 좀 늦더라도 다른 이와 같이 가려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 균형감을 갖는 게 리더의 역할인데 이 대통령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공권력 감시가 인권위 역할, 전혀 못하고 있다"

- 현 위원장이 취임한 지난해 7월 이후 위원장과 가장 크게 갈등 겪은 사안이 뭔가.

"2009년, 용산참사 관련해서 인권위에서 의견을 내기 위해 의안을 제출했고, 과반수이상의 위원들이 의견 표명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위원장이 갑자기 '독재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회의를 폐회해버렸다. 설마 이럴 수 있을까, 아무도 상상을 못해서 모두가 침묵했다. 얼이 나간 것이다. 인권위 위원장으로서 인권 사안에 대한 전문성이나 지식 이전에 조직을 운영하는 일반적인 합리성은 가질 수 있는데. 그런 합리성조차 갖지 못하는 모습 보니까 할 말을 잃은 것이다."

- 인권위의 역할 무엇이라고 보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용산참사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공론화 시키는 것이 한 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권력에 대한 감시다. 그러나 그런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 박원순 변호사를 사찰한 사건, 공직 선거법 위헌 심판 건 등 여러 현안들에 대해 인권위는 제 목소리를 못 냈다. 최근에 불거진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서 한국노총 간부 사찰 건은 인권위가 대처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도 하지 않았다. 현 위원장이 권력과 관련된 일이니까 시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런 조치를 취한 것 같다."

- 위원회가 공권력 감시라는 역할을 수행하다보면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현 위원장은 어떤가.

"현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특별 보고하는 자리가 있었다. 본래 관례적으로 상임위원들도 함께 갔는데 우리는 배제되었다. 우리가 현 정권과 다른 소리를 많이 내니까 일부러 제외한 듯싶다. 현 위원장은 누구 앞에 가서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대신 주위의 다른 사람을 싸우게 만든다. 현 위원장이 한동안 입에 달고 산 것이 '시끄러운 일을 만들지 말자'는 거다. 인권위는 시끄러워야 하는데 정부에 밉보일까봐 그런 거다."

- 새 위원장 체제 속에서 인권위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들의 임기가 끝나 다른 위원들이 오게 되고, 다음 위원장이 임명되고 하면 상당 기간 힘들어질 거다. 인권위는 목소리를 더 못 낼 거다. 위원들의 구성이 바뀌면 이전에 경찰, 군대, 차별 소위 등에서 결정한 사안과 반대되는 결정이 나올 수 있다."

"앞날을 기대할 수 없는 인권위, 시민사회 역할 중요"

- 인권위에서 처리하려고 했던 대북방송재개 권고안 등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이명박 대통령이 현 위원장을 임명할 때 북한 인권에 대해 신경 쓰라고 했는데 현 위원장이 그 말을 아주 잘 듣더라. 북한 인권에 대해 해야 될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인식하고, 분단된 상황에서 인권위가 할 수 있는 일들의 한계에 대해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대북방송 재개안이라니. 이 안이 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었을 때엔, 이게 여기까지 올라온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봤다."

- 인권위 고위직이 현 위원장 라인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책교육국장과 사무총장 등에 대한 인사권을 위원장이 갖고 있다. 위원장이 인사권을 통해 조직을 장악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외부에서 영입되는 자리였다. 전문성을 갖고 시민사회단체와 소통하는 일을 하는 자리인데 내부 인사를 영입하게 되면 조직의 폐쇄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엔 내부 승진으로 자리가 채워졌다.

교육국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도 현재 교육 국장이 채용될 당시 기존의 채용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 그 때에 새로운 조건이 만들어졌다. 사람을 바꾸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 개인에 대한 특혜라 생각될 여지가 있다. 위원장은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서도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인권이 중요시 되는 기구로서는 후퇴해도 보통 후퇴한 것이 아니다."

- 김형완 정책과장 등 인권위를 오랫동안 지켜왔던 이들이 인권위를 그만두고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못하는 것에 대한 괴리감이 있었을 거다. 김 전 과장은 대안적인 인권위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많은 부분 동의한다. 인권위는 빛이 보이지 않는 긴 어둠의 터널 속에 있다. 빛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포자기 하기보다는 사회 권력에 대한 감시 역할을 외부에서 하겠다는 움직임이 있다.

인권위의 앞날을 기대할 수 없으니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인권위를 꾸준히 모니터링해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시민사회단체들도 포기하고 싶다고 하는데 사실 나도 그런 마음이 든다. 인권위는 예쁜 짓도 않고 그렇다고 미운 짓도 안 한다. 존재 자체가 희미해져 버렸다. 쳐다보고도 싶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린 거다."

빛이 보이지 않을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 취재를 하면서 위원들이나 직원들이 언론과의 접촉을 꺼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그런 점이 있는 것 같다. 인권위에 호의적이지 않거나 위원장과 관련된 기사가 났는데 거기에 인권위 직원의 워딩이 있으면 현 위원장이 '이 말 한 사람 누구냐, 감사해라'고 한다. 알아보라는 용어를 쓰는 것과 감사하라는 것은 굉장히 어감이 다르다. 조직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나. 인권위 내부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위축효과가 발생한다.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

- 시민사회단체들은 인권위원들의 자질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전원위에서 안건을 논의할 때 쟁점 되는 사안들이 있는데 몇몇 위원들이 쟁점 되는 사안과 전혀 별개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하니 외부에서는 봉숭아 학당이라고 불린다더라. 국회의원들이 인권위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인권위 상임위원과 위원장을 청문회를 통해 전문성과 자질을 검증하는 절차를 마련하자는 안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좀 더 철저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다른 나라에는 후보 추천위원회가 있다. 위원의 선임과 임명 절차에서 자율적인 기구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금 인권위는 위원 선임 절차가 투명하지 못하고 밀실행정을 거치다 보니까 자질 문제까지 연결되는 거다."

- 인권위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나.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조직이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몇몇 사람들의 리그로 인권위가 전락한 것 같아 우려 된다.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권위의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부에서도 움직여야 하고 시민사회도 꾸준한 모니터링으로 의견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경숙 상임위원은 누구인가

최경숙 위원은 2007년 9월 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인권위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최 위원은 여성과 장애인 인권운동을 해 온 경력을 인정 받아 상임위원으로 추천되었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여성장애인 인권운동을 시작해 부산여성장애인연대 대표를 맡았고, 2005년 여성장애인연합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9년 6월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이 임기를 4개월 남겨두고 사퇴하자 후임인 현병철 위원장이 임명되기 전까지 최 위원이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은 바 있다.


<오마이뉴스> 이주연 기자
10.10.03 14:03 ㅣ최종 업데이트 10.10.03 14:0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54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