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정부 입맛 맞추기 위해 상임위 역할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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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정부 입맛 맞추기 위해 상임위 역할 축소"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0.10.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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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 "상임위 무력화 시도" 반발... 인권위, '상임위 개정안' 유보

▲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소속 인권단체 회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앞에서 상임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보수 성향의 비상임위원들이 제출한 '인권위 운영규칙 일부 개정안'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인터넷 게시물 삭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니 심의권을 민간 기구에 이양하라고 방송통신심의원회에 권고. G20을 맞아 정부가 도입한 공항 알몸 투시기에 대해 인권침해 소지가 크니 설치를 금하라고 국토해양부에 권고. 양천경찰서에 대한 직권 조사 권고.'

올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내린 의미 있는 권고들이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투명기구'가 되었다는 평을 받는 인권위에서 위와 같은 권고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으로 사안에 대응한 상임위원회(상임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임위의 권한이 대폭 축소될 위기에 처했다. 전원위원회에 '국가인권위원회 운영규칙 일부개정안'이 상정된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본래 상임위 의결 사항으로 되어 있는 사항을 '상임위원 2인 이상 또는 위원장이 전원위의 의결을 거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경우' 안건을 전원위에 회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긴급인권현안에 대한 의견표명과 권고의 권한을 상임위에서 전원위로 이관하게 되었다.

개정안을 낸 김태훈·한태식·최윤희 비상임위원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전원위를 거치지 않고 상임위가 독자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은 '파행 결정'이기에 이를 방지하고자 이 같은 안을 냈다고 개정 근거를 들었다. 즉, 3명의 상임위원과 위원장이 합의해 권고를 내리는 상임회의의 결정 폭을 줄이고, 비상임위원 7명도 함께 논의하는 전원위로 논의의 장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25일 오후에 열린 전원위에서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안건이 상정되었으나 현병철 위원장은 "더 논의가 필요하다"며 다음 전원위 때 안건을 재상정 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휴전일 뿐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는 상황인 것이다.

"상임위 권한 축소 돼 인권위 더 후퇴할 것"

▲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 ⓒ 권우성
이러한 인권위의 움직임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개정안으로 인해 상임위의 권한이 축소되어 현재의 인권위가 더 후퇴하게 될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은' 25일 오후 '정부 꼭두각시 위해 합의제 운영 무시하는 상임회의 개악안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기호 한국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 활동가는 "개정안을 언뜻 보면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전원위는 지난 8월 23일 이후 열리지 않을 정도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고, 안을 낸 비상임위원들 역시 인권의 기본을 모르고 불성실하다고 지탄을 받아 온 이들"이라며 "그나마 인권위에서 역할을 해 온 상임위를 축소해 인권위에서 정부 입맛에 맞는 의견만 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상임위원이 2인 이상 합의할 경우 전원위로 안건을 회부할 수 있는 안'에 대한 반발이 심한 것은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온 기존의 상임위원들의 임기가 곧 끝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추천했음에도 진보성향을 보이는 문경란 위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천한 유남영 위원 자리에 보수적인 인사가 채워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로 인해 보수 성향의 위원들이 합의할 경우 상임위에서 처리할 안건들이 모두 전원위로 회부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현재도 전원위를 구성하는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 위원장을 포함한 11명 중 6명이 보수로 분류되는 상황이다. 재적위원의 과반수가 찬성할 경우 안건이 의결되는 구조인 전원위에서 진보적인 목소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가 열렸다. 이 날 전원위에서는 상임위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운영규칙 일부개정안’이 상정되었다. ⓒ 이주연


"인권위, 적절한 때 적절한 목소리 못 낼 것"

배여진 천주교인권위 활동가는 긴급인권현안에 대한 의견표명과 권고의 권한을 상임위에서 전원위로 이관하게 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이어갔다. 배 활동가는 "상임위는 1주일에 한 번씩 열리고 전원위는 2주에 한 번, 길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리고 있다"며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급박하게 권고를 내려야 할 사안의 경우 인권위가 적절한 때 적절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개정안을 상정한 위원들의 면모를 하나하나 비판했다. 명숙 활동가는 "김태훈 위원은 '정보인권의 개념을 모른다'고 말한 바 있고, 촛불집회 때 경찰의 대응이 폭력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며 "최윤희 위원은 인권위가 조직 축소될 때에도 전원위에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불성실한 위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한태식 위원은 인권위가 야간집회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내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친다고 말한 위원"이라며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를 향해 인권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의견을 내는 것이 인권위의 역할인데, 이 조차 모르면서 인권위의 파행을 운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인권위의 파행을 권한 배분의 형식 때문에 생긴 일인양 왜곡하지 말라"며 "인권위 파행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은 제대로 된 인물이 인권위원이 되어 우리사회의 인권수준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인권위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이러한 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떠한 운영개선방안도 '개악'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상임위 무력화 시도를 중단하라", "자격 없는 인권위원, 너희나 사퇴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 했다.


▲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소속 인권단체 회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앞에서 상임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보수 성향의 비상임위원들이 제출한 '인권위 운영규칙 일부 개정안'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오마이뉴스> 이주연 기자
10.10.25 18:21 ㅣ최종 업데이트 10.10.25 19:1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67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