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명 선생 별세] 고영구 변호사 “나 대신 겪은 고초…이제 어떻게 갚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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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명 선생 별세] 고영구 변호사 “나 대신 겪은 고초…이제 어떻게 갚나”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1.01.12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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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돈명 변호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12일 낮 한 조문객이 고인의 영전에 꽃을 바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빈소표정
후배 변호사들 애도 발길 이어져
“민주세력 이끌어준 맏형” 회고


12일 우리나라 ‘인권운동의 대부’ 이돈명 변호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일원동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는 그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나선 인사들을 변호했던 후배 변호사들이 가장 먼저 찾아와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과 함께 ‘인권변호사 1세대’로 불리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모태가 된 정법회 회원이었던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법정 안팎에서 싸웠던 인권의 대부이자 법조계의 대부였다”며 “이제 그의 공백을 어떻게 메우고 감당할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인과 숱한 인권변론을 함께했던 홍성우 변호사도 “이 변호사님은 민주세력과 변호사들을 이끌어준 진정한 맏형이자, 대장이셨다”고 회고했다.

민변 창립 회원인 고영구 변호사(전 국정원장)는 “그분이 나 대신 고초를 겪었다는 사실이 가슴에 내내 남았다”며 “이제는 돌아가셔서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고인이 1986년 당시 수배중이던 이부영 민통련 사무처장을 실제로 숨겨준 고 변호사 대신 구속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이들은 후배들에게 ‘기댈 언덕’이 됐던 고인의 따스한 인간미를 기렸다. 고인이 변호했던 인혁당재건위 사건 희생자 여정남씨의 조카 여상화씨는 “변론을 맡아준 이후에도 90년대 후반 인혁당 대책위원회까지 함께하면서 도움을 많이 주었다”며 “정의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늘 따스했기에 더 용감했던 분“이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이날 동아투위 회원들과 함께 빈소를 찾은 성유보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은 1988년 창간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 변호사 등 70~80년대 민주화운동 원로들이 온국민에게 창간작업을 선전해줬다”며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겨레가 나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이영일(전 한국은행국장·전 한국주택저당채권유동화 사장)·동헌(위아래구조기술사 사무소장)·사헌(미국 거주)씨와 사위 양원영(전 휘문고 교장)·서해준(전 다우케미칼 상무)씨 등이 있다.

장례는 15일 오전 9시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김정남 전 청와대 교문수석, 박정기 민족민주열사 및 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 의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조준희 변호사, 함세웅 신부 등 시민·사회단체 원로 50명이 장례위원을 맡았다.

손준현 선임기자, 박태우 기자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