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에 맞서 십자가 짊어지며 법조인의 표상 보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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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맞서 십자가 짊어지며 법조인의 표상 보여주셨습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1.01.1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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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명 선생을 기리며
▲ » “이돈명 선생님, 편히 쉬시길…” 대표적 인권운동가인 이돈명 변호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13일 오후 한 조문객이 국화꽃을 바치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14일 저녁 7시 병원 영결식장에서 ‘이돈명을 만나다-고 이돈명 변호사를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돈명 변호사님께서 평상시처럼 저녁을 잡수시고 나서 마치 이웃집 마슬이라도 가듯이 조용히 이승을 떠나셨다. 그런 평화로운 임종은 그 어른을 보내는 우리의 슬픔에 얼마쯤 위안을 주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나 언론은 그분을 ‘인권변호의 대부’라고 불렀다. 이 땅에 군사독재가 기승을 부릴 때, 고인께서는 젊은 후배 변호사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우셨다.

1970년대의 한국은 어떤 나라였는가? 나는 이 변호사님의 화갑논문집(1982년 10월 간행)에 실린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옛날에는 고문 찬성론자와 폐지론자의 싸움이었던 것이 현대에 와서는 고문 폐지론자와 거짓말쟁이의 싸움으로 변했다. 바로 이 ‘거짓말쟁이’와의 싸움이야말로 이 세계를 폭력의 지배로부터 구원하는 냉혹하고도 고통스러운, 그러면서도 지극히 절실한 인간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뒤, 전두환 군사정권의 광기가 계속 설칠 때 어이없게도 구속 피고인이 된 이 변호사님께서는 1심 법정의 최후진술에서 역시 법의 악용과 고문 등 국가폭력을 질타하셨다. 그러면서 “제가 억울하게 국가보안법을 적용받는 마지막 피고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라고 매듭을 지으셨다.

그런데 그 후 4반세기가 지나면서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제법 확립되는 듯도 했는데, 지금 다시 왜곡된 법치주의, 국가폭력 그리고 거짓말과의 싸움이 절실해지고 말았으니, 이 변호사님의 수난과 외침이 다시금 머릿속에 울려온다.

세상에 고생과 희생이 따르지 않는 싸움이 어디 있겠는가? 여기엔 누군가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 이 변호사님이 바로 사서 하는 고생에 앞장선 우리 법조계의 대선배이자, 우리 시대의 선구자이셨다.

양심수의 변호를 넘어 진범(?)을 살리고자 스스로 피고인이 되어 수감생활을 자청하셨다. 세상에 이런 변호사를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고인께서 사서 짊어진 고난을 보며 ‘대속’(代贖)이란 말이 떠올랐다. 남이 겪어야 할 고통을 대신 떠안고 형벌을 감수하였으니, 이런 고행이 바로 십자가의 정신으로 통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훗날 이 변호사님의 그 ‘허위자백’의 진실이 알려지면서 세상은 그를 사제(司祭)처럼 존경하게 된 것이다.

고인께서는 6월 민주항쟁 등 민주화운동에서 법조계와 재야세력을 이끌어주었고, 그 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어른으로서 힘을 실어주셨다. 나는 고인을 모시고 집회와 농성을 했고 거리의 시위에도 나갔다. 그분이 조선대 총장과 상지대 이사장을 맡은 것도 교육 민주화의 일념에서 나온 전신이었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의 소임 또한 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고인의 헌신을 잘 보여주었다.

지난 초겨울 어느 날,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로 모처럼 문안을 드리고자 찾아뵈었을 때도 “동생, 이렇게 찾아와주어서 고맙네. 자네가 보내준 연하장 저기 붙여놓고 보는데, 글씨가 힘이 있어서 좋아.” 이런 말씀으로 형님다운 정을 보여주셨다. 그렇다. 나를 ‘동생’이라며, ‘자네’라고 불러줄 형님은 이제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차가운 겨울 날씨가 연일 매섭다. 역주행하는 이 세상에 웬 재앙은 그리도 줄을 잇는가?

변호사님, 우리 모두 사랑하는 이 변호사님, 저 하늘나라에서도 이 위태로운 세상 굽어살펴주시고, 저희 후학들을 깨우치고 이끌어주시옵소서.


<한겨레> 한승헌/변호사
기사등록 : 2011-01-13 오후 10:01:02 기사수정 : 2011-01-14 오전 11:38:46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587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