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도록 몸에서 향내 떠나지 않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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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도록 몸에서 향내 떠나지 않아, 무섭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1.03.1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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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잇따른 죽음'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해 인권·법률단체 기자회견 열어
▲ 10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인권·법률단체가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홍현진


"1년이 넘도록 몸에서 향내가 떠나지 않는다. 죽음의 향내가 떠나지 않는다. 언제까지 기자회견을 해야 하나. 지긋지긋하다. 무섭다. 이제는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다."

10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인권·법률단체 기자회견.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준비한 경과를 못 읽을 것 같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내 이 기획실장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근조 리본 달기 싫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

▲ 10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인권·법률단체 기자회견에서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이 눈물을 흘리며 발언하고 있다. ⓒ 홍현진
"많은 분들, 쌍용차 사태에 대해 기자회견을 함께해 주신다. 고맙다. 유가족 도와달라고 4000만 원이 모였다. 하지만 국가는, 지방정부는, 쌍용차 사측은 유가족에게 10원 한 장 내밀지 않았다. 왜 일반 시민의 조의금으로 유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나.

이제는 멈춰야 한다. 정말 멈춰야 한다. 많은 분들이 연대해 주시는데 쌍용차 노동자들은 없다. 20명도 못 모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기자회견도 못 온다. (조합원들이) 막노동하면서 미안해한다. 미안하다고 먹고살기 위해 일하러 나간다고.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쌍용차) 불매운동도 하고 싶다. 그런데 돌봐야 할 사람이 많다. 근조 리본도 달기 싫다. 먼저 사람을 살려야 한다. 노동조합 간부로서 목숨 내놓고 더 이상의 죽음을 막겠다. 사람이 없다. 도와 달라."

'절규'에 가까운 이창근 기획실장의 발언에 기자회견에 참석한 인권·법률단체 관계자들도, 쌍용차 노동자들도 그리고 취재를 하던 기자들도 모두 숙연해졌다. 명숙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눈물을 훔쳤다.

2009년 8월, 77일간의 공장점거파업 이후 공장문을 나서던 날,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몸들이 살아있음'이 우리의 승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업 종결 이후 사망한 쌍용차 노동자·가족은 모두 14명. 지난달 말 무급휴직자였던 임무창씨는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했고, 희망퇴직자였던 조아무개씨는 연탄불을 피워 자살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미류 활동가는 "사람답게 사는 것은 고사하고 사람답게 죽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탄식했다.

이어 그는 "이는 쌍용차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는커녕 사람의 권리마저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라며 "이런 사태를 낳고, 악화시키고 있는 자본과 이명박 정부가 책임질 때까지 규탄하고 항의하고 촉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애림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법학박사는 '공장점거파업' 당시 조합원 교육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한 조합원이 저한테 물었다. '파업으로 인해 사측이 나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내 재산을 빼앗아갈 수 있느냐'고. 제가 노동법을 전공했다. 그래서 그 노동자에게 '부당한 해고에 맞선 쌍용차 노조의 파업은 정당하다, 설사 사측이 이를 불법으로 몰아간다고 하더라도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재산을 빼앗는 일은 없을 거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 때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윤 박사는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달리 자본은, 정부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개탄했다.

"도대체 정부는 언제까지 수수방관 할 것인가" 

▲ 10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인권·법률단체 기자회견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이 '칼'을 차고 있다. ⓒ 홍현진


이날 기자회견 장소 한 편에서 쌍용차 노동자 4명은 '죄인'이 되어 '칼'을 찼다. 널빤지로 만든 칼에 붙어있는 죄목은 '정규직 아닌 죄', '열심히 일한 죄', '약속을 믿은 죄', '의리를 지킨 죄'였다.

박래군 인권단체 '사람' 상임이사는 "왜 노동자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나, 죽음의 길을 선택해야 하나, 이들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며 "강제로 쫓아냈으면 복직약속을 지켜야지, 회사는 손해배상을 하고 가압류를 해서 못살게 만들고 있다"고 사측을 규탄했다.

▲ 10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인권·법률단체 기자회견에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 홍현진
이어 박 이사는 "도대체 정부는 언제까지 수수방관할 것인가"라며 "사람의 생명이 더 이상 쓰러지지 않도록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고 강조했다.

이어서 마이크를 든 강문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은 "변호사인 내가 왜 이런 말을 이 자리에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외쳤다.

"쌍용차는 노사합의를 이행하라. 쌍용차는 약속을 지켜라!"

쌍용차 사측은 지난 2009년 이른바 '8.6합의' 당시 '무급휴직자에 대한 1년 경과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강 변호사는 "약속을 지키는 것은 상식과 도의적인 문제 아닌가"라며 "그 약속이 밀실에서 말로만 한 것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책임 있는 사람들이 서면으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하긴, 대통령이 대중들 앞에서 했던 선거공약을 표 얻기 위해 했다고 뒤집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겠나"라고 말하면서도 "노동자들이 양보해 어렵게 얻어낸 합의안인 만큼 이들이 더 큰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계속해서 이행하지 않는다면 손해배상, 형사고발과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인권·법률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 정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 사과하고 사태해결에 나설 것 ▲ 8.6 합의 이행과 희생자 구제를 위한 대화에 나설 것 ▲ 노동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손해배상·가압류를 즉각 철회할 것 등을 요구했다.


<오마이뉴스> 홍현진 기자
11.03.10 17:32 ㅣ최종 업데이트 11.03.10 17:3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35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