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인권] 스카이 공동행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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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와 인권] 스카이 공동행동을 위하여.
  • 이창근 (쌍용자동차 노조 기획실장)
  • 승인 2012.07.2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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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카이공동행동 출범 (왼쪽부터) 김정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 전재숙 용산참사 유족 · 강동균 강정마을회 회장

사진_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야기 하나.

평택에서 부산을 향해 9일 동안 410km를 걸은 적이 있다. 쌍용차 해고자를 포함해 해고 사업장 동지들과 뜻과 마음을 모아준 분들과 함께 말이다. 이른바 폭풍질주 ‘소금꽃 찾아 천리길’이었다. 1차 희망버스가 끝나기 무섭게 한진 지회는(지회장 채길용) 납득하기 어려운 노사합의를 일사천리로 해치운다. 크레인 위 김진숙 지도위원이 여전히 투쟁을 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9일 간 걸으면서 매일 언론에 기고 글 하나씩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6일차에 이르러 중단했다. 생각이 생각을 밀고 나오는 과잉생각에 더는 글을 쓸 수 없었다. 함께 걷는 쉰 살이 넘은 형들을 보면서 ‘과연 이 길이 이 형들을 구원하는 길일까.’라는 의문이 부산에 다가갈수록 비수처럼 내 목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신창이가 된 발은 아무런 통증도 고통도 없었다. 함께 걷는 이들의 기구한 사정을 알고 곱씹으면서 오로지 눈물만 흘렸기 때문이다. 부산역에 도착한 이후 본무대에서 사회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걸으면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무엇입니까?” 나는 답했다. “많은 음식들이 맛있었지만 특히 ‘눈물’이 최고로 맛있었다”고. 그랬다. 난 걸으면서 눈물이 가장 나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격려하는 것을 체험했다.

 

2011년 희망버스는 우연히 만들어졌다. 그러나 응축된 에너지는 늘 우리 주변에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라간 크레인 85호는 어떤 곳인가.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만에 자결한 장소이자 한진 정리해고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런 85호 크레인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을 시작했다. 쉽지 않을뿐더러 비극적 결말이 예견되기도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비극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 즉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에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커피숍에서 농담처럼 시작한 희망버스가 이처럼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로 발전하리라고는 솔직히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진심은 통할 수 있다는 믿음만큼은 확고했다. 자발적 참여 의지는 공간을 열면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안이 갖고 있는 사회, 정치 경제적 파급력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공감할 때 비로소 폭발한 다는 것을 희망버스는 일깨워줬다. 재벌기업이 벌이는 일상적 폭력과 경제적 이익에 대한 폭압적 수탈이 도를 넘었다는 시민들의 분노가 희망버스를 밀고 간 기름이며 기폭제였다.

 

‘노동 디아스포라’로 이어지는 행동들.

희망버스는 처음부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해’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거부감이 크진 않았다. 슬로건이 사회 현상과 상태에 정확히 조응해서일까? 오히려 공감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평화의 섬 제주도 강정마을의 구럼비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발파로 굵은 눈물을 떨궜고, 용산학살의 책임자는 총선을 채비하는 기민함으로 유족은 물론 구속자들을 기만했다. 학생들은 반값 등록금을 위해 아우성 쳤고, 농민들은 쌀값으로 몸살을 넘어 생존기반이 붕괴됐다. 비정규직 980만은 숫자로 보면 다수이며 주류지만 경제적, 정치적 지위로 보면 여전히 소수이며 비주류 하청 인생이 아니던가. 희망버스가 달려 가고자 했던 방향은 바로 ‘노동 디아스포라’였다. 쫒겨나고 탄압받고, 사람대접 못받는 비루한 인생을 선택지 없이 받아 들기만 해야 했던 우리네 삶에 새로운 근거지와 기반을 조성하고 싶었다. 노동 현안 문제가 중심 의제화 되긴 오랜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렇다. 너무 늦은 건 아닌가?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핵심 문제임에도 아직까지 중심의제화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의식의 문제라고 잘라서 말한다면 오히려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다. 서로의 이해‘력’과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이며 지금부터라도 함께 하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민과 노동이 서로에게 긍정의 신호와 자극을 줬다면 그것으로 일차는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시민이 노동자며 노동자가 시민이다. 이것을 우리는 노동 디아스포라인 희망버스를 통해 알게 되고 인식하게 되었다.

 

2012년 노동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이 짓밟히는 시대, 폭력과 배제가 평화유지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3년간의 끈질긴 싸움에도 오히려 정리해고의 둑이 터졌고, 노동자들은 수몰당하고 있다. 온전한 하나의 인간세계가 22개나 사라졌지만, 정권과 자본의 태도는 여전히 탄압 일변도다. 회계조작에 이은 강제적 정리해고는 인간 존엄을 말살하려 지금도 쉴 새 없이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정리해고에 의한 탄압이 어찌 쌍용자동차 노동자뿐이겠는가. 이명박 정부의 기업 프랜들리 정책은 정리해고 괴물의 숙주가 되어 전국을 정리해고로 감염시키고 전염케 한다. 정리해고는 노동과의 강제적 분리로 삶 자체를 파괴하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98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향한 절규가 이제 거대한 분노가 되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음에도 정규직화는 커녕, 수배와 구속, 그리고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재벌의 통제받지 않는 횡포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법원의 판결마저 재벌에 의해 조롱받는 사회에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미래는 암담한 먹구름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회의 모순이 재벌구조의 하수구를 통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지만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 2012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강정마을에서 강행되는 해군기지 공사는 그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강정주민 1,900여 명 중 단 87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해군기지 입지선정이 결정되었으며, 환경영향평가는 부실하게 진행됐고 절대보전지역 해제는 제주도의회에서 날치기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강정마을 공동체는 파괴되고 마을 주민 대부분이 무더기 연행과 과도한 벌금 등으로 전과자가 되었다. 이는 국가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공동체가 파괴되고 평화가 유린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4대강으로 유실되는 평화와, 밀양송전탑으로 감전되는 평화는 또 얼마인가. 정부가 주장하는 평화는 결국 국가에 의한 폭력과 불법 그리고 수탈에 다름 아니다. 용산참사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진압을 대통령이 승인했다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증언으로 볼 때, 용산 살인진압도 대통령의 승인 없이 불가능했을 것임이 더욱 분명해 지고 있다. 철거민과 노동자를 국민으로 보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본질이 낱낱이 드러난 사건인 것이다. ‘생지옥’과 같았다는 끔찍한 참사 생존자인 철거민 여덟 명은, 3년째 감옥에 갇힌 채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다.

 

쌍용과 용산과 강정이 공동투쟁을 만들어 간다. 이른바 SKY공동행동이 그것이다.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짓밟히는 평화와 쫓겨나는 이 땅 모든 민중들과 함께 진저리나는 자본 독주의 시대를 끝장내는 투쟁을 만들어 갈 것이다. 지난 7월 9일에서 14일까지 전국공동순회투쟁단과 함께 가볍게 몸을 풀었다. 또한 다가오는 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강정평화대행진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 힘을 바탕으로 우리는 10월 13일 서울에서 탄압받고, 쫓겨나고, 짓눌린 사람들의 힘과 의지를 분출할 것이다. 마음을 잇고 혼신의 힘을 다해 지키고 싸울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유체적 에너지를 믿는다.

노동자가 하늘이다! 구럼비가 하늘이다! 쫓겨나는 사람이 하늘이다!


※ ‘스카이공동행동’은 쌍용, 강정, 용산의 영어 이니셜(S, K, Y)에

고귀한 존재임을 뜻하는 ‘하늘’의 의미를 더해 이름을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