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이제 함께 살자, 함께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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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제 함께 살자, 함께 웃자
  • 김덕진 (함께살자 농성촌 사무국장, 천주교인권위원회
  • 승인 2013.02.28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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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어쩌면 이토록 길고 추운지 모르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아스팔트길을 순례나 행진이라고 이름 붙이고 걸어내거나, 침낭을 끌어올려 얼굴까지 덮어도 코끝이 얼어버릴 것 같은 천막농성장에서 잠을 자는 일이 처음이 아닌데도 이번 겨울은 유난히 지치고 힘들다.

혹독한 겨울, 그들의 안부를 묻다
추우면 따뜻한 차를 마시고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끼니를 챙기며 온기가 있는 잠자리에서 잠을 자는 우리의 겨울도 이러한데, 울산 현대자동차 철탑위의 최병승과 천의봉, 평택 쌍용자동차 송전탑 위의 한상균과 문기주, 복기성, 아산 유성기업 다리위의 홍종인, 혜화동성당 종탑위의 재능교육 여민희와 오수영의 이 겨울은 어떠할까?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참담하고 고독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차례로 세상을 떠난 한진중공업 최강서, 현대중공업 이운남, 민권연대 최경남, 한국외대지부 이호일과 이기연, 기아자동차 윤주형의 가족들은 이 겨울의 끝자락을 어찌 보내고 있을까?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공사를 잠시라도 중단시키겠다는 의지 하나로 공사장 정문을 맨몸으로 막아서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 수백번의 절을 하다가 번번히 경찰에 밀려나 고착을 당하면서도 레미콘 차 앞에서 평화의 춤을 추고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강정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의 이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국가 공권력의 부당하고 무리한 집행으로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철거민들이 반갑고 고마워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가족의 빈자리를 확인했을 용산참사 다섯 유족들에게 이 겨울은 얼마나 쓸쓸할까?
수십년 살아온 집 앞 마당에 들어서려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밀양에서, 청도에서 매일아침 공사장 바리케이트 앞으로 출근하는 할매, 할배들께 이 겨울은 얼마나 야속하고 지긋지긋할까?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에게 이 겨울은 한파가 아니라 절망에 온몸이 얼어붙고, 하늘에서 눈이 아니라 눈물이 내리는 시절이다. 이들과 한걸음 거리에서 ‘함께살자 농성촌’ 천막을 머리에 이고 살고있는 나는, 이 서럽고 참담한 겨울의 증인이 되기 위해 온몸의 오감을 곤두세운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지난 10월 초, 제주 강정을 출발하여 전국 40개 도시, 35개 투쟁현장을 돌아 2012 생명평화대행진을 마무리 하고 서울 대한문 쌍용자동차 희생자들 분향소 옆에 농성천막을 치고 첫날밤을 보내던 날 밤을 잊을 수가 없다. 전국 방방골골에서 우리가 마주했던 그 아픔과 상처들이 생생히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낭 속에서도 온몸이 덜덜 떨리던 초겨울 그 밤에 뜨거운 눈물을 잠들 때까지 흘려야했다.

자신의 일터에서 해고되어 쫓겨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 수백 일씩 천막하나에 의지하며 생을 걸고 농성하는 투쟁현장이 얼마나 많던지, 재개발, 골프장, 송전탑, 댐, 4대강사업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던지. 울지 않은 날이 없었고 분노하지 않은 밤이 없었다. 그 시간들과 그 장면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박근혜 대통령시대, 다시 살아가기 위하여
이렇게 전국이 신음하며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 5년이 지긋지긋하게 힘들었다고 하면서도, ‘박근혜’를 선택한 국민의 뜻을 나는 도통 이해하기 힘들다. 부자들은 부자들을 위해 살기 마련이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지난 수십 년의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뼈아픈 반복을 다시 선택한 국민의 뜻은 정말 옳은 것일까?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청구한 수백억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길은 여전히 멀고 먼 이야기이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해군기지 공사는 24시간 강행되고 1인당 수백, 수천 만원에 달하는 벌금은 평화활동가들의 삶을 옥죈다. 대도시 사람들이 흥청망청 써버릴 전기를 생산하고 운반하기 위해 수백 년 이루어 온 경상북도 산골 마을공동체는 파괴되고 주민들은 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나면서도 전기가 아깝다며 불을 끈다.

지난 1월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을 찾은 귀한 손님들을 잊을 수가 없다. 초고압 송전탑 건설 저지 싸움을 8년째 하고 계시는 밀양의 할매들, 할배들이 밀양을 출발한 희망버스를 타고 울산 현재자동차 비정규직 철탑 농성장, 한진중공업 최강서의 빈소,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 평택 쌍용자동차 송전탑 농성장, 아산 유성기업 다리위 농성장을 순례하는 일정 중 대한문을 찾아오셨다.

진보니, 운동권이니 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가장 절박하고 자신의 사안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18대 대통령 선거 결과 때문에 소위 말하는 ‘멘붕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이 할매와 할배들은 어디에서 이런 연대를 배우셨을까? 누구도 실천 하지 못한 ‘연대’를 삶으로 보여주신 이 분들이 예수고, 부처고, 공자다. 여든이 넘은 할매가 송전탑에 올라간, 막내아들보다 어린 노동자 동지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삭막하고 황량한 겨울, 그래도 이런 마음들이 있으니 우리가 이나마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높은 곳이었는지 몰랐다. 그렇게 추운 곳이었는지 몰랐다. 마누라 새끼 떼놓고 철탑을 기어오른 새벽녘 얼마나 외로웠느냐, 얼마나 까마득했느냐. 우리가 산속에서 용역놈들에게 개처럼 끌려다닐 때 너희도 공장밖으로 쫓겨나 길거리를 헤매고, 피붙이 같은 동료들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던 너희의 그 서러운 청춘을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시골 할매들까지 데모질에 나서야 하는, 사람이 사람대접 못 받는 세상. 국민이 국민대접 못 받는 나라. 그래도 바꿔보겠다고,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고 우리보다 먼저 나선 너희들이 아니냐, 우리보다 더 오래 버텨온 너희들이 아니냐, 그러니 살아서, 살아서 싸우자. 대통령이 누가 됐든, 어떤 비바람이 몰아치든 질기게 살아서 싸우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믿는다. 그러니 너희도 너희들을 믿어라. 결국엔 우리가 이긴다. 아들아, 힘내자! 우리 할매들은 끄떡없다!

-밀양송전탑 반대투쟁 할매들이 철탑 위 노동자들에게 씀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열렸지만 쌍용 ․ 강정 ․ 용산 ․ 탈핵의 연대인 SKYN_ACT와 함께살자 농성촌은 우리들의 절박한 요구들이 해결될 때까지 연대하며 자리를 지킬 것이다. 생명평화대행진을 하며 전국을 순례하고, 쫓겨나고 아파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짐했던 우리의 결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가 맞닿아 있고, 서로의 아픔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제발 이제 함께 살자. 함께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