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한나라당은 노무현에 대한 탄핵으로 대선불복을 과시했다. 5년 전에는 시민들이 촛불로써 이명박에게 대선불복 의사를 보여줬다. 하여 박근혜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대선불복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실로 궁금하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집단지성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될지 어떤 형태로 드러날지 기대된다.
한편, 대선 이후 야권진영의 패배를 두고서 그동안 수많은 평가와 진단이 쏟아져 나왔는데, 진보와 보수의 대결구도로 해석하는 평가부터 세대 간 가치와 이념의 충돌로 이해하고 진단하는 방식까지 다양한 말글들이 나왔다. 가진 것 없고 배움이 적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박근혜를 찍은 것을 두고 어떤 이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 게 아니냐고 비아냥댔다. 어떤 평가를 내리든 박근혜의 당선은 우리에게 비극이고 불행한 일이다. 그 비극의 씨앗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지층처럼 두텁게 쌓인 기득권층의 생존과 지배본능이 오늘에까지 이어 오다가 다시 싹을 틔운 것에 불과하다.
이 싹은 식민지 시대에 뒤이은 분단과 전쟁 그리고 반공을 앞세운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불행한 역사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후환이었다. 우리 역사는 실로 험난했지만 제대로 마음먹고, 일제식민지 친일청산부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의문사 사건을 비롯한 조작의혹사건에 대해 그 실체를 온전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사건의 전모를 밝히지 못했고, 가해자와 가해그룹을 특정해서 처벌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후환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두 개의 판결문을 흔들며 인혁당 관련 피해자들을 능멸했고, 정수장학회를 빼앗긴 김지태 회장을 두고 친일파라며 유족들을 조롱했다. 과거는 역사에 맡기자고 하면서 끊임없이 아버지 박정희 시대를 정당화했고, 해괴한 말장난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가해자와 가해자 집단이 사과와 반성은 커녕 피해자들을 또다시 욕보이며 고통과 상처를 주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죄악이 없다.
해괴한 말장난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들을 또다시 욕보이며 상처를 주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죄악이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 가해자들로부터 일방적인 공격과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박근혜는 인혁당과 관련해서 억울하게 죽은 분들의 사건을 두고 가치 없는 일로 자신에 대한 모함이라고 강변했었다. 재심을 통하여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도 사법부 판결을 애써 부정하면서 유족들을 두 번 죽였다. 인간의 생명이 무고하게 짓밟힌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 대통합과 화해 운운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가슴에 천불이 난 유족들은 노구를 이끌고 새누리당을 찾아가 박근혜에게“당신의 몸에도 인간의 뜨거운 피가 흐르는가”라고 물었다. 아직까지 답이 없다.
우리가 과거청산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부끄러운 역사를 후대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박정희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아비를 빼앗긴 유족들이 거리에서 울부짖는 것이다. 지난 10년 간 국가기관에 의한 과거청산 활동이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량으로 완전하게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면 진실도, 정의도 모두 가해자들에게 빼앗긴다는 사실은 가장 뼈아픈 교훈이다.
우리의 역량으로 완전하게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면 진실도, 정의도 모두 가해자들에게 빼앗긴다는 것이 가장 뼈아프다
수많은 오류와 실패를 딛고도 다시 과거청산운동을 지속시켜야 하는 이유는 잘못된 과거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고, 죄를 지은 자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들과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한 그들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은 이루어져야만 한다.
한 사회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내용에 따라 과거청산 문제는 그‘질’과‘격’이 다르다. 또한 정권의 성격이나 사회의 발전 정도에 따라서도 과거청산 문제는 그 ‘결’이 다를 것이다. 정치질서가 바뀌면 바뀐 대로 우리는 과거청산의 역사적 흐름을 만들고, 힘을 모으고, 세력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역사와 정의를 부정하는 세력과 맞서야 한다.
어김없이 4월이 다가온다. 해마다 4월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여덟 분 -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김용원, 이수병, 여정남 - 임들이 떠나신 서대문 형무소에는 짙은 황사바람이 휘감는데, 올해는 황사바람 조차도 일찍 찾아들었다.
산 자들이여, 돌아가신 임들을 편안케 하라.
저작권자 © 천주교인권위원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