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앞에서 집회의 자유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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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앞에서 집회의 자유를 말하다.
  • 김종보 (민변 상근변호사)
  • 승인 2013.08.2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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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대한 이미지

 ‘집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통 어떠신가요? 시끄럽고 불편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분이 많이 계실 겁니다. 교통이 막히고, 경찰과 시민들이 다툼을 벌이고, 누군가는 마이크를 들고 떠들고, 현수막에는 뭐를 어떻게 하라는 주장이 가득하고, 뭐 이런 이미지들이지요.

그런데 ‘집회’는 말 그대로 ‘사람이 모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모습’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신가요? 미사를 드리거나,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즐기거나, 체육대회를 하거나 뭐 이런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으신가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고 써있습니다. 누구나 종교행사를 위해 모일 수 있고, 문화 공연을 즐기기 위해 모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국가가 예배를 드리려는 사람들에게 모이지 말라고 명령한다면 대단히 어색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아니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경찰이 예배도 못 드리게 하나?” 뭐 이런 생각말이죠.

이처럼 ‘보통 떠오르는 집회’와 ‘종교행사나 문화공연을 위해 모이는 것’에는 이미지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떠오르는 집회’는 좀 규율되도 되고, ‘종교행사나 문화공연을 위해 모이는 것’은 규율되면 안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집회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조금 길고 지루한 문체이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집회의 자유는 개인의 인격발현의 요소이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이중적 헌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우리 헌법질서 내에서 집회의 자유도 다른 모든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자기결정과 인격발현에 기여하는 기본권이다. 뿐만 아니라, 집회를 통하여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집단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여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집회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근본요소에 속한다. (헌재 2003. 10. 30. 2000헌바67 등)”

즉, 헌법재판소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시끄럽고 불편한 ‘집회’를 개인의 인격 형성과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근본적인 기본권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집회가 중요한 것이었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절대적 집회 금지 장소가 되어버린 대한문 화단 앞

 

대한문 앞에는 매일 수문장 교대식이 열리고 많은 관광객들이 구경을 합니다. 덕수궁은 좋은 휴식 장소이자 많은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오는 곳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한문 앞은 2008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가 벌어진 후 위법한 정리해고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정리해고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분들과 병으로 세상을 떠나신 분들을 추모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는 2013. 4. 4. 서울중구청에 의해 강제철거를 당하고, 지금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는 화단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화단은 환경미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분향소가 설치되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관련된 집회․시위를 막기 위해’ 설치된 것입니다. 이는 문화재청이 중구청에 보낸 공문을 보면 잘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더해 경찰들은 화단 주변을 24시간 동안 경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화단 앞 공간에다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경찰병력을 배치하여 인도의 폭을 좁혀 놓고 아무도 다니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집회를 하려고 집회신고를 하면 금지통고처분을 내리고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합니다. 대한문 화단 앞은 절대통행금지구역, 절대집회금지구역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시 헌법을 보겠습니다. 헌법 제21조 제2항은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집회를 하겠다고 했을 때 이를 국가기관이 허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대한문 화단 앞 집회를 철저히 금지하였습니다. 헌법은 경찰에 의해 무시되었습니다.

 

민변의 대한문 화단 앞 집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경찰에 의해 집회의 자유가 처절하게 짓밟히고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화단 설치 규탄 및 위법한 경찰권 남용으로 집회 금지 구역이 되어 버린 화단 앞과 옆 장소에서의 집회의 자유를 확인하기 위한 집회」를 「덕수궁 매표소가 있는 돌담이 꺾이는 부분으로부터 광화문 방향으로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원형 엘리베이터 지상탑승구까지의 인도 중 화단 경계로부터 폭 1.5M 부분. 단, 대한문 정문 쪽은 폭 3M(별지도면 참조)」에서 개최한다는 내용의 집회신고서를 2013. 7. 11. 제출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화단 앞에서 집회를 하면 교통이 혼잡해 지니 화단 앞에서 하지 말고 광장에 가서 하라’는 내용의 제한통고처분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경찰 말대로 대한문 광장에서 해도 되는 것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집회장소가 바로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대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2000헌바67, 83(병합) 전원재판부 결정).”라고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즉,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집회 장소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국민들이 결정한 집회 장소에 대하여 이래라저래라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민변은 경찰의 제한통고처분에 대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결국 7. 22. 경찰의 제한통고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서울행정법원 2013. 7. 22. 선고 2013아2286 집행정지결정)을 받아내었습니다. 경찰이 집회 장소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위법하므로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법원의 결정에 의해 경찰은 대한문 화단 앞에서 집회를 하려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법원의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질서유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대한문 화단 앞에서 철수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7. 24. 그 좁은 장소에 경찰 병력을 2열로 도열시켜 집회장소의 2/3를 차지하고 있었고, 남대문경찰서 최성영 경비교통과장은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나머지 1/3에서 집회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억지주장만 되풀이 하면서 경찰 병력을 주둔시켰습니다. 이러한 경찰의 태도는 집회의 자유 자체를 무시하는 행태였고, 집회 장소 내에 경찰 병력을 투입시키는 것 자체가 집회를 감시하고 통제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민변 변호사들은 이러한 경찰의 행태에 거세게 항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경찰의 이러한 행태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에 따르도록 긴급구제조치를 하였습니다(국가인권위원회 2013. 7. 25. 13긴급0001400 집회 자유침해에 대한 긴급구제 결정).

그래도 경찰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법원의 결정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경찰은 그 다음날인 7. 25.에도 경찰 병력을 집회장소에 투입시키고, 인도위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여 시민들의 출입을 가로 막았으며, 신고된 장소를 조금만 벗어나거나 폴리스라인 밖으로 현수막을 설치하기만 해도 불법집회라며 방송차량에서 떠들었습니다.

경찰은 집시법 제3조에 규정된 집회방해죄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에 항의하는 민변 변호사들을 강제로 체포하여 연행하였습니다. 심지어 체포된 권영국 변호사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7. 28. 권영국 변호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결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고 구속 사유로 제출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은 기각되었습니다.

 

ⓒ 천주교인권위원회

 

대한문 화단 앞 집회의 자유 회복을 위한 집회는 계속된다.

 

평소 사람들이 통행하는 인도 위에 난데 없이 화단을 설치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오로지 분향소가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된 대한문 앞 화단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어떻게든 국민의 입을 봉쇄하면 시간이 지나고 점점 잊혀져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에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공약을 했으나, 아직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집회의 자유는 시끄럽고 불편하지만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집회에서 나오는 주장이 어떠한 것이든 그것은 국민의 의견이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존중받을 때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의견 가운데 서로 대화하고 논의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헌법전문에 기재된 우리의 역사도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집회가 필요하다는 점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헌법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일제에 대항하였던 3․1운동과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 역시 ‘집회’를 통해 이루어졌던 점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국가기관에 의해 집회의 자유가 봉쇄되고 있는 대한문 화단 앞에는 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 자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화단을 지키고 있는 경찰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민변은 8월에도 집회를 개최하면서 집회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집회장소에 들어와 있는 경찰들에게 수없이 철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문 화단 앞을 지키는 경찰들이 철수할 때에 집회의 자유는 회복될 것이며, 그 때까지 집회의 자유 회복을 위한 집회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