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평화를 기다리며
상태바
시리아의 평화를 기다리며
  • 수영 (경계를 넘어 활동가)
  • 승인 2013.09.29 17: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미국의 시리아 군사개입 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 (9월 9일, 미국 대사관 인근)

지난 8월 2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구타 지역에서 대량의 화학무기가 사용되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는 사람들의 사진, 아수라장이 된 병원 모습을 담은 동영상 등이 긴급히 타전되었고,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세 곳의 병원에 21일 아침 3시간여 동안에만 신경 독성물질에 노출된 증상을 보이는 3,600명의 환자가 몰려왔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어 불길한 예감은 곧 적중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정부군을 화학무기 사용의 주체로 지목하며 시리아에 군사 개입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유엔 조사단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미군이 이라크 전쟁에 사용되었던 토마호크 미사일을 탑재한 구축함을 지중해에 배치하고 F-16, 스텔스 전투기 등을 대기시켜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평화활동가들의 카카오톡 채팅방에 불이 나기 시작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미국대사관 앞 기자회견, 항의서한 전달, 트위터 액션, 릴레이 1인 시위 등 군사 개입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반대의 목소리를 전하는 여러 행동이 진행되었다.

그 사이 미국 단독으로 시리아 군사 작전을 진행하는 것을 승인하는 동의안이 미국 상원 의회 외교위원회에서 통과되었다. 이대로 간다면 1999년 코소보,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3년 이라크, 2011년 리비아에서처럼 인도주의적인 군사 개입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미 의회 표결을 앞두고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국제 사회의 통제 아래 두게 하여 사실상 시리아 정부 스스로 폐기 절차를 밟도록 하게 하자’는 러시아의 중재안에 시리아와 미국이 합의하면서, 미국의 군사 개입 계획은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다는 엄포를 남긴 채 유보되었다. 그리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17일 새벽, 유엔 보고서가 발표되어 시리아에서 치명적인 화학무기인 사린 가스가 대규모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유엔 보고서는 그 사용 주체가 누구인지 언급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증거 자료들은 압도적으로 아사드 정권을 공격 주체로 지목하고 있다.

급박하게 지나온 지난 몇 주간을 되돌아보며 인도의 반세계화 활동가인 아룬다티 로이의 말이 떠올랐다. 로이는 자신의 책 「9월이여, 오라」에서 전쟁과 제국주의, 세계화의 진실을 폭로하면서 지금 이 시대에 자신이 할 일은 ‘아픈 눈을 뜨고 있는 것’이라고 적은 적이 있다. 미국의 공습 계획은 일단 유보되었지만 지난 2년간 최소 1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되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게 만든 시리아 사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아픈 눈을 감지 말아야 할 이유다.

지금 이 시대에 할 일은 ‘아픈 눈을 뜨고 있는 것’ -아룬다티 로이

시작으로 되돌아가 보기로 했다. 시리아 국민들이 처음에 요구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194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시리아는 수차례의 군사 쿠데타를 겪었다. 현 대통령인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는 1963, 66년, 그리고 70년 총 3번의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직을 이어온 인물이다. 그는 재임 동안 자신의 반대파와 시민들에 대해 가차없는 탄압을 가한 독재자로 악명 높았다. 200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바샤르 알 아사드 역시 아버지와 별 다름없는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해왔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오십 년 가까이 기득권을 지켜온 군부와 정부 관료, 자본가 등 지배집단이 자리 잡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의 작은 도시 다라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는 시리아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아사드 정권은 공화국 수비대와 샤비야(Shabiha)라고 불리는 친정부 성향의 알라위(시아파의 소수 종파) 민병대를 동원해 시위를 강제 진압하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했다. 정부군의 탄압이 워낙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진행되어 사망자가 급증하고 잡혀간 사람들의 수가 만 명을 넘어서자, 시위는 점점 아사드의 퇴진과 집권당인 바트당의 해체를 외치는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었다. 그와 동시에 시위대 일부가 무장을 하기 시작했고, 시위대를 향한 발포명령을 거부한 정부군 소속 장교와 사병들을 중심으로 ‘자유시리아군’이 결성되었다.

2011년 3월 시위에서 시리아 국민들이 요구한 것은 48년간 계속된 국가비상사태의 해제, 정치 수감자 석방, 집회․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보장, 25%에 달하는 실업 문제 해결, 물가 안정, 부족한 수도시설 확충, 부패 척결과 같은 인간적인 삶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 지극히 정당한 요구가 아사드 정권의 폭력적인 탄압으로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으로 이어졌고, 혼란 속에서 양측의 대규모 학살과 보복이 되풀이되었다. 그동안 민간인들의 고통이 말할 수 없이 극심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군사 분쟁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온 주변국들

그리고 군사 분쟁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온 주변국들이 있었다. 아사드 정권은 이란, 러시아, 중국, 부분적으로 레바논과 이라크의 지원을 받고 있다. 시리아는 중동에서 러시아의 유일한 동맹국이자 러시아 무기의 최대 소비국이다. 러시아는 이러한 이해관계 때문에 유엔의 아사드 제재 결의안에 반대해왔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리비아 반군, 이라크의 수니파 등은 자유시리아군을 비롯해 정부군에 대항하여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는 세력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공급해왔다. 내전이 격화되는 데는 주변국들의 무기․군사 지원도 한몫을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8월 21일, 그동안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국지적으로만 있어 왔던 화학무기 공격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전쟁은 무기를 준비하고 전쟁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 구조 속에서 시작되는 것

사린 가스는 2차 대전 중 독일에서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개발한 화학무기로, 지난 1988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부가 민간인 수천 명을 학살하는데 사용되었던 가스다. 국제 사회는 1997년 화학무기금지협약(CWC)를 발효하여 화학무기의 개발, 생산, 비축 및 사용을 금지한 바 있다. 그동안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던 시리아는 화학무기 해체를 위한 프로세스에 따라 지난 9월 14일 189번째로 협약에 가입했다. 앞으로 시리아 정부는 화학무기 보유 현황을 공개하고 국제 조사단을 받아들이며 내년까지 화학무기 해체를 완료해야만 한다.

군사개입이 아닌 국제 사회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외교적,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국제 사회는 제네바 협약, 화학무기금지협약, 확산탄금지협약, 무기거래조약 등 여러 가지 약속을 제정함으로써 비인도적인 무기와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다. 비록 더디지만 이러한 노력이 중요한 이유는 전쟁이 한순간의 결정이나 우발적인 사건으로 발생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은 무기를 준비하고 전쟁을 용인할 수 있는 사회 구조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맞서 평화를 만들어나가는 길 역시 단순하고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일상의 노력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모든 살상 무기를 금지하는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요구하는 것, 다른 이의 목숨을 담보로 누가 이익을 얻고 있는지 폭로하는 것,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의 폐해를 알리고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하는 것 등과 같은 치열한 싸움의 결과물로 우리는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지난 몇 주간 시리아 사태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었다. 2년 동안의 내전으로 고통 받은 시리아에 필요한 것은 정부군과 반군이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중재 테이블에 앉을 수 있도록 하는 국제 사회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외교적, 정치적 노력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이제야 첫 단추를 끼우기 시작했을 뿐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바로 길이다’라는 말이 지금 시리아에 어렵고도 절실하다.

 

▲ 미국 대사관 앞 일인시위 "No Syria attack! 군사 개입이 아닌 평화적 해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