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문화를 살리는 생동하는 법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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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문화를 살리는 생동하는 법이 되었으면.
  • 남승한 (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
  • 승인 2013.12.27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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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소송을 진행하며-

헌법재판소는 작년 12. 27.에 위치추적전자장치, 소위 전자발찌를 소급해서 부착하는 것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미 합헌 결정 이후 1년이 지났으니 뒤늦게 전자발찌 소급부착에 대한 법률적 견해를 피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 우리위원회가 공익소송으로 진행했던 전자발찌 소급 부착 관련 사건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돌이켜 보고 그 경과를 공유하고자 한다.

성폭력범죄로 처벌받고 출소한지 얼마 안된 모씨(의뢰인이라 하겠다)가 검사로부터 전자장치 부착 명령 청구를 받았다. 문제는 의뢰인의 성범죄가 성폭력범죄자들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하기로 하는 법률이 시행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었고 결국 전자발찌 부착의 근거법률 시행 이전에 성범죄를 범한 사람에게도 소급해서 전자발찌를 부착하겠다는 것이 그 사건의 요지였다. 법률로 일한다는 사람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소급 부착 청구를 당했다는 사건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전자발찌를 소급부착 하도록 하는 법률조항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성폭력범죄자에 대해 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은 특정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이라는 것이었고, 이 법에는 여러 개의 부칙이 있는데 그 부칙 중 하나가 이 법의 시행 당시 성범죄로 이미 판결을 선고 받고 출소가 예정되어 있거나(출소예정자) 출소가 임박한 사람(출소임박자), 이미 출소한 사람(출소자)에 대해서도 성폭력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부착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우리 위원회는 이런 소급부착은 위헌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고, 이 사건이야말로 공익소송으로 진행할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전자발찌 부착 자체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이 한 번 있었던 상태였는데 마침, 충주지원에서 전자발찌를 소급 부착하는 것에 대해 위헌제청을 한 상태여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사건이 진행 중이었으므로 우리 사건도 병합해서 판단하면 소급 부착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얻는데 힘을 보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리가 위헌제청을 신청하기 한참 전인 2010년 12월에 헌법재판소는 이미 공개변론도 마친 상태였으므로 결정이 임박해 있다고 생각해서 우리의 제청신청에 대한 결정도 있기 전에 헌법재판소가 소급 부착에 대해 합헌결정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점이 있었다.

설명을 붙이자면, 어떤 법률이 위헌이라는 싸움을 헌법재판소로 가지고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법원이 그 법률이 위헌이라고 보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여부를 심판해 달라고 제청하는 것이다. 법원의 제청은 피고인의 신청을 받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하나는 피고인의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직접 피고인이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헌법소원이라고 한다.

우리는 먼저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했다. 법원이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이면 헌법재판소로 갈 수 있고, 신청을 안 받아들이면 헌법소원을 통해 갈 수 있었다. 어떤 경우든 이미 진행 중이던 위헌법률심판 사건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우리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법원이 우리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에 대해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은 것이다. 법원이 차라리 우리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결정을 하면 헌법소원을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런 결정도 하지도 않았다. 법원에 항의를 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항의했다가 혹시 나중에 의뢰인에게 불이익이 오지는 않을지 심각하게 걱정이 되어 항의하려던생각은 접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더딘 사건 처리 속도를 감안해도 도통 결정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공개변론을 한 뒤로부터도 2년, 위헌제청이 있은 때로부터는 2년 4개월이 지난2012년 12월에서야 전자발찌 소급부착이 합헌이라는 결정이 났다. 법원은 이때까지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고 있다가 우리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검찰의 부착명령 청구를 기각했다. 결과적으로 의뢰인은 전자발찌를 부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확정되었으니 가장 큰 걱정은 사라졌고 우리는 이 점에 많이 기뻐하고 안도했다.

여전히 우리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은 결정되지 않은 채로 법원에 아직 남아있다. 의뢰인에 대한 부착명령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소급부착을 규정한 법률 부칙으로 의뢰인의 권리 의무가 침해될 일은 전혀 없어진 셈이고 헌법재판을 청구할 이익이 이제는 없어졌다. 법원이 우리 신청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해도 헌법재판을 청구할 이익이 없어졌으므로 헌법재판은 각하될 것이다.

이렇게 전자발찌 소급 부착에 대한 공익소송은 끝났다. 끝난 것도 아니고끝나지 않은 것도 아닌 채로. 하지만 성폭력사건이나 강력범죄들을 감시와 강성형벌로만 해결하려는 사회와 제도에 반대하는 우리의 싸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