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저항
상태바
양심과 저항
  • 박동호 신부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 승인 2013.12.27 2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주교 전주교구의 박창신 원로사제가 미사 중에 한 ‘강론’ 내용을 갖고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것을 ‘시끄러움’이라 표현한 것은 의미가 담긴 목소리들의 소통이 아니라, 무의미한 소리들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배경에 강론을 소재로 해서 이미 획득한 ‘사적인 이익’과 남을 지배하려는 ‘권력에의 욕망’을 굳히기 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본다.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무엇보다도 정치적이든 소수의 폐쇄적 지배집단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데 이용한 것뿐이었다. 이를 ‘종교와 정치’ 혹은 ‘정교분리’라는 제목을 붙여 시민을 점잖게 훈계했든, ‘종북’이라고 천박하게 매도했든 그 배경은 마찬가지다. 강론 전문을 읽어보고 그 강론이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를 성찰한 사람이라면 시끄러운 소리 대신에 ‘의미를 주고받는 대화’를 펼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적인 이익’과 ‘권력에의 욕망’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점하려는 소수의 ‘폐쇄적 지배집단’은 이제 종교,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앙’이라는 것조차 부정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절대자가 되려하고, 전능자가 되려하며, 무엇보다도 ‘신’이 되려하는 것이다. 이를 거스른다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말 오랫동안, 오늘의 우리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사람이라고 모두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간단히 이를 우리는 ‘신분사회’라고 배웠을 뿐이다. 신분에 따라 사람의 귀천이 갈리는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는지 오늘의 우리는 상상조차 못한다. ‘자유’라는 언어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자본주의의 출현과 신분사회의 철폐가 거의 동시대에 등장함으로써 우리는 ‘근대’를 맞이하였지만, 그 역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체험이 아니라, 한참 전 과거의 일이었다. 신분사회의 철폐를 통해 ‘정치적 자유’를 실현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출현은 ‘경제적 불평등’을 낳았다. 유한한 인간과 그 인간의 사회가 갖는 불안전함이 갖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경제적 불평등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 없지만, 그렇다고 이를 위한 극복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신분사회의 ‘정치적 부자유’를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지배자들의 ‘권력에의 욕망’뿐만 아니라 이른바 ‘숙명론’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다는 그 지독한 숙명 말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불평등’이 눈에 보이는데도 ‘정당하게 분노’하지 못하는 데에는 소수의 ‘사적 이익’을 향한 강한 욕망만이 아니라, 불평등에 대한 숙명이 자리하고 있다. 게을러서, 능력이 없어서, 부모를 잘못 만나서... 하는 숙명 말이다. 그렇게 믿으라고 얼마나 집요하게 세뇌하고 있는가.

그나마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위해 사람들이 지혜와 뜻을 모아 만든 제도와 질서가 아마도 ‘정치공동체’로서의 ‘시민국가’가 아닐까 한다. 몇몇 극소수의 나라를 제외하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가 건국에 명분으로 ‘민주주의’ 혹은 ‘공화주의’를 내세운 것도 그 때문이리라. ‘민’이 ‘주인’인 나라는 정치적 자유를, ‘공화’는 사회ㆍ문화ㆍ경제적 평등을 담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시민국가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우리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민주주의공화국은 ‘사적이익’과 ‘권력에의 욕망’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독점하려는 소수의 ‘폐쇄된 지배집단’하고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공화국 - ‘민주’는 정치적 자유를, ‘공화’는 사회ㆍ문화ㆍ경제적 평등을 담은 것

그런데 만일, 이 둘이 서로 교묘하게 결합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해 분명 국가가 형식으로는 ‘민주주의 공화국’인데, 실제로는 소수의 ‘폐쇄된 지배집단’의 ‘수단’에 불과하다면 말이다. ‘민’의 ‘공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사적 이익’을 위해 모든 제도와 법이 만들어지고 정치과 경제와 문화가 운용된다면. ‘민’의 ‘자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권력에의 욕망’ 실현을 위해 모든 제도와 법이 만들어지고 운용된다면. 여기에 ‘지식’과 ‘물리적 폭력’까지 가세한다면. ‘폐쇄적 지배집단’을 위해 ‘지식사회’가 온갖 이론과 이데올로기를 현란하게 제공함으로써 가세한다면. 그리고 ‘합법적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군대와 경찰이 그 무력을 제공함으로써 든든하게 지켜준다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하고 회의할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무수히 많이 벌어졌음을 역사는 보여주었다. 아주 먼 수천 년 전의 일이라면, 그나마 안심할 수 있다. 그 같은 ‘사회적 유전자’를 현대 사회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그렇지만 불과 몇십년 전에 벌어진 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제2차 세계대전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의 군국주의,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은 까마득히 먼 과거의 ‘일화’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둘 있다. 하나는 대다수가(자발적이든 강요에 의한 것이든) 열렬히 환호했다는 것이며, 소수의 양심은 그 시끄러운 환호소리에 처참하게 제거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질서와 법을 내세우는 그 기세가 ‘양심’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필자는 지금 우리 사회가 그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국가발전, 번영, 성장, 일류국가를 위해 ‘화합’과 ‘질서’와 ‘법’을 내세우는 그 기세가 ‘양심’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치와 경제가 합하여 몸집은 불렸으나 시민은 왜소해지고, 다시 언론이 합하여 질서를 가져왔지만, 시민은 획일로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것은 아닌지. 거기다가 이제는 지식마저 ‘사적이익’과 ‘권력에의 욕망’에 부역을 강요당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마침내 종교와 양심마저 그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종교는 몰라도, 가톨릭교회는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노동이든 법률이든 시장이든, 하다못해 종교든, 그 모든 것은 바로 ‘인간과 사회’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이며,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 그 때문에 그 모든 ‘장치’들은 ‘인간의 존엄함과 인권 수호와 증진’, 그리고 ‘인권을 증진함으로써 공동선을 실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이 사회적 장치들은 소수의 폐쇄적 지배집단의 사적이익과 권력에의 욕망 실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와 공화를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목적에 충실한 한 ‘정당한’ 권위를 갖는 것이며, 그 정당한 권위를 갖는 공권력의 정당한 명령 대해서는 모든 시민이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친다.

“권위에 대한 저항은 사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간추린 사회교리 400항

그러나 거꾸로 “공권력의 명령이 도덕 질서의 요구나 인간의 기본권 또는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될 때, 국민들은 양심에 비추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더 나아가 “국법이 인정하더라도 하느님의 법에 위배되는 관습들에 대해서는 공식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협력하지 않아야 할 중대한 양심의 의무가 있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이를 교회는 정치생활에서 ‘양심에 따라서 거부할 권리’라고 부른다.(간추린 사회교리 399항) 여기에 머물지 않고, 가톨릭교회는 적극적인 ‘저항권’을 제시하고 있다. “권위가 자연법의 근본 원리를 심각하게 또는 반복적으로 침해한다면 그러한 권위에 대한 저항은 정당하다... 권위에 대한 저항은, 그 목적이 예를 들면 특정 법률의 수정과 같은 부분적인 변화를 이루는 것이든, 아니면 근본적인 상황변화를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든, 사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00항) 즉 ‘사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이 ‘권위에 대한 저항’에 정당성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권위는 무조건 따라야 할 절대적인 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양심’과 ‘사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회야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 곧 ‘참된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