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성을 해체하고 단독성을 지켜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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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성을 해체하고 단독성을 지켜내는 일
  • 김경환 (피보안관찰자)
  • 승인 2014.02.2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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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안관찰자로 산다는 것

<백의 그림자>는 황정은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도심한복판의 40년 된 전자상가, 철거를 앞둔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시스템의 비정함과 등장인물의 선량함을 대조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과연 살만한 곳인지를 묻는다. 그렇다. 이 세상은 정말 살 만한 곳이며 희망은 있는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 것인가.

자명성의 해체와 불행의 단독성

나는 문학평론가 신영철이 이 작품을 평하면서 제시한 개념에 주목한다. ‘자명성의 해체’와 ‘불행의 단독성’이 그것이다.

인간은 상상밖으로 어리석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하면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한번 정해진 법은 너무도 마땅하고 자명해서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보안관찰법은 일제 강점기에 불온한 사상을 가진 조선인을 감시, 탄압하기 위해 만든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에서 유래한 악법중의 악법이다.

나는 언젠가 어떤 글에서 국가보안법은 동의할 수는 없으나 분단체제상 이해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이어 보안관찰법은 동의도 이해도 할 수 없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국가보안법의 새끼법인 보안관찰법은 목적, 법률적 요건, 정당성 모든 측면에서 존립근거가 아주 희박하다. 그것은 법이 아니라 일종의 감시와 사상통제 시스템이다.

해방과 더불어 땅 속에 파묻힌 줄 알았던 이 법을 다시 꺼낸 것은 박정희 유신독재이다. 한국전쟁 시기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하던 이들이 20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를 앞두자 전향하지 않는 자에겐 자유가 없다며 사회안전법으로 다시 옭아매는 것이다.

전향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형 7년을 마치고도 10년을 더 갇혀 있어야 했던 서준식은 사회안전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목숨 건 단식투쟁을 전개했고, 마침내 1987년 6월항쟁의 거센 파도에 떠밀려 폐지될 운명에 처했다. 그런데 친일과 분단으로 영화를 누려온 수구세력은 간교했다. 사회안전법의 뼈대를 이루는 보안관찰제도만 쏙 빼내 법으로 남겨둔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보안관찰법이다.

2003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4년 가까이 복역하고 출소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족쇄, 또 하나의 감옥이었다. 그러고보니 10년 넘는 세월, 보이지 않는 감시 속에 살아온 나도 ‘자명성’의 함정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 담당 형사가 네 차례 바뀌었고, 가족들은 멀리 떠나갔다. 보안관찰법은 어두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왔다. 과연 멀쩡한 것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보이지 않는 물질의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오존, 방사능, 전자파, 자기장, 환경호르몬…. 이것이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밝혀진 바가 많지 않다. 인체에 유해하다는 막연한 예상과 추측, 경고뿐.

보이지 않는 통제와 감시는 어떨까. 내 아이가 어릴 적, 퇴근하는 나에게 말했다. “아빠, 오늘 아빠 친구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서 아빠 휴대폰 번호 묻더라. 내가 말 안 해줬어. 그 사람 형사지?” 어릴 적에 이미 보이지 않는 힘, 국가권력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이를 경계해야 했던 아이는 온전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마에 계속해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은 마침내 축적된 파괴력으로 구멍을 뚫고 말 것이다. 보안관찰법은 정신을 병들게 하는 방사능이자 전자파 같은 저강도 길들이기 수단이다. 구금이나 고문처럼 직접적이고 눈에 보이는 폭력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 관리실 경비원이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오늘 형사가 다녀갔는데, 김 선생의 차종과 차량번호를 확인했다고. 또 추석을 앞둔 어느 날엔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담당 형사가 들러 명절 선물이라며 옥돔 상자를 던져 놓고 갔다. 그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주지시켰다. 그대로 둔다면 내가 죽을 때까지 그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지난 1월 말,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헌법소원을 통해, 관례적으로 반복돼온 보안관찰기간갱신 처분에 대해 제동을 건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들었다. 그것은 우리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명함에 관한 잘못된 믿음을 해체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없다. 부당한 것은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보안관찰법은 밀양이자 용산이다

이번에 기간갱신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검찰과 경찰은 10년 넘게 3개월마다 나에 대한 동향보고서를 작성해 왔다. 그것도 잘못된 정보와 편견에 사로잡힌 채로. 그것에 대해 내 얘기는 한 번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듣더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결국 나에겐 불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고 기록했다.

그런 창작에 가까운 보고를 바탕으로 법무부 산하 보안관찰심의위원회라는 유령 조직은 검찰의 의견대로 기계적으로 나에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며 해마다 2년씩 피보안처분을 내렸던 것이다. 그들에겐 한 사람의 인권보다 ‘국가의 안위’를 빙자한 몇 푼의 회의참석비가 더 소중했을지도 모르겠다.

자명성의 해체와 더불어 나는 불행의 단독성을 말하고 싶다. 용산 참사 때 경찰의 무분별한 폭력으로 죄 없이 죽어간 주민들을 보라. 그들을 웃음과 눈물을 지닌 인격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이름 석 자를 가진 사람으로 보았다면 그리 쉽게 함부로 진압에 나설 수 있었을까. 그들이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고 재개발로 인해 어떤 불행을 겪을지를 헤아렸다면 그렇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을까.

어떤 불행도 보편적일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모든 불행은 하나하나 뚜렷한 성격을 품고 있다. 불행은 단독적이다. 단독적이지 않은 것은 불행이라 할 수 없다.

국가의 폭력기구와 통제 시스템은 나와 같은 이들에게 똑같은 딱지를 붙인다. 보안관찰자라는. 그러면서 이 자들은 빨갱이 짓을 하고 감옥살이를 했으므로 죽을 때까지 감시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위태로워진다고 부르짖는다.

그들의 눈엔 나 같은 이들이 개별적인 인격체로 보이지 않는다. 싸잡아 붉은 딱지를 붙여서 인격을 거세하는 것이다. 그래야 문명사회가 오랜 기간 피 흘려 도달한 인권의 최후 보루인 헌법과 형사소송법도 무시한 채 사상과 생각이 다른 자들을 사회에서 분리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저지른 저 끔찍한 대량학살은 이처럼 불행의 보편성에서 기인한다.

발터 벤야민은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많은 불행들을 전해 듣지만 그 불행들은 상투적인 표현들로 이차 가공되면서 그 단독성을 상실하고 일종의 정보들로 추락하고 만다. 너무나 많은 불행이 있고 우리는 불행에 무뎌진다.”

우리는 자명성을 해체하려는 논리와 마찬가지로 불행의 단독성을 위해 싸워야 한다. 평범성, 보편성, 일반성에 맞서 단독성, 개별성, 독립성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보안관찰법이 등짝에 달라붙은 그림자처럼 당연하고 익숙하게 여겨진다면 나의 불행은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더욱 지속적으로, 마침내 타인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보안관찰법은 밀양이자 용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