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박론과 인혁당
상태바
통일대박론과 인혁당
  • 이창훈 (4.9 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
  • 승인 2014.03.28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10월 24일 청와대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인혁당사건 피해자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 취하 요구 기자회견 ⓒ4.9 통일평화재단

‘통일은 대박이다’는 말이 요즘 화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말의 현실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첫째로는 역대 대통령들이 정치적 위기 상황이나 그에 따르는 시기가 봉착하면, 국민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뜬금없이 남북통일과 관련된 담화문을 발표해 왔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 화제의 시작이 박근혜 대통령인 점이다. 박대통령은 집권 초기인 지난해 대선 공약축소와 파기로 일 년을 지내왔다. 그런 대통령이 연초부터 또 다른 공(空)약을 내세우니, 믿기 어렵다. 셋째, 통일이 대박이라니 더욱 믿기 어렵다. 통일이 로또도 아닌데 지난 60년간 맘 편히 편지도 서로 주고받지 못할 정도로 닫혀 있는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호전될 리 없기 때문이다. 남북통일이 이뤄지려면 뭐니뭐니해도 지난 60년간 쌓인 남북불신의 장벽을 허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남북이 신뢰의 토대를 쌓지 않고서는 어떠한 통일방안도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통령처럼 정치적인 술수로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통일이 대박이다’고 외치던 사람들이 있다. 생각이나 외침에만 그치지 않고 ‘통일만이 우리 민족이 살길이다’라고 외치고 몸 바쳐 실천한 사람들이 있다. 그 당시엔 통일을 외치는 것만으로도 아주 힘겨운 일이었고 좁은 문으로 들어서는 일이었다.

1972년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만들어 자신의 영구집권을 획책했다. 대통령을 직접선거가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는 간접선거로 바꾸었으며, 임기 6년에 연임 제한이 없었다. 게다가 대통령이 국회 해산권과 법관 임명권을 갖도록 하여, 3권(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통솔하려 했다. 이러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자 많은 국민이 이에 반대하였다. 이런 가운데 만들어진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조작극이었다. 게다가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북한이 1972년의 7.4남북공동선언이라는 위장평화전술을 펴면서 뒤로는 남한 정권을 붕괴시키려 했다는 증거라며, 관련자를 간첩으로까지 몰고 갔다. 이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박정희의 영구집권 계획은 성공하는 듯 했으며, 더 이상 국민들은 북한과 통일을 하자고 외칠 수 없게 되었다. 지구상에 가장 강력한 반공국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거짓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1979년 박정희는 총애하던 부하에게 저격당했다. 그리고 2007년 인혁당사건은 32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 인혁당 사건으로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났다. 2008년 인혁당 사형수 8인의 피해배상소송 원고가 46명이었고, 2009년 생존자 13인의 피해배상소송 원고는 77명이었다. 이는 부인과 직계 손들만 계산한 인원수였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다. 사형수와 생존자들의 지인들이다. 학교를 같이 다녔거나 돈을 빌려준 적이 있거나 살면서 이런저런 인간관계를 맺은 이들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문초를 받았다. 2007년 즈음만 해도 당시 정부가 인혁당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사죄하던 가해자에서 철면피로 둔갑한 국가

하지만,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가해자인 국가가 철면피로 둔갑한다. 2007년 4월 추모제에서 법무부 장관의 명의로 추도사도 읽던 국가가 2008년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항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국가의 피해배상금은 변함이 없었다. 항소심이 끝나자 국가는 배상금의 2/3를 지급했다. 법률심인 대법원 확정판결만 남겨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례적용을 달리한다. ‘상당기간이 지난 과거사 사건에 대해서는 민사 항소심이 끝난 후부터 이자를 책정한다’는 새로운 판례를 내놓았다.

그 뒤로 법원은 ‘상당기간이 경과한 과거사 사건’에 대해서는 ‘이자 없는 국가배상판결’을 계속 내리고 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이자 없는 배상판결’의 시초가 된 셈이다. 결국, 이러한 대법원의 의외 판결에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남은 보상금도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받은 배상금에서 절반에 해당되는 돈을 되돌려 줘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이명박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는 더욱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인혁당사건에는 두 개의 판결이 존재한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른다. 결국, 기자회견을 자처하고 ‘5.16쿠데타, 유신헌법,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피해를 당하신 분들께 참 죄송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말은 거짓이었다. 진심에서 나온 사죄가 아니었다. 우선 급한 것은 ‘대선승리’였던 것이다.

후보시절 대선승리를 위해 거짓으로 사죄한 박근혜 대통령

집권 후 시작된 기상천외한 ‘부당이익금반환소송’

집권 1년이 채 안 된 지난해 7월부터 생존자 집안별로 ‘부당이익금반환소장’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부당이득금’이라는 단어도 생경했지만, 게다가 놀랍게도 소송주체는 가해자였던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정원이었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법원판결에 이은 추심성 재판이었다. 부당이득금을 반환하지 않으면 20%의 이자를 매겨 받겠다는 것이다. 일부는 억울하다며 항소를 한 집안도 있지만 대부분 1심에서 패소하였다.

40년 전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고초를 받은 사람들은 민주화와 통일을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이었다. 이 때문에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혹은 죽음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직면하고도 후회하지 않았다. 사건을 조작한 중앙정보부는 그들이 남긴 마지막 유언도 조작했다. 인혁당의 당수로 지목된 도예종 씨는 사형 직전 “적화통일 만세”라고 외친 것으로 발표됐는데, ‘적화통일’이라는 단어는 북한에서도 안 쓰는 말이고 정보부에서나 쓰는 말인데, 도예종 씨가 그런 유언을 남겼을 리가 만무했다. 진실은 사형수 8인 모두 한결같이 “조국통일(혹은 평화통일)이 하루 속히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통일일꾼 인혁당 열사들을 욕되게 하면서

과연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도 연일 조중동을 비롯한 종편 방송들은 정권의 나팔수인 양, ‘통일대박론’을 거론하며, 4월에는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하고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고 위원은 누구누구라며 떠들고 있다. 하지만 통일일꾼 인혁당 열사들을 고초에 몰아넣고도 모자라, 이제는 팔십 고령을 넘은 생존자들과 후손들까지 고초에 빠뜨리면서, 자신들이 통일의 전도사라고 떠든다면, 진실을 아는 국민들 누가 그 말을 믿어 주겠는가? 어디 인혁당 뿐이랴. 남북의 최고 책임자들이 약속한 ‘6.15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지 않는 정부, 탈북한 동포의 약점을 잡아 간첩으로 조작하는 정보라인, 진보정치를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그들만의 정권’을 어떻게 통일을 앞당길 정치세력이라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원칙 있는 남북관계”라는 말을 듣자면 더욱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남북의 화해를 위해 아무런 한 일이 없는 자들이, ‘통일의 원칙’이 무엇인지 알고서 하는 말인지 한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