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유현석 변호사님 10주기 추모미사 및 유현석 공익소송기금 보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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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유현석 변호사님 10주기 추모미사 및 유현석 공익소송기금 보고회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14.05.1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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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故유현석 변호사님 10주기 추모미사 및 유현석 공익소송기금 보고회

○ 일시 | 2014년 5월 26일(월) 오후 7시
○ 장소 | 혜화동성당 (미사 후 저녁식사)
○ 주최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문의 | 02-777-0641 (천주교인권위원회)




 

초대의 말씀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신
유현석 변호사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 주님 품으로 돌아가신지 10년이 되었습니다.

“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버림받은 자의 눈물은 세상을 구할 식량이다”라는 변호사님의 외침이
여전히 큰 메아리가 되어 귓가를 맴도는 요즈음입니다.

고인의 뜻을 기리고 고인의 정신을 따르고자
변호사님과 뜻을 함께 하셨던 분들을 모시고 10주기 추모미사를 드립니다.

변호사님을 기억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 낼 지혜를 찾을 수 있도록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번 추모미사에서는 지난 2009년 변호사님의 5주기를 맞아
유가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하신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된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의 보고회도 함께 열립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올림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