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시즌 2를 위한 시론(試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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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시즌 2를 위한 시론(試論)
  • 밀양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 승인 2014.06.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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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하지 않는 인간 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
ⓒ 밀양 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밀양 송전탑 시즌 2를 위한 시론(試論)

굴하지 않는 인간 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

 

-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밀양 어르신들의 시간은 아직도 6월 11일에 멈춰서 있습니다.

10년의 싸움, 3년여의 현장 투쟁, 밀리고 밀려 결국 자리잡은 곳이 네 곳 움막 농성장이었습니다. 거기서 8개월여를 먹고 자면서 지키던 움막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최소 일주일은 버틸 각오를 하고서 움막 냉장고에 먹을 거리를 꽉꽉 쟁여 넣어두었지만, 그들이 2천여 경찰병력에 맞서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은 30분을 채 넘지 못했습니다. 쇠사슬을 묶었으나 수천의 경찰 병력 앞에서 더 이상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를 가늠하지 못하던 몇 분 할머니들은 옷을 벗어 제꼈습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칼로 움막을 찢고 들이닥친 남성 경찰들은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알몸의 70대 80대 노인들에게 커터기를 들이댔습니다.

 

어르신들은 더 이상 갈 데가 없었으므로 움막을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움막에서 보낸 지난 8개월은 참혹했습니다. 농성 움막 앞뒤로 권력과 자본의 발기한 욕망 같은 철탑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떡하니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것은 패가망신한 집안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빨간딱지처럼 당신들의 사지육신을 조여들었습니다. 움막 위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공사용 헬기가 날면 지상의 모든 소리는 거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세상은 저들의 것이며, 당신들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는 미물이 된 듯한 치욕의 감정을 수없는 터널처럼 통과해야 했습니다.

 

지난 10월 공사 이후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는 171건의 응급 후송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대책위 일꾼들이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응급실로 달려가면 거기에는 한 지옥도가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정신을 잃은 채 모로 누운 할머니의 파리한 얼굴, 서러움을 견디지 못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아주머니, 입고 있는 송전탑 반대 티셔츠에 묻어있는 검불과 낙엽부스러기가 말해주는 격렬한 충돌의 흔적, 그들이 뱉어내던 지옥같은 통증의 신음소리가 쟁쟁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오고가는 헬기 소음이 불러일으킨 지옥 같은 신경증과 불면의 고통으로 아직까지 주민 33명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6월 11일 꼭 한번,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주민들은 막다른 곳으로 내몰렸지만, 당신들의 진지가 있었으므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빼앗겨버리고 내동댕이쳐질 어느 순간이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측의 끝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신들은 입버릇처럼 ‘그때 우리는 죽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실제로, 화급한 어떤 순간이 촉발할 극단적인 충동으로 그 말씀이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희 대책위는 2012년 2월 1일, 故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사망 2주 뒤에 결성되었습니다. 그때 저희들의 정식 명칭은 ‘분신 대책위’였습니다. 제2, 제3의 죽음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유한숙 어르신께서 세상을 등졌고, 현장 투쟁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억울함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주민들은 맨몸으로 부딪쳤고, 경찰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잔혹한 진압으로 대응했습니다. 주민들은 자주 생과 사의 한계선상으로 내몰리곤 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빼앗긴 주민 200여세대가 남아 있습니다.

한전이 모이를 주고 키우는 앵무새 언론들은 이제 다 끝났다고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철옹성 같던 핵마피아 전력마피아들의 독재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습니다. 엉터리긴 하지만 송주법이라는 보상법도 제정되었습니다. 한국전력은 이제 765kV 송전선은 새로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원전이든 석탄화력발전이든 대용량 발전은 송전선 확보 때문에라도 신규 건설 의사를 재고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인식,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와 안락이 감춘 비참하고도 서글픈 맨얼굴이 대낮처럼 드러났습니다.

 

밀양은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밀양 주민들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달라진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는 가혹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경찰에 입건된 사안만 89건입니다. 70여명 주민들은 대부분 검찰 조사를 거쳐 기소될 예정입니다. 벌금 폭탄이 밀양에도 떨어질 것입니다. 마을 공동체는 이미 송전탑 찬반으로 딱 쪼개졌습니다. 마을은 그들이 겪고 누리던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쳐다보기도 싫은 얼굴이 된 이웃들과 자기 정당성의 알리바이를 들이대며 싸워야 합니다. 주민들은 날마다 괴롭게 자문합니다. ‘지난 10년의 싸움은 대체 나에게 무엇이었나? 어차피 안 될 싸움, 모두가 말리던 싸움, 그러나 가만히 있어야 했던 것일까?’ 라는.

 

저희들은 이 시점에서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모든 짐을 왜 밀양 어르신들만이 떠안아야 합니까? 10년 투쟁의 뒤설거지를 왜 마지막까지 떠나지 못했던 어르신들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럴 거였다면,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도 도무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3년 전 어느 날, 한전이 제시한 보상금 받고 도장을 찍어야 했던 것일까요?

 

우리 사회가 밀양 어르신들을 함께 모셔야 합니다.

당신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남은 생애 내내 당신들을 괴롭힐 패배감, 외로움, 상실감을 치유해 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모두가 숨죽이고 있을 때 이 부당함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서 끝내 변화의 물꼬를 튼 분들로서 훈장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잡은 손 놓지 않겠다는 약속이 바로 ‘밀양 송전탑 시즌 2’입니다.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수많은 투쟁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사고는 언제나 썰물처럼 빠져나간 파장(罷場) 이후의 시간 중에 벌어졌습니다. 송전탑이 우뚝 솟은 마을에서, 초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선 아래서도 어르신들은 살아야 합니다. 그때 ‘아무것도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를 생각해 주십시오.

 

그러므로, 누군가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누군가가 입증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밀양에서 벌인 무간지옥의 폭력을 증언하고, 정의와 진실의 궤도 위에 이 사태를 올려놓아야 할 수많은 과업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송전탑이 건설되고 송전선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우리는 이 송전탑을 뽑아내고 말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텨 나가야 할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시간은 그렇게 고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껏 보여주셨던 당신들의 넉넉한 인정들이 우정어린 만남을 예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연대는 어르신들을 살아있게 할 것이며, 어르신들은 연대자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밀양송전탑 시즌2의 과제

 

<과제 1> 6.11행정대집행 참사의 진상 조사, 책임자 처벌

6.11 행정대집행 참사는 지상파 방송에서는 그리 심도 깊게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만, 그 참혹함과 비참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6월 25일 오후 2시, 국회에서는 정청래 / 진선미 / 장하나 의원실 주관으로 증언대회가 열립니다. 저희는 반드시, 70대 80대 노인들을 상대로 그 끔찍한 작전을 수행한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하고 국가의 사과를 받아낼 것입니다.

 

<과제 2> 7개 마을 농성장, 새롭게 마련

어르신들의 농성장이 다시 마련되고 있습니다. 밀양시청으로부터 돌려받은 냉장고는 모두 퀘퀘하게 썩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다시 새롭게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내부를 고치고 안팎을 예쁘게 꾸미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연대 방문자들과 함께 된장국을 끓여 함께 밥을 먹고, 과일 깎아먹으며 수다도 떨고, 한의사 선생님들이 놓아주는 침도 맞고, 백숙 끓여 놓고 소주도 한잔씩들 하는 그런 공간이 7개 마을에 각각 구축됩니다. 그곳은 사랑방이자 교육의 장이 될 것이며, 게스트 하우스이자 식당 노릇을 할 것입니다. 그곳은 끝내 정부와 한국전력이 승리하지 않았음을 실물로써 증언하는 물리적인 거점이 될 것입니다.

 

<과제 3>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 ; 연대자와 주민들이 농산물로 만난다!

현재까지 151차례 진행된 밀양 촛불집회를 점차 ‘장터’ 형식으로 바꾸어 나갈 예정입니다. 연대자들은 먹을거리와 놀거리를 들고 오고, 주민들은 논밭에서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작물을 들고 나와 서로 먹고 나누고 노는 자리를 만들 것입니다.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들을 연대자 시민들에게 판매하고, 연대자들은 어르신들을 방문하여 일손을 거들며 어울리는 마당을 협동조합을 통해 이루어내려 합니다.

예비 사회적기업 양성과정에 들어가 있는 “미니팜 협동조합 – 밀양의 친구들”은 현재 발기인 대회를 마친 상태이며, 7월부터 ‘예비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으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출자금 1만원 입금처 : 신한 110-415-687752 장수민

문의 : 협동조합 사무국 010-5045-3405

 

<과제 4> 밀양 인권 침해 종합보고서 발간 / 마을공동체 파괴 기록과 증언 / 백서 발간

밀양 송전탑의 인권 침해 상황은 실로 참담합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인권단체 연석회의에서 구성하여 활동한 ‘밀양 인권침해감시단’과 함께 3차례에 걸쳐 <밀양 송전탑 인권침해 보고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제 밀양 인권 침해 상황을 최종적으로 종합하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법적 제도적 대안을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아울러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팀과 함께 밀양 송전탑 투쟁 자료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밀양 송전탑 투쟁 백서 발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10년간 주민들은 보상을 거부했지만, 한국전력은 끝내 돈으로 마을 공동체를 괴멸시켰습니다. 한국전력이 밀양에서 저지른 가장 끔찍한 죄악은 일생토록 살아온, 당신들이 알고 있던 세상의 전체였을지도 모를 마을 공동체를 갈라 세우고, 보상금 수령 여부로써 주민들에게 항복과 굴욕을 강요하고, 그들을 서로 미워하게 만들어놓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행법상으로는 한전의 현금개별보상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저열한 술책들을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밀양송전탑 경과지 30개 모든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마을 분열의 실상과 한국전력의 회유 공작의 전모를 조사하여 온천하에 알리고 기록으로 남길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한전이 벌인 이런 행태가 반드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 운동을 벌일 것입니다.

 

<과제 5> 집단 소송

재산 피해 청구 소송

지금 밀양 주민들의 목전에 닥친 가장 현실적인 위기는 일생 일구어 놓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송전탑이 다 올라오지도 않았지만, 이미 부동산 거래가 끊겼습니다. 농자금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에서는 담보로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피해를 법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밀양송전탑반대 주민 법률지원단은 이미 3차례에 걸친 현장 실사를 마쳤으며, 7~8월중으로 한국전력을 상대로 한 재산권 소송을 진행할 것입니다.

경찰 폭력 국가배상 청구 소송

지금껏 경찰이 자행한 폭력에 대한 증거는 어르신들의 육신에, 그리고 수많은 병원 진료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을 모아 국가를 상대로 주민들에게 끼친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 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할 것입니다.

 

<과제 6> 밀양 송전탑 3대 악법 ‘송주법 + 전기사업법 + 전원개발촉진법’ 개정 운동

밀양 송전탑을 통해 이 부도덕한 법과 시스템이 폭로되었습니다. 밀양 싸움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목소리를 집약하여 제도적 성과로 귀결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비록 송전탑이 건설되더라도 주민들의 노력으로 ‘전원개발촉진법’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악법들의 핵심적인 독소조항을 개정하여 ‘우리의 노력으로 제2 제3의 밀양을 만들지 않았다’는 자부어린 성과를 내는 것이 마지막까지 보상을 거부하고 투쟁하는 우리 밀양 주민들에게는 한 영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뜻있는 국회의원, 에너지 관련 시민단체, 법률가들과 함께 이미 이 문제를 구안하고 실행할 task force 팀을 꾸렸으며, 2014년 하반기 국회에서는 핵마피아 전력마피아 독재의 기반이 되는 3대 악법의 관련 조항을 반드시 개정하도록 투쟁할 것입니다.

 

<과제 7>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노후원전 폐쇄 투쟁

“고리 1호기 터지면 다 죽는다.” 밀양 주민들 만큼 고리 1호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밀양 송전탑은 고리 1~4호기의 노후원전을 예정대로 2015년까지 가동중단하게 된다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 5~6호기의 사업승인이 나지 않는다면 또한 필요하지 않습니다. 고리 1호기만이라도 당장 폐쇄된다면 기존 송전선로로 인출할 여유 용량은 더욱 늘어나서 한전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피크 타임 전력 수급’에서도 매우 안정적으로 송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밀양 송전탑 문제는 고리 지역의 원전 단지의 운용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서 운위되는 안전 담론에서 가장 먼저 지적되는 고리1호기와 월성 1호기 폐쇄에 밀양 주민들이 앞장 설 것입니다.

 

<과제 8> 연대 투쟁, 은혜를 갚겠습니다!

6.11 행정대집행 당시에는 용산 참사 유가족들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함께 했습니다. 지난 3년여 시간동안 밀양 어르신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힘없고 약하지만, 의로운 기운으로 뭉친 이들과 우리 밀양 어르신들은 수많은 방문과 만남의 과정에서 깊은 정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로하러 갈 때도 있었지만, 그들이 우리 어르신들을 찾아 와 함께 싸우고 위로할 때가 더 잦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밀양 송전탑 투쟁은 노동, 환경, 여성, 종교, 풀뿌리 운동 사이에 나 있던 희미한 경계선을 허물었습니다. 이제 어르신들은 약속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분들께 보답하러 다닐 것입니다. 어르신들을 찾는 데가 있다면, 가슴 아픈 투쟁의 현장 어디라도 밀양 어르신들은 찾아갈 것입니다.

 

<과제 9> 국가권력의 사죄를 받아내고 마을공동체 복원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평화란 정의가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타협과 절충이 아니라,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정부와 한전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주민들 앞에서 무릎꿇고 사과하는 것이 마을 공동체 복원의 첫걸음입니다. 진실과 정의의 궤도 위에서 마을 공동체가 복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주민들과의 화해는 상처 입은 이들의 자기 치유가 바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과제를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나가는 말 - 밀양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이 싸움은 앞으로도 몇 개월 계속 질기고 질긴 현장 투쟁이 이어질 것입니다. 언론이 주목하지 않아도 연대자들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더라도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밀양 주민들은 한국전력이 맘대로 송전탑을 세우고 송전선을 걸고 송전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밀양은 또다시 창조적인 연대의 모범을 기다립니다.

지금껏 이 싸움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멋진 연대의 마당들이 펼쳐졌습니다. 시인은 시를, 가객은 노래로써, 종교인들은 기도와 금식과 찬양으로, 예술가들은 행위 예술과 설치미술 작품으로, 의료인들은 진료와 처방약으로, 어머니들은 도시락과 반찬으로, 바느질모임으로 어르신들과 만났습니다. 연대 시민들은 움막 농성장에 꽃밭을 꾸몄습니다. 산중에서 주무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DMB로 일일연속극을 보여드렸고, 헬기소음을 견디기 위한 방편으로 영화를 틀어주었습니다.

밀양은 또다시 연대의 모범을 기다립니다. 그것은 시간과 돈을 일방향의 도움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놀라운 기쁨으로 화할 것입니다. 그동안 주민들은 너무 많이 모욕 받았고, 너무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모욕과 상처로 뒤채이다 투쟁 일선에서 물러선 주민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밀양 어르신들은 당신들을 향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놓지 않는 손길, 그것이 당신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훈장입니다.

모두가 알아서 기는 시대, 힘없고 약한 이들의 운명이 가랑잎처럼 굴러다니는 이 야만의 시대에 밀양의 어르신들이 10년간 싸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싸워나가실 것입니다. 밀양 어르신들은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을 보여줄 것입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년 6월 23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