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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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 좌세준 (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회 교회사업팀장)
  • 승인 2014.06.3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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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

얼마 전 서울 신촌에서 있었던 ‘퀴어 퍼레이드’를 두고 말이 많다. 서대문구청이 갑작스레 행사 승인을 취소하고, 일부 기독교 단체는 반대집회를 열고 아예 퍼레이드 행렬 앞에 드러누워 행진을 방해했다. 퍼레이드 참가자들 중에는 뺨을 맞거나 주먹질을 당하고 물세례까지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국무총리로 지명된 분도 한 마디 거드셨다는데 말씀 한번 걸작이다.

“젊은 사람들 생각이 똑바라야 한다. 무슨 게이 퍼레이드를 한다고 신촌 도로를 왔다 갔다 하나. 이 나라가 망하려고 하는 거다 지금. 퍼레이드를 왜 하나. 좋으면 집에서 혼자 하면 되지”

문창극 총리 후보의 말 속에는 동성애에 관한 우리 사회의 견고한 편견이 숨어 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젊은 사람들 생각이 똑바라야 한다”라고 훈계한 것은 동성애자들은 “똑바르지 않다”는 생각이 전제된 것이다.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는 일부 기독교 목회자들의 시각도 같은 계열의 편견이라 할 수 있다. 편견은 무지에서 나온다. 동성애자들을 ‘악(惡)의 세력’이나 ‘그릇된 사람들’로 규정하려면 최소한 동성애자들이 퍼레이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동성애자들은 그냥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단지 “나는 나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너는 잘못 됐어”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나는 솔직히 동성애를 종교윤리의 차원에서 논하는 것 자체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동성애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와 차별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면, 이미 동성애는 종교나 윤리의 테두리를 넘어 인권의 영역에서 바라보아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가톨릭 신자로서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어느 신부님의 말씀을 소개하는 것으로 답하고 싶다.

“종교는 사람들을 섬기는 한, 의견을 제시할 권리가 있습니다. 누군가 조언을 구한다면 제게도 그에게 의견을 제시할 권리가 있습니다. 성직자는 때로 개인적 삶이나 공적인 삶의 몇몇 문제들에 관심을 갖곤 합니다. 성직자는 교구민의 인도자니까요. 하지만 누구의 삶에 어떤 것도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위험을 감수하고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도대체 어떻게 간섭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방식으로 강요하고 요구하고 명령하는 성직자의 영적인 폭력을 비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범할 자유까지 우리 손에 맡기셨습니다. 가치와 한계, 계율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성직자의 영적인 폭력은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아르헨티나 추기경으로 있던 2010년, 유대교 랍비인 아브라함 스코르카와의 대담에서 동성결혼에 대해 하신 말씀이다.(『천국과 지상』, 161p)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결혼의 문제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강요하고 요구하고 명령하는” 성직자의 ‘영적인 폭력’을 경계한다. 이와 같은 교황의 말씀은 가톨릭 교리가 규정하는 동성애에 대한 입장과도 일치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정결과 동성애’ 항목에서 “동성애는 자연법에도 어긋난다.”, “동성의 성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인정될 수 없다.”라고 하고 있지만(교리서 2,357항), 아울러 “상당수의 남녀가 깊이 뿌리박힌 동성애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경우는 스스로 동성연애자의 처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동성애는 기나긴 시대와 다양한 문화를 거치며 갖가지 형태를 띠어 왔다. 동성애의 심리적 기원은 거의 밝혀져 있지 않다.”, “그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대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어떤 부당한 차별의 기미라도 보여서는 안 된다.”라고 하고 있다.(교리서 2,358항)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거나 혐오의 시각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은 가톨릭 교리에 반하는 것이 된다.

 

퀴어 퍼레이드는 1969년 6월 28일 뉴욕 한복판에 있는 ‘스톤월 인(Stonewall Inn)’이라는 바에서 동성애자들이 경찰의 단속에 저항한 사건 이후 시작되었다. 당시는 동성 간에 춤을 추는 것마저 법으로 금지되어 있던 시절이라, 경찰이 바를 급습하여 경찰봉을 마구 휘두르며 단속을 해도 얻어맞고 끌려갈 뿐 저항하는 것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동성애자들이 그동안의 수모를 깨고 들고 일어섰던 것이다.(『게이 레즈비언부터 조지 부시까지』, 31p) ‘게이 역사 상 경찰에 저항한 최초의 날’이 된 이날 이후, 매년 6월이면 뉴욕 센트럴파크와 그리니치빌리지 일대에서 ‘Pride parade’라는 행진이 열린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뉴욕 시장을 지냈고, 2001년 임기 말에 발생한 9·11 테러를 수습하여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은 루돌프 줄리아니는 시장 재직 시절 동성애자들의 ‘자긍심 행진’에 참여해서 함께 걸었다고 한다. 그는 퍼레이드에 동참한 것 외에도 1994년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게이 올림픽을 적극 환영하기도 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유력한 공화당 후보 중 한 사람이기도 했던 그는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정치인으로 표를 의식한다면 유권자 중 ‘소수’라 할 수 있는 동성애자들의 행진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할 만도 한데, 줄리아니는 행진 대열에 동참함으로써 소수자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내가 보기에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톨릭 교리를 정확히 지킨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 신촌에서 있었던 퀴어 퍼레이드 행사는 15년째를 맞는 행사이다. 미국에 비하면 20년 남짓 늦게 시작된 이 퍼레이드는 그동안 종로, 홍익대 인근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신촌에서 있었던 퍼레이드의 모토는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Love Conquers Hate)였다. 행사를 개최한 퀴어문화축제 홈페이지에 가보면 퍼레이드를 알리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합니다. 우리는 그런 혐오에 겁먹지도, 기가 죽지도, 상처 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으로 끝까지 그 혐오마저 껴안을 것입니다.”

 

그렇다. 성경에도 나오지만 “사랑은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는다.” 축제 마당이 반대 시위자들의 혐오감으로 난장판이 되었더라도, 그 혐오마저 껴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이번 행진이 난장판이 되었다지만, 반대자들의 겁박이나 편견에 겁먹지 말고, 기죽지 말고, 상처받지 마시라. 당신들은 자긍심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무장하였으니.

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 성공회 사제들과 개신교 목사가 함께 퀴어 퍼레이드 축복 기도문을 낭독했다.